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0.07.10 01:40
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제공=서울시)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10일 새벽 사망한 채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차례나 서울시장에 당선된 여권의 대선 주자 중 한 명이다.

서울특별시정을 10년간 경험하고 지난 4월 총선에서 일명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대거 국회로 입성하면서 당 안팎에서 대권 주자로서 힘을 받았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13세 때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양되는 등 부유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제적을 당했다.

제적 이듬해인 1976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한 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낸다.

이후 변호사로 변신해 상당기간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며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국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1995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부정부패정치인 낙선운동부터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예산감시 정보공개운동 등 다양한 사회참여운동을 이끌며 국내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00년엔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도 열었다.

그는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로 공석이된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단일화에 성공한 뒤 야권의 단일후보로 당선에 성공한다.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답게 반값등록금과 무상급식,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등 여러 사회혁신정책을 단행했다. 

그는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중도 포기하는 시련도 겪었다. 박 시장은 2018년 서울시 최초 3선 시장이자 마지막 임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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