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6.22 00:10

원구성 파행 여파 7월 출범 사실상 불가능…한국, 새로운 길 개척하고 선례 만들어야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오는 7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할 예정이다. 지난 1996년 참여연대가 공수처 설치 입법을 청원한 이후에 20년 간 도입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 끝에 마침내 우리 사법체계에 공수처라는 개념이 들어오는 것이다.

공수처는 대통령·국회의원·대법원장 및 대법관·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정무직 공무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무직 공무원·판사 및 검사·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을 수사할 수 있다. 또한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범죄도 수사가 가능하다. 

아울러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사의 범죄를 직접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별도 기구이기도 하다. 특히 경찰과 검사·판사 등 일반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이들에 대해선 공수처가 직접 기소하고 공소유지도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5대 국회부터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19대 국회까지 공수처 관련 법안이 계속 발의됐지만 여야가 공수를 바꿔가며 공방을 벌였고, 더불어 검찰 반발까지 더해지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제 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의 반발에도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협의체에서 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20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공수처는 공론화 24년 만인 7월 출범을 앞두게 됐다. 하지만 21대 국회가 원구성을 놓고 파행되면서 공수처 설립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초대 공수처장, 이광범 유력…변협, 여성 법조인 물색

오는 7월 출범을 목표로 준비해 온 공수처의 수장이 누가 될지 하마평이 무성했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정리되고 있다. 

공수처장은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15년 이상이어야 하고 정년은 65세다. 따라서 65세를 넘은 사람은 처장으로 임명될 수 없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도 안 된다.

아울러 검사의 경우 퇴직 후 3년,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의 경우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으면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자연히 현직 검사나 대통령비서실 공무원은 공수처장 후보군에 오를 수 없다. 당장 퇴직해도 2∼3년 뒤에나 자격을 얻는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들 가운데 현재 가장 유력한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는 판사 출신 이광범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LKB) 변호사다. 자신의 이름을 딴 LKB파트너스를 만들어 중형 로펌으로 키운 그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사건' 특별검사를 맡으면서 수사 능력까지 보여준 바 있어 "경력은 충분하다"는 평이다.

이 변호사는 최근 엘케이비앤파트너스에서 대표 직함을 내려놓으면서 초대 공수처장 자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 활동과 특검 수사 이력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공수처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야당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백승헌(57·15기) 법무법인 변호사, 민변 부회장을 지낸 김진국(57·19기) 감사원 감사위원과 역시 민변 출신인 김남준(57·22기)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민변이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인 만큼 역시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민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활동했던 단체로, 두 대통령 모두 대선 전후 민변을 떠났다.

공수처 설립준비단은 오는 25일 공청회를 열고 공수처 추진을 위한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최근 변호사들에게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받아 변협 추천후보 확정을 위한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추천위원 몫을 1명 가진 대한변협은 최근 판사 출신 여성 법조인들 가운데 후보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정미(58·16기) 고려대 교수가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그는 언론을 통해 고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변협 관계자는 "이사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지만, 내부적으로 후보 추천에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며 "논란이 되지 않고 능력있는 후보를 가려서 추천할 것"이라고 전했다.

7월 출범 불투명…공수처장 임명도 미뤄져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의 7월 출범이 사실상 어려워 졌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빠듯할 뿐만 아니라 국회 원 구성 문제로 여야 대립이 심화되면서 공수처장 임명도 차일피일 일정이 밀리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에서 실무를 맡을 일선 검사들과 수사관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 파견 절차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출범이 한 달 정도 남은 상태에서 지금쯤이면 공고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정식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적이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실무를 담당하는 검사·수사관 선출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곧 공수처 출범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법률에 따라 공수처는 7월 15일부터 운영되지만 사실상 '빈 껍데기' 출발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공수처를 이끄는 공수처장 선출이 사실상 쉽지 않아진 것에 기인한다.

지난 1월 공포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 선출은 총 7명으로 구성되는 추천위원회 위원 중 6명의 찬성으로 2명의 예비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가운데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추천위원 중 2명은 집권여당에서, 나머지 2명은 야당 교섭단체에서 뽑히도록 규정한다. 이외에 법무부, 법원행정처, 대한변협에서 각 1명씩 위원이 참여한다. 

문제는 법만 제정됐을 뿐 후속 조치를 위한 절차와 규정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장 임명에 있어 후보추천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공수처법상 국회규칙으로 둬야 하는데, 전혀 정하지 않았다. 당연직위원 외에 여야가 각각 2인씩 추천하는 후보추천위원도 미정이다. 공수처장 추천 이후 인사청문회 절차 관련 규정도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논의해야 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야당 측 위원 2명이 반대하고 버티면 아무리 거대 의석을 가진 '공룡 여당'이라 해도 단독으로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다. 

7명의 추천위원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통합당이 후보 추천 '비토권'을 행사하면 후보 선출 자체가 어렵다. 

아울러 통합당은 공수처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도 제기한 상태다. 통합당으로서는 공수처장 선출에 협조할 이유가 없다. 인사청문회법 등 공수처장 선출을 위해 처리해야 하는 후속입법과정에도 응할 의사가 그리 높지 않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교섭단체가 후보 추천을 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선출 기한을 명시해 추천하도록 하는 규칙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현재 여야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공수처장 후보자 공모부터 추천위원회 의견 수렴, 차장검사와 일반검사, 수사관 지원 및 임명 일정까지 고려하면 공수처의 7월 출범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공수처 참고할 해외 사례 없어…홍콩 염정공서·영국 중대부정수사처 '유사'

공수처는 세계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 기구다. 성공의 조건을 해외에서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은 검찰 이외 별도의 부패범죄 전담수사기구가 없고, 국회의원 등 특정한 신분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기구도 없다. 

그나마 유사한 기관으로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ICAC)와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SFO) 정도를 들 수 있다. 

고위공직자 부패범죄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점만 놓고 비교하면 루마니아의 국가반부패국(NAD)과 유사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수처 설립준비단도 최근 홍콩과 영국의 사례에 대한 자료를 따로 정리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공수처라는 새로운 길은 대한민국이 개척하고 그 선례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홍콩의 염정공서는 공수처와 설립 배경만 유사하다. 지난 1974년 출범한 염정공서는 행정장관 직속의 독립기구로, 수사만 할 수 있고 기소권이 없어 우리 공수처와 비교하기 어렵다.

이 기관은 부패혐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해 48시간동안 구금할 수 있고, 계좌 추적권도 가지고 있다. 수사기간 중 용의자의 출국 금지는 물론 수사와 관련된 정보요구권을 가지고 있어 염정공서가 요청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공무원은 구속시킬 수 있다.

또한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형성 과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증식된 재산은 뇌물로 간주하여 재산을 몰수하고 처벌한다. 

염정공서가 수사한 사안은 법무부 소속 검사가 기소하도록 돼 있다.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독립기구라는 점이 공수처와 같지만 대상 범죄가 주로 기업범죄라는 점에서는 차이점을 가진다.

중대부정수사처는 법무부 장관 산하로 돼 있지만 법무부 장관은 처장을 임명, 관리·감독만 하고 수사·기소에 대해 전혀 관여할 수 없도록 해 중대부수사처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이외 노르웨이 경제·환경범죄 수사·기소청, 뉴질랜드 중대부정수사처, 스페인 부패·조직범죄 특별검찰청 등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져 공수처와 유사하지만 경찰(노르웨이), 법무부(스페인) 등에 소속돼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공수처와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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