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따라잡기] 한류, 이렇게 태어났다
[한류 따라잡기] 한류, 이렇게 태어났다
  • 오인규 고려대 교수, 한류학센터장
  • 승인 2016.03.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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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규 고려대 교수(한류학센터장)
이 연재 칼럼은 독자들의 한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했다. 이제는 세계의 문화 현상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한류를 본격적으로 이해해 비즈니스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인식하면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세계한류학회 총무이사이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류학센터장인 오인규 교수가 앞으로 20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한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MBC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이다. 한류가 뚜렷한 문화현상의 하나로 발전하는 계기는 아주 우연스럽게 찾아왔다.

필자가 일본의 모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그러니까 한참 한-일 월드컵 분위기로 두 나라가 정말 모처럼만에 화기애애한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을 당시였던 2002년이다. 그 때 일본에서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먼저 내가 가르치던 대학에서 한국어를 수강하던 일본인 학생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렇다 보니 종래에는 한국말을 서툴게 했고, 발음이나 철자법도 북한식으로 가르쳤던 재일교포 출신 한국어 강사진에 변화가 생겼다. 일본대학 내 한국어 강좌가 본격적으로 서울말을 하는 한국 출신 강사나 교수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한국어 강좌가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되었느냐가 아니다. 더 주목할 점은, 한국 출신 강사들이 새로 가르치기 시작한 한국어 교실 안에서 조용한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혁명

종래에는 북한식 발음과 철자법을 가르쳤던 재일교포 선생들의 지루한 한국어 수업이 갑자기 디지털 위성방송을 통해 녹화된 테이프나 DVD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진행하는 현실감 있는 한국어 수업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욘사마 신드롬’이 불어오기 전인 2001년, 2002년 일본 대학 내 한국어 수업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드라마는 단연 <이브의 모든 것> 이었다. 채림, 김소연, 장동건이 보여 준 한국식 드라마의 섹시 비주얼 효과와 삼각관계라는 보편적 테마에 ‘강한’ 여자와 ‘착한’ 여자의 대립구도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가미한 이 드라마는 학생들을 뇌쇄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어를 강의하던 강사나 학생들은 이러한 K-드라마가 곧 일본 전역을 강타한 하나의 커다란 문화현상인 ‘한류’로 번지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반쪽의 성공: K-pop

제일 먼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국제화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 관계자들이 아니고, 가요계였다. 현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거나 구상을 하던 중, 한국 가요의 해외 수출이 시쳇말로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확신 하에 자신이 직접 선발해서 키우던 무명 가수들의 중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때가 1995년경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생각대로 쉽게 풀리는 나라가 아니었다. 우선, 저작권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음반을 찍어서 판매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중국어를 못하는 한국 가수들이 중화권 TV에 출연하기도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한류가 1997년 <사랑이 뭐 길래>라는 드라마로 시작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고, H.O.T.의 중국 입성이 콘서트라는 가장 리스크가 많은 매체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거둔 절반의 성공은 K-pop의 수익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교육비와 프로모션 비용을 투자한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시장이 중국이다. 가수 보아를 앞세운 K-pop이 드디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곳이 일본이었던 이유는 역시 저작권의 철저한 보장에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한국의 가요계에서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SM 엔터테인먼트의 김영민 사장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가 지나고, 2002년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보아를 제외한 한국의 K-pop 스타들은 K-드라마라는 커다란 장르의 벽에 가려 아직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등장

중국에서 K-드라마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그것이 전 세계적인 한류현상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국제적 위치가 매우 애매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몸집은 크지만 실질적으로 한류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도 적었고, 또 중국인들이 한류를 소비한다고 할 경우 다른 선진국이 한류 드라마 수입을 꺼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이 중국에서 어려운 전투를 하고 있던 와중, 뜬금없이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공전의 대 히트를 쳤다. 일본의 NHK위성 방송에서만 처음 전파를 탔음에도 말이다. 일본 측 설명은 이렇다. 일본의 선진문화를 잘 베낀 한국이 드디어 일본과 제일 비슷한 트렌디드라마를 들어, 40~50대 일본 여성의 노스탤지어 욕망을 건드려서 대박을 터뜨렸고, 이 뒤에는 NHK라는 대규모 국책방송사가 모든 것을 계획하여 한류의 대유행을 기획했다는 음모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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