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20.07.05 05:50

“수익성, 규제, 세금 어느 것도 강점 없어”…금융도시 분산 겹쳐 서울 33위 추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오피스빌딩 전경. (사진제공=상가정보연구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오피스빌딩 전경. (사진제공=상가정보연구소)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홍콩이 지닌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이같은 반사이익 챙기기 경쟁에  한국은 명함도 꺼내지 못하는 처지다. 

구태의연한 관치금융으로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이 떨어지는데다  금융중심지 분산정책까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한국으로  들어오겠다는 해외 금융회사를  찾기 힘들다.

일본과 싱가포르보다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다보니 홍콩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6월 29일(현지시간)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게 부여했던 일부 특별대우를 폐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중국이 홍콩 반환 점유 후 50년간 ‘一國兩制(일국양제·하나의 나라 두개의 체제)’를 유지키로 했음에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추진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는 6월 30일 만장일치로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해당 법안에 서명을 하며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영국이 반환 의무가 없는 영토까지 중국에 반환했음에도 중국이 국제적인 협의를 무시하고 홍콩의 자치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홍콩보안법을 시행하면서 홍콩이 가진 금융허브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홍콩의 위상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올해 3월 발표된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 평가에서 홍콩은 6위를 기록했다. 해당 지수는 매해 3월과 9월 발표되는데, 지난해 9월(3위)보다 무려 3계단 하락했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금융 3대 도시로 꼽히던 홍콩이 일본 도쿄(3위), 중국 상하이(4위), 싱가포르(5위)에 밀렸다.

먼저, 홍콩에 있는 자금이 싱가포르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중앙은행 격인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 비거주자의 4월 예금은 620억 싱가포르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1991년 이후 최고치다. 

특히 싱가포르는 지리적, 문화적 동질성 덕분에 아세안(ASEAN) 국가들의 자금과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영어가 공용어인데다 싱가포르 달러도 안전한 통화로 꼽혀 금융과 무역거래에 이점이 있다.

그 다음으로 일본은 위상이 지난해 9월 6위에서 올해 3위로 뛰어오른 만큼 홍콩의 금융권 인력을 흡수해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1980년대 한때 세계 시가총액 30%를 보유했던 영광을 되찾을 심산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6월 1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홍콩의 금융기관 유치를 위한 정책을 묻는 질문에 “도쿄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매력을 강조하면서 외국 인력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며 금융업에 종사하는 홍콩인을 데려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직후 여당인 자민당 경제성장전략본부는 ‘국제금융도시 도쿄’를 만들기 위한 성장전략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2015년 GFCI 6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서울은 올해 33위다. 부산이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되고 금융공기관이 이전했지만 외국계 금융사 유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서울 여의도와 부산이 경쟁력을 갈라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은행 관계자는 “현재 부산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금융사는 일본 야마구찌 은행이 유일한데, 이마저도 금융중심지 지정 이전인 1986년 4월에 진입했다”며 “부산은 올해 작년보다 순위가 8계단 떨어진 51위”라고 지적했다.

B증권사 관계자 역시 “부산을 금융도시로 만들려고 했지만 사실상 실패 수준이고 심지어 전주를 제3의 금융중심지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최근에는 홍콩 안보법 시행을 계기로 인천을 경제특구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는데, 이게 금융산업을 위한 대책인지 부동산 상승을 꾀하려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7년 3월 전주를 제3 금융중심지로 삼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20대 국회 당시 전주 지역구의 의원들은 전주의 금융중심지 지정을 요구했고 부산 지역구의 의원들은 부산 이외 추가지정을 반대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4월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를 열고 전북 전주 혁신도시를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기에는 여건이 미성숙됐다고 판단했다.

금융권 내에서도 인천, 부산 등 서울 이외의 도시를 금융중심지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핵심은 금융 규제 및 관치금융 완화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국가보안법: 일본과 한국은 홍콩의 금융 왕관을 차지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은 현대적인 비즈니스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도 관료주의와 불투명한 규제, 영어에 능통한 금융전문가 부족, 경직된 노동시장 등을 장매물로 꼽았다.

한 펀드매니저의 말을 인용하면서 “17년 동안 한국이 금융허브를 개발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공중에 성을 쌓는 것 같다”며 “수익성, 규제, 세금 중 어느 것도 한국에 강점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삼성전자 등 제조업이 탄탄하지만 10년간 주식, 채권, M&A(인수·합병) 시장은 거의 개선되지 못했다”며 “원화의 제한된 전환성, 실현 불가능한 역외 거래로 인해 한국 내외 자본의 자유로운 유입이 제한돼 무역업자들에게는 장애가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높은 법인세 역시 걸림돌이다. 현재 최대 25%로 아시아 금융 중심지인 홍콩(16.5%), 싱가포르(17%)로 높다. 일본의 GFCI 평가는 높은 편이지만 아베 내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어려운 이유도 부담스러운 법인세(약 30%) 때문으로 평가된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쉽게 벌어가는 모양을 마뜩치 않게 보는 경향이 강해 글로벌 금융사를 상태로 관치주의 금융을 하다가 ISD(투자자-국가 간 분쟁) 제소당하기도 했다”며 “좋게 말해서 공공성 강화에 힘을 주는 나라가 글로벌 금융 허브로 기능하기는 어렵지 않나”는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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