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06.25 12:16

재판부 "미술작품 기망여부 판단 시 전문가 의견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 지켜야"

그림 대작 의혹을 받는 가수 조영남이 지난달 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최종 진술을 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공개변론 동영상 캡처)
그림 대작 의혹을 받는 가수 조영남이 지난달 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최종 진술을 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공개변론 동영상 캡처)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그림 대작 의혹을 받은 가수 조영남(75)이 의혹제기 5년여 만에 무죄를 최종 확정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열린 조 씨의 그림 대작 관련 사기 혐의 선고기일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함께 기소된 조 씨의 매니저 장모 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구매자들이 조 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그림을 샀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위작 시비'와 무관하고, 구매자들이 조 씨의 작품을 조 씨가 직접 그린 '친작'으로 착오해 산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며 사기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더해 "미술작품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지 않은 한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조수 작가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며, 조수 사용 여부를 구매자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조 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미술작품의 저작권이 그림을 직접 그린 송모 씨에게 귀속되며 조 씨는 저작권자로 볼 수 없다는 검찰의 상고 이유에 대해서는 공소사실 외에 심판하지 않는 불고불리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상고를 기각했다. 

검찰 측이 이번 사건을 저작권법 위반이 아닌 사기 혐의만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검찰의 상고 이유가 공소 사실과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조 씨는 지난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자신의 지인인 화가 송 씨 등이 그린 그림에 약간의 덧칠 작업만 하고 자신의 서명을 넣은 작품 21점을 17명에게 팔아 1억53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조 씨가 다른 화가가 밑그림 등을 그려준 작품을 팔면서 대작 사실을 고의로 숨겼다고 판단해 조 씨의 사기 혐의를 인정했고, 징역 10개둴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화투'를 소재로 한 조 씨의 작품에 조 씨 고유의 사상과 철학, 창작 의도가 담겨 있고 송 씨를 비롯한 조수 작가들은 미술계의 관행인 기술 보조에 불과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작 의혹 논란을 받은 조영남의 그림. (사진=JTBC뉴스 캡처)
대작 의혹 논란을 받은 조영남의 그림. (사진=JTBC뉴스 캡처)

지난달 28일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공개변론을 열고 조 씨와 검찰 양측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28일 열린 공개변론에서는 ▲조 씨의 작업을 도운 이들이 대작화가인지 조수인지의 구별기준 ▲미술계에서 제3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허용되는지 여부 ▲제3자의 도움을 받은 미술작품 제작 방식을 작품 구매자들에게 고지하는 것이 의무인지 여부 ▲조 씨의 친작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작품 구매의 본질적인 동기로 볼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주요 쟁점이 됐다.

검찰 측은 누가 그리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하는 회화작품에서 작가가 직접 그리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데, 조 씨의 경우 본인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직접 그림을 그린 것은 송 씨 등 제3자였다고 강조했다. 

구매자들이 조 씨의 그림을 고액을 주고 구매한 이유는 유명 연예인인 조 씨가 직접 그렸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데 제3자가 그림을 그린 사실을 숨긴 조 씨의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조 씨의 변호인은 현대물질에서 회화의 본질적 요소는 물리적인 그림이 아니라 작가의 사상·철학·창작 의도·콘셉트 등이라고 반박했다. 

논란이 된 작품들은 '화투'라는 소재에 조 씨의 철학과 창작성이 담긴 것이고, 대작화가는 조 씨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했을 뿐이기에 조 씨의 단독 저작물이 맞다는 설명이다. 

또 제3자가 그림을 그린 사실을 숨겨 구매자들을 속인 사기죄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미술계의 관행에 따르면 작품 제작 시 조수 사용 사실에 관한 신의칙상의 고지 의무가 없으며, 조수 사용 사실을 알았더라도 작품을 구매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구매자들이 있다고 반론을 펼쳤다.

이어 변호인은 화가에게 조수 사용 고지의무가 있다는 검찰의 주장이 가벌성의 무분별한 확대를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고 규탄했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조 씨 외에도 갤러리 관계자나 조 씨의 그림을 추천했던 사람들도 모두 고지의무 위반행위로 사기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개변론에 직접 참석한 조 씨는 "지난 5년간 이런 소란을 일으킨 것 정말 죄송하다"며 "화투를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그랬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보다. 부디 저의 결백을 가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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