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20.07.14 17:10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지난 주 하루 간격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장군을 놓고 진보·보수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박 시장은 조문과 서울시장(葬)에 대한 좌우 세력의 온도차가 극명하다. 백 장군의 경우 현충원 안장 자격 논란이 뜨겁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진영논리에 입각한 산 자들의 아귀다툼은 갈수록 극렬해지고 있다.

박 시장은 여비서에게 성추행 관련 고소를 당하자 이틀 만에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과 등졌다. 박 시장의 짧은 유서엔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유서 첫 구절에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라고 썼다. 죽음으로 모든 이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영원히 떠났다.

피해자 측은 13일 오전 박 시장의 발인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성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 고소 이유와 박 시장 성추행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법의 심판과 인간적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고소인이 사망함으로써 불가능해졌다.

피해자 측의 주장이 공개적으로 나왔지만 박 시장이 이미 숨진 만큼 성추행 여부를 법적으로는 재단할 수 없게 됐다.

다만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무엇보다도 거듭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청 측이 묵살했다면 관련된 사람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도 마땅히 뒤따라야 한다. 산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인권과 사회정의를 외쳐온 박 시장 입장에서 본다면 진위와 경중을 떠나 성추행 고소 자체가 견디기 힘든 멍에였고, 회생 불가능한 치명타였다.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3선 서울시장으로 살아온 그의 65년 인생 역정이 ‘성추행’이란 한 단어에 침몰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으로 모든 잘못을 덮을 수는 없지만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고인의 번민을 잠시나마 헤아려보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성정이다.

그런데도 야권에선 ‘조문 거부’란 매몰찬 반응이 불쑥 삐져나왔다. 박 시장과 한때 같은 배를 탄 적이 있는 야권의 두 유력 정치인이 조문 않겠다고 한 것이 무슨 큰 뉴스거리라고 몇몇 매체에선 대서특필했다. 

정의당은 일부 의원의 조문 거부로 탈당 파동이 일고 있다. 자신이 조문 안하면 그만이지, 굳이 안 간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건 뭐 있나. 인간적 미덕에 베풀기보다는 정치적 노선 과시나 이미지 관리를 더 중요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상중(喪中) 예의도 없다. 한 초선 야당의원은 부친 장례식에 참석차 귀국한 박 시장 아들의 병역의혹 문제를 슬쩍 끄집어낸다. 무슨 의도인지 감은 잡히지만 너무 비정하다. 여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 인사가 특유의 어법으로 “통합당이 똥볼이나 찬다”고 냉소하자, 앵커 출신 여성 의원이 “막말과 똥만 찾으시니 안타깝다”고 바로 맞받는다.

반려동물이 죽어도 장례를 치르는 요즘 세상이건만 공명심에 눈먼 자들이 엄숙한 사람 장례식을 똥으로 덧칠해버린다. 인간의 죽음이 이처럼 지저분한 설전으로 이어지는 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갈라진 민심에 생채기를 보탤 뿐이다.

장례도 다 치르기도 전에 뭐가 그리도 급한지, 서울시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조급증이 불치병 수준이다.

순직이 아닌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치르는데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5만명을 넘었다니 고인의 마지막 길이 편치 않았을 터이다. 고소인 ‘신상털이’와 ‘2차 가해’ 논란으로 세상이 혼란스럽다. 물론 박 시장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 없는 일이다. 성추행 피해를 당한 아픔부터 위로하는 것이 산 자들의 의무이다.

박 시장의 사망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무렵, 백선엽 장군이 100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군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으로 살아온 백 장군은 6.25전쟁 영웅이란 찬사가 있는 반면,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 간도특설대 복무 전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비판이 뒤따른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명암이 극명히 교차한다.

친일 행적과 6.25전쟁 공로,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백 장군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너울을 탄다. 우리 현대사의 영욕을 한 몸에 떠안은 백전노장의 100년 인생이 좌우 물결에 휩쓸리며 종착지에 도달했음에도 논란은 끝이 안 보인다.

공과(功過)와는 별개로 백 장군의 빈소엔 여야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빈소를 찾았다.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국 인사들도 한·미동맹의 상징인 백 장군의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을 요구하며 정치적 색깔을 입히려 무던히 애쓰고 있지만 헛심만 뺄 뿐이다.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 자격을 두고 좌우가 날 서게 대립하고 있다. “6.25 전쟁 영웅을 서울현충원에 모셔야한다”는 주장에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질 친일파를 6.25전쟁 공로가 인정된다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면 안 된다”는 반대가 맞부딪친다.

국가보훈처는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자 6.25전쟁 당시의 전공으로 볼 때 백 장군의 현충원 안장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현충원은 현재 만장이어서 백 장군은 15일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그런데도 야권에선 개인 묘역을 별도로 마련해서까지 서울현충원으로 모셔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백 장군의 보수 이미지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백 장군을 굳이 서울현충원에 안장시키려는 보수 세력의 입장에 정작 유족들은 “대전도 우리나라다”란 말로 안장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피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친일 파묘(破墓·무덤을 파냄)’ 법안까지 마련해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행적자들의 묘를 이장하겠다고 밝혀 백 장군 묘소 뗏장이 온전히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진보의 대선후보로 꼽히던 박 시장이나 보수를 대변하는 백 장군이 극단으로 치닫는 이승의 진영싸움에서 벗어나 부디 안식하시길 기원한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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