• 입력 2020.06.10 18:55

[뉴스웍스=남빛하늘 기자] 서울 노원구에 사는 A씨는 집 앞 중랑천에서 산책을 하다 사고를 당할 뻔 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는 전동킥보드가 빠른 속도로 A씨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래서 요즘 킥라니, 킥라니 하나보다”고 하소연했다.

‘킥라니(킥보드+고라니)’란 고라니처럼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운전자‧보행자를 위협하는 전동킥보드 운행자를 이르는 말이다. 전동킥보드는 현행 오토바이 등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면허 없이는 주행할 수 없었다. 타더라도 자동차 도로에서만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도로 흐름에 방해가 되는데다 교통사고 위험도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5월 20일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통행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오는 12월 10일부터 킥라니도 합법적으로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규제가 완화되면서 스마트 모빌리티 업계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동킥보드와 자동차간 사고 가능성은 줄어드는 대신 전동킥보드와 보행자간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선 개정안을 보면 전동킥보드 같은 원동기장치자전거 중 시속 25㎞, 총 중량 30㎏ 미만인 이동수단을 ‘개인형이동장치’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자전거처럼 헬멧을 쓰지 않고 자전거도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또 만 13세 이상이면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나 자동차 운전면허 없이도 탈 수 있다.

이렇게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로 진입할 수 있게 되면 보행자간 사고 위험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체 자전거도로 가운데 77.3%가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인데다 서울의 자전거 도로 590개 구간(총 연장 940㎞) 중 전용 도로는 보행자 겸용도로(340개 구간, 622㎞)에 4분의1 수준(100개 구간, 14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전거 도로가 부족해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전동킥보드까지 추가되는 셈이다.

운행 자격 연령을 낮춘 것도 사고 위험을 높이는 문제로 꼽힌다. 개정안은 만 13세 이상이면 면허가 없어도 전동킥보드를 운행할 수 있게 규정했는데 이는 이전 운전 연령(만 16세)보다 3세나 낮아진 것이다. 특히 미성년자의 경우 도로 교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해 사고 발생 시 안전을 보장 받기란 쉽지 않다. 면허가 없는 성인도 마찬가지다.

전동킥보드 사고 빈도는 급증하고 있지만 관련 보험 상품은 전무하다는 점 또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2016년 49건에서 2019년 890건으로 3년 만에 18배 급증했다. 경찰청에 접수된 개인형이동수단 관련사고 건수도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으로 1년 새 90% 넘게 늘었다.

국내에서는 일부 보험사가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업체와 제휴해 서비스 이용자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전동킥보드를 소지하고 있는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관련 보험 상품은 단 한 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정안이 시행됐을 때 보행자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자전거도로 인프라를 확충하고 미성년자 및 무면허 전동킥보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통 교육과정 도입 등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보험업계도 개인 전동킥보드 이용자를 위한 보험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는 지난 9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공포하며 “관련 법 개정으로 국민이 더욱 안전하게 개인형이동장치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전동킥보드 같은 개인형이동장치를 이용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앞서 사고를 당할 뻔한 A씨처럼 거리를 걷거나 달리는 국민의 안전도 보다 적극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다.

전동킥보드 (사진=픽사베이)
전동킥보드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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