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6.26 18:00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공정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자세가 연상될 정도로 청년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인 페트릭 헨리는 지난 1775년 미국의 비합법 민중대회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있어서 공정함이란 페트릭 헨리가 외쳤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 듯 하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8년부터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이처럼 높은 인기도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높은 급여와 보상제도 덕분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공시된 내용 등을 보면 인천국제공항공사 신입사원의 연봉은 5천만원에 가까운 4589만원이다.

이른바 '신의 직장' 혹은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 인천공항공사다. 바로 이런 곳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원 19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린뒤 부당성을 따지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6일 오후 1시 50분 현재 24만 3000명을 넘어서는 등 후폭풍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서울 노량진 소재 공무원 시험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한 여성 공시생은 26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이 어이가 없다"며 "공채 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므로 취준생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그것을 문제 삼은 게 아니지 않느냐, 애초의 공정성을 따지는 것이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누구는 시험 봐서 힘들게 들어가고 누구는 운 좋게 갑자기 공기업 직원 되는 이 세상이 참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렇다면, 공시생들이 시험보는 동안에 들어가는 인강비와 교통비, 식비 등을 정부에서 공시생들에게 다 지급해주던가"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N년이라는 시간을 금액으로 보상해주고 그렇게 한다면 인정해주겠다"며 "이번에 정규직이 되는 사람들은 뭐 안정되게 일하기를 원할 뿐인거라고 했나, 급여는 안 올려주고?"라며 "모두 다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고 싶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분개했다.

'인국공 사태'로 불리기 시작한 이번 파문의 본질은 이런 결정 자체가 '공정했느냐'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청년세대들에게 있어서 공정이란 화두는 그야말로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로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결국 장관직을 사퇴하게 된 것과 조 장관의 딸의 스펙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된 근본적인 배경도 청년세대들이 이처럼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공정함에 대한 배반 때문이었다'는 시각이 적지않다.  

한마디로 요즘 청년들의 상당수는 '다른 것들은 다 참을 수 있어도 공정하지 못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 전 장관의 딸 문제에 비판이 쇄도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적잖은 청년세대들은 이번 '인국공 사태'의 핵심을 '조국사태는 아빠찬스이고, 인국공 사태는 문빠찬스'라고 비꼬며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서 '문빠'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을 일컫는 용어다. 

이런 가운데,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인천국제공항공사 문제와 관련해 "조금 더 배우고 필기시험에 합격해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2019년 기준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평균 연봉은 9100만원에 달한 반면, 이번 정규직 전환하는 분들의 연봉은 3850만원"이라며 "청원경찰은 교육을 받고 몇 년 동안 공항보안이라는 전문분야에 종사했던 분들이지 알바가 아니다. 정년까지 보안검색 업무만 하기 때문에 사무직 위주인 정규직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학력에 따른 격차를 인정할지라도 2배가량의 임금을 더 받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이라는 것'과 '애초에 직종이 나뉘어져 있으므로 사무직 위주의 정규직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는 향후에도 이런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된다. 즉, 1902명이라는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직종은 차치하더라도 여하튼 정규직이 된뒤 강력한 노동조합의 기치 아래 결속한다면 자신들의 힘을 키워서 급여는 물론이고 후생복리를 상승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이에 더해, 직종 간의 경계선도 쉽게 넘나들 수 있도록 회사의 사규를 개정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인천공항공사의 구조를 잘 안다는 한 공무원은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번 비정규직 사태는 정년은 보장되지만 연봉을 사무직 공채직원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는 마치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지 3년 가까이 됐지만, 그분들이 입법고시 합격자와 동일하게 임금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수가 300명이 넘는 카카오톡의 한 단체카톡방에서 눈길을 끄는 주장을 소개한다. 한 네티즌은 "인국공 문제가 이토록 크게 사회문제가 된 것은 청년들이 그토록 중히 여기는 공정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비롯됐다"며 "여기에다가, 일부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들이 바른 길로 가지 않고 편법을 통해 성공한 사례를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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