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30 10:45
부담스러운 사회적 비용이 결국 우리사회의 출산율을 낮추는 주범이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집단자살을 선택하는 레밍스 쥐의 경우를 우리가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추운 툰드라지역에 살고 있다는 레밍스 쥐는 개체 수 증가로 먹이가 줄어들면 광기를 일으킨다. 한 마리가 바다에 빠지면 집단전체가 그를 따라 한다. 줄을 지어 높은 벼랑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는 레밍스 쥐의 ‘장엄한 최후’는 그래서 퍽 유명하다. 레밍스 쥐는 존재로서의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면 곧장 집단자살을 선택하는 동물이다.

자녀 한 명을 키우려면 평균 2억 이상의 비용과 거의 무한한 시간이 든다. 아이는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어야 비로소 건강한 성인으로 길러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에 이를 감내할 수 있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부모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사회가 자녀 키우기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헬조선’의 자살률이 높다 하더라도 우리는 레밍스 쥐가 아니기에 인구와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로 집단 자살은 않는다. 하지만 불리한 환경에서 우리 종족이 내린 선택은 애를 낳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령화란 사회적으로 보자면 간접자살이 아닐까 싶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정운은 독일의 경우 하루를 더 놀면 출산율이 급감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으면 무지막지한 공적 자금의 지원 폭격을 해주는 독일은 병원비 폭탄에 이리저리 세금이나 잔뜩 물리는 한국이 아니다. 독일에서야 하루 더 놀면 이혼율이 높아지고 애를 덜 낳을지 몰라도, 헬조선의 출산율 감소는 단순히 애 키우는 데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애 키우기는 경쟁이다. 아니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가망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도박이다. 따라서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사회 전체에서 벌어지는 무리한 애 키우기 경쟁에 투입해야할 ‘판돈’ 2억이 없어서다. 아이 낳고 키우기라는 경쟁적 도박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때문에 출산율 감소로 위기감을 느낀다는 언론의 호들갑은 판돈이 적다는 투덜거림일 뿐이다.

애를 낳아 키우려면 결혼도 하고 집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수입을 보장해 줄 안정된 직장도 있어야 한다. 애를 봐줄 안전한 보육시설도 필요하다. 인간의 아이는 부모와 사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보호망이 있어야 건전하고 올바르게 클 수 있다. 따라서 애를 키우는 일은 결코 가벼운 작업이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우기는 우리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 사회적 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잘 유지할 수 있겠는가? 애를 정상적으로 키울 보장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애를 낳는 일은 책임감과 양식이 있는 인간으로서 차마 할 짓(不忍人之心)이 못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애를 안 낳는 게 더 도덕적이라는 말이다.

한 때 애국충정이 복받치던 투사였던 때가 있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무릇 인구가 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출산율 증가를 위해서는 출산환경 개선이 가장 우선의 답이다. 조사해보니 헬조선에서는 아직도 애들 기저귀나 분유에도 부가세를 붙인다. 분유는 여성부가 아닌 어떤 야당의원 발의로 한시적으로 면세처분을 받았다. 심지어는 아동의 병원비와 약에도 부가세가 붙는다. 알다시피 부가세란 가장 악랄한 간접세다.

격노했다. 이래서는 출산율이 늘지 않는다. 청와대 신문고에 절절한 사연을 올렸다. 여성 단체의 압력으로 생리대에는 세금을 감면하면서 어찌 애기 기저귀와 분유에 세금을 붙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답은 할머니 할아버지 요실금 기저귀와 형평을 이루기 위한 세금 균형이란다. 열 받아 이민 간다니까 아니꼬우면 떠나라고 답한다. 아이 낳기를 세금으로 바라보는 나라, 애 만들 의욕을 팍팍 죽이는 국세청이다.

진정한 문제는 여성이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돈도 없고 때론 곁을 지켜줄 남편도 없어서 벌어지는 사회적 냉대다. 아기 한 명이 아쉬운 판에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수십만 명이 낙태를 하고 있다. 아비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한다. 미혼의 여성이 임신하면 대부분 낙태가 당연한 해결책이라 여긴다.

애를 낳으면 아비의 유무와 상관없이 엄청난 지원을 해주는 독일이나 프랑스를 바라지는 않겠다. 적어도 생명에 대한 순수한 긍정과 존중을 바라는 것이다. 낙태 문제는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의 직장과 처우나 보육시설 만큼 시급한 일이다. 이 아이들만 살렸어도 인구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늙어가는 진정한 이유는 아마 나빠진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의 자연선택일 것이다. 사회와 문화가 변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희미해지고 사라져가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영화의 대사 한마디가 머리를 스친다.

“Let i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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