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0.07.11 10:31
백선엽 예비역 대장 (사진제공=국방부)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백선엽 육군 예비역 대장이 별세했다. 항년 100세.

백선엽 장군은 10일 오후 11시께 서거했다.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만주군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1943년부터 간도특설대로 옮겨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동북항일연군 세력 등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신생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해 6·25 전쟁 때 1사단장과 1군단장으로 여러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다.

1953년 33세의 나이로 국군 최초 육군 대장이 됐으며, 예편 이후에는 주중화민국 대사와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백 장군의 최고 수훈은 6·25 남침 초기였던 1950년 8월 한 달 내내 펼쳐졌던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해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고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가능하게끔 여건을 조성해 전세를 역전시켰던 점이 꼽힌다.

북한군은 이해 광복절까지 부산을 점령하겠다는 목표로 낙동강 전선의 취약 지점인 경북 칠곡 가산면 일대로 공세를 펼쳐왔다.

이 때 백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이 유엔군이 도착할 때까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끝내 이 지점을 사수해내 낙동강 전선의 붕괴를 막고 대한민국의 적화를 저지했다.

유엔군은 이 전투의 중요성을 1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으로부터 프랑스의 붕괴를 막아낸 베르됭 전투에 빗대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도 친일 활동의 경력은 덮을 수 없었다. 

그는 만주국 장교 시절 독립군 토벌에 악명을 떨친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전쟁 60주년’(2010년)을 맞아 그를 명예 육군 원수로 추대할 계획이 보도되자, 언론과 시민단체 학계가 그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결국 무산됐다.

‘베트남전쟁의 영웅’ 채명신 장군을 비롯해 일부 한국전쟁 참전 원로들의 반대 목소리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장지 문제가 논란이 되자 이를 계기로 국립묘지에 친일파를 안장시킬 수 없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추진될 만큼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친일 활동 인물로 꼽혀 왔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11일 논평에서 "'6·25 전쟁의 영웅' '살아있는 전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가장 존경했던 군인' 그 어떤 이름으로도 백 장군에 대한 감사함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백 장군의 인생은 대한민국을 지켜온 역사 그 자체이자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위대한 삶"이라고 헌사했다.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군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 회고록을 비롯해 많은 저작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백선엽(오른쪽) 장군이 지난 2016년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의 예방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합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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