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01 13:47

여야의 ‘경제 사령관’으로 올라선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4월 총선을 앞두고 각자 거대정당의 수장이 돼 만났지만, 사실 이 둘의 정치권에서의 인연은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대를 함께 해 온 ‘경제맨’으로 매 정부마다 인사 하마평에 오른 두 사람에게 어쩌면 오늘과 같은 날은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둘의 경제 철학의 차이와 정책적 방향성의 차별성은 언론에 의해 자주 회자돼 오늘의 충돌은 불가피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제 두 경제통의 대결은 비단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을 넘어, 친시장주의와 경제민주화론의 이념적 대결의 상징처럼 비춰지고 있다. 

◆ 같은 호남 출신에 경제통...‘같은 듯 다른’ 두 인물
강봉균 위원장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사범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온 대표적인 호남출신 인사다. 그는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 그야말로 관료계에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정부에 들어간 지 24년 만에 노동부 차관으로 올라섰고, 곧이어 제24대 경제기획원 차관이 되면서 국가 경제의 디자이너로 본격적인 활약을 하게 된다. 

강 위원장은 관료의 길을 순탄히 걷다 2003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16·17·18대 국회의원을 모두 야당에서 지냈다.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야권에서 주로 정치를 해온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그러다보니 강 위원장이 새누리당의 경제 사령탑이자 선대위원장으로 올라선 것이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종인 대표의 정치적 뿌리도 호남에 있다. 김 대표는 전라북도 순창 출신이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손자다. 김 대표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광주로 떠나 피난생활을 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광주에서 나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나온 김 대표의 첫 사회생활은 할아버지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보좌역이었다. 그러다 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 대표는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민겅강보험 도입을 건의하는 등 정책 자문을 이어갔다. 

그러던 그는 1980년 전두환 주도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전문위원으로 정치권을 엿보다 이듬해 민주정의당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첫 발을 디뎠다.  잠시 새천년민주당을 거치긴 했으나 태생적으로 여당의 정치적 계보를 함께 해온 것이다. 강봉균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김 대표가 제1야당의 대표로 올라선 것이 우리 정치사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 지난 16년간 각종 하마평에 함께 올라
이처럼 같은 듯 다른 길을 걸어온 강봉균·김종인 두 인물은 지난 1999년 재경부 장관 후보군으로 함께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16년간 함께 각종 인사 관련 하마평에 올랐다.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과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매 정부마다 주요 요직의 하마평에 오르곤 했다.

IMF 위기를 가까스로 극복하기 시작한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로운 경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재경부 장관을 새로 임명하겠다고 밝혔고, 당시 강봉균 경제수석과 김종인 전 장관이 하마평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이 강봉균 수석에게 “내 곁에서 보좌해달라”고 요청해 장관직이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장관직에는 강 수석이 임명됐다. 

그리고 2001년 국무총리직 후보군으로 또 다시 둘은 회자된다. 장관직에서 물러나 총선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강봉균 전 장관과 재야에 머물러 있던 김종인 전 장관이 모두 호남출신 코드 인사로 거론됐다. 

2002년 8·8 재보선 당시에도 두 사람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오늘날 강봉균 위원장이 새누리당에,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에 있는 점과 비춰볼 때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시 한나라당이 김종인 대표를, 민주당이 강봉균 위원장을 영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 2003~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경제부총리직에 둘은 계속해서 회자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두 인사에 대한 영입론은 끊이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호남권 민심을 얻기 위해 인수위원회 경제팀에 강봉균·김종인 두 인물을 영입할 것이라는 설이 끊임없이 돌았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당시 전북권 선대위원장, 러닝메이트 개념의 총리 후보군, 당선 후 인수위원장 직에 모두 두 인사는 거론됐다. 

◆ 親시장·성장지향의 강봉균 vs 親정부·분배지향의 김종인
매 정부마다 요직 임명과 관련된 하마평에 올라오면서 동시대를 함께 해온 두 경제맨은 경제 철학과 관련해서는 대조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강봉균 위원장은 대표적인 친시장주의자다. 야권에서 정치 인생을 이어 온 강 위원장은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을 맡으면서도 꾸준히 친시장 성장 정책을 추구했다. 그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혁파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친기업적 행보를 보였다. 

또한 부동산 문제와 관련 신도시 공급을 늘려서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공급론자’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산분리 재고, 순환출자 규제 완화를 주장할 만큼 소신 있는 친시장적 가치관을 보였다. 

반면 김종인 대표는 경제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김 대표는 지난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교사로 참여했고, 이번 총선에서는 더민주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했다. 

2005년 삼성이 공정거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내자 김 대표는 당시 국희의원으로서 “언제가는 재벌이 정면도전할 줄 알았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쪽에서 헌법 제119조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재벌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헌법 조항”이라고 하는 등 경제민주화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이처럼 같은 듯 다른 행보를 보여 오면서 동시대를 함께 해 온 두 경제맨이 이제 각 당의 경제 수장으로 맞붙게 됐다. 90년대부터 계속돼 온 친시장주의와 경제민주화론의 정면 대결인 셈이다. 정책선거, 공약경쟁이 실종된 가운데 두 경제계 거장의 거침없는 설전과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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