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29 15:30
홍콩의 번화한 거리다. 비좁은 구석에 다양한 가게가 빼곡이 들어선 점이 특징이다. 강력한 비즈니스 정신으로 무장한 광동 상인들의 활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사진=한인희 건국대 교수 제공>

“蝦有蝦路, 蟹有蟹道, 天下謀生七十二行(새우에게는 새우가 갈 길이 있고, 게에게는 게가 갈 길이 있듯이 천하에 생을 도모하는 방법이 72가지다)”는 말이 있다.우리는 보통 중국의 13억 인구를 볼 때 늘 품는 의문이 있다. ‘저 사람들은 다 뭐하면서 먹고 살까?’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직업의 종류를 거론할 때 72라는 숫자가 자주 쓰였다. 구체적인 숫자라기 보다 직업의 종류가 매우 다양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국 당(唐)나라 때는 36행(行)이 쓰였다. 그러다가 송(宋)나라 때 이르러서는 “직종이 여러 가지로 많다”는 뜻을 72행, 더 나아가 360행으로 표현했다.

오늘은 광동(廣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그룹 별 선호 직업을 알아보고자 한다. 지난 몇 편에서 누차 얘기한 바 있듯이 일반적으로 광주상인(廣府商幫)들은 옛날부터 북쪽 중앙정부의 힘과 외국 상인들 사이의 구매와 판매를 맡는 ‘거간꾼’ 역할을 잘 해왔다.

그래서 지금 그들의 후예들도 상대적으로 외국어 표현도 잘하고 외부와의 교역에 포용과 이해의 태도를 보인다. 이를 테면, 거간꾼 역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중앙정부에서 지명하는 관료 역할보다는 상인 역할을 더욱 선호하는 편이다.

광주상인들은 그래서 지금도 대개 중국 주요 국영기업들의 남부지역 총 대리점 역할을 한다. 또는 개인기업으로 본사를 제일 많이 둔 그룹에 속하며, 외국 다국적 기업의 중국 총 대리점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상해(上海)라는 장강삼각주(長江三角洲) 시장과 함께 개혁개방 이후 왕성한 경제발전을 보이는 주강삼각주(珠江三角洲)의 중심으로서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뒤 각종 부동산 업계, 전기제품 제조와 판매 등에서 광주상인들은 철옹성을 쌓기 시작했다. 광주의 대표적인 부동산 기업가인 星河灣集團(성하만집단 Star River Property Holding Limited)의 회장이자 전국 정치협상위원인 황원짜이(黃文仔)가 대표적이다.

순덕(順德)출신 중국 내 리조트 부동산 업계의 대표주자인 碧桂園集團(벽계원집단 Country Garden Group)의 회장인 양궈창(楊國強), 같은 순덕 출신으로 홍콩 恒基兆業(항기조업 Henderson Land Development Company Limited)의 회장인 리자오지(李兆基), 중산(中山) 출신으로 홍콩 新鴻基地產(신홍기지산 Sun Hung Kai Property)을 운영하는 궈더성(郭得勝)도 마찬가지다.

중국 4대 가전업체 중 하나인 順德美的集團(순덕미적집단 Shunde Midea Group)의 회장인 허샹젠(何享健), 불산(佛山)출신 格蘭仕集團(격란사집단 Galanz Group)의 회장 량칭더(梁慶德) 등은 광주상인의 대표적 가전업계 주자다.

한편 객가상인(客家商幫)들은 원래 농업에서 시작해 거간꾼 역할보다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이들 중 유명인물은 학계나 정계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객가 출신들은 다수가 먼 바다로 나아가 해외에서 피혁 섬유 약품 제조 등 제조업 쪽에 주로 종사해 왔다.

객가상인들은 장사로 돈을 벌면 늘 문화사업 또는 교육사업에 투자하는 경향이 많다. 상(商)에서 유(儒)를 지향하는 셈이다. 중국 중남부 안휘상인(徽商)들이 유(儒)의 경향을 뚜렷이 보이다가 종국에는 상(商)으로 방향을 틀거나, 적어도 둘을 병행시키는 관행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광동 허위안(河源) 출신인 漢能控股(한능공고 Hanergy Holding Group)의 회장인 리허쥔(李河君), 심천(深圳) 榮超房地產(영초방지산 룽차오팡디찬 RongChao Real Estate)의 회장 양롱이(楊榮義), 광동 매주(梅州)출신으로 중국 유명 담배 브랜드인 우예선(五葉神)으로 유명해진 大百彙集團(대백휘집단)의 회장 원춘칭(溫純青), 심천(深圳)의 최고 갑부로 알려진 深圳立業集團(심천입업집단 Shenzhen Liye Group Co., Ltd)의 회장 린리(林立), 심천 富源集團(부원집단)회장이자 교육 사업의 대표주자인 먀오서우량(繆壽良) 회장 등이 객가 출신들이다.

마지막으로 조주(潮州) 상인들이 있다. 이들이 사는 지역을 우리는 ‘조산(潮汕)이라 한다. 潮(조)는 바다의 조류(潮流)를 말하는 것이고, 汕(산)은 바다모래로 만들어진 산을 말한다. 즉, 이들은 산을 등지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 남자들은 해가 뜨면 늘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그럴 정도가 아니면 체력이 떨어지는 남성들은 물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받아 판매에 나서든가, 아니면 다른 해변으로 가서 잡화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지역은 광주처럼 해외와의 정식적인 수출입 무역 루트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늘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고파는 소매나 도매업에 집중했다. 이들은 훔치는 일만 아니면 어떤 일감이라도 맡아서 한다.

그래서 “훔치거나 강도짓만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장사든 다 할 수 있다(只要不去偷不去搶,什麼生意都能做)”는 말도 나온다. 이런 조주 상인들의 칼라는 확실한 편이다. 광동 3대 종족들 중 유일하게 집사람, 아내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조주 상인들이라는 점도 알아둘 만한 정보다.

이들은 유(儒)보다는 상(商)을 더 중시했다. 그래야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살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중국의 최북단 흑룡강(黑龍江)에서 중서부의 끝 티베트까지 어디든 간다. 모든 지역에서 이들 조주 상인들은 소자본으로 사업을 크게 벌이지 않으며, 월급쟁이 생활 대신 자영업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는 “굶어 죽을지언정 월급쟁이 생활은 하지 않는다(餓死不打工)”라는 말이 나온다. 아니,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편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즈니스를 이루어내는 칼라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일부 조주 거상들은 그래서 주식 내부거래 및 탈세 등의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2006년에는 중국 최고의 갑부였던 궈메이(國美) 전기(電器)의 황광위(黃光裕), 광주 최고의 갑부였던 주멍이(朱孟依)등이 바로 그렇다. 그럼에도 홍콩과 태국 및 싱가포르,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화상(華商) 중 최고의 갑부는 바로 조주 상인들이다.

워낙 유명한 리카싱(李嘉誠)長江實業(장강실업) 회장 및 라이순(麗新)그룹의 린바이신(林百欣)회장 외에 근래 중국의 유명한 조산출신 상인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산토우(汕頭) 출신의 호주 화교로 僑鑫集團(차오신그룹 Kingold Group)을 이끄는 저우쩌룽(周澤榮)회장, 광동 푸닝(普寧)출신 星河地產(성하지산 싱허디찬 Galaxy Group)의 황추룽(黃楚龍)회장. 광동 제양(揭陽)시 푸닝(普寧)출신 鴻榮園集團(홍영원집단)의 라이하이민(賴海民)회장, 같은 광동 제양 출신 茂業國際控股有限公司(Maoye International Holdings Limited)의 황마오루(黃茂如)회장이 그들이다.

광동 각 지역 종족들 사이의 분업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은 바로 지역적 환경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물과 흙이 한 지역의 사람들을 만든다(一方水土 養育一方人)”는 말이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순덕(順德)과 중산(中山), 남해(南海)에 있는 광주상인(廣府商幫)들은 거의 뽕나무 밭, 사탕수수밭, 그리고 과일 농원 옆에 어장을 둔 경우가 많았다. 조주와 산두(汕頭) 부근에 있는 조산 상인(潮汕商幫)들은 해변에 발달한 어업(漁業) 경제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잡화점을 운영한다. 객가 상인(客家商幫)들은 그들의 주거지인 산 근처의 차(茶)를 심는 차 농장(茶園) 경영이 다수를 이루는 편이다.

생활의 터전에서 꾀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사람은 제가 사는 환경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광주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제일 포용력이 강하나 단결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조주와 산두 출신들은 배타적인 대신에 응집력이 강하다. 객가 출신들은 포용력과 응집력을 다 갖췄다.

중국의 광동은 이렇게 다르면서도 비슷한 3대 종족들이 대내적으로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면서 대외적으로 포용력이 높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으면서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비즈니스를 완성시키려는 21세기의 강력한 상인 정신으로 무장한 채 중국 경제발전의 큰 동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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