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01 15:03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라는 노천명 시인의 '사슴'이라는 시 안에서 사슴은 가련하고 슬픈 짐승의 이미지다. 그러나 한자세계에서는 권력, 소란스러움의 이미지도 얻었다.

하천의 모양으로 인해 얻은 지명이자 역명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는 지금의 노원구 월계동에 있던 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하천이 중랑천과 우이천의 두 갈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앞의 월계역을 지나면서 설명했다. 그 하천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의 모양이 사슴의 뿔을 닮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 녹천(鹿川)이라는 얘기다.

다른 설도 있다. 이곳의 산이 마치 사슴 한 마리가 냇물을 마시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얘긴데, 그런 사슴이 산에서 내려와 마을이 평안해졌다는 전설이 이 지역에 전해 내려왔다고도 한다. 사슴은 그렇게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동물로도 등장한다.

그런 상징은 일찌감치 사슴을 가리키는 글자 鹿(록)에 가득 담겼던 모양이다. 여기서는 이 글자를 헤아리기로 하자. 상서로움과 함께 고대 중국에서는 장수(長壽)를 내려주는 신이 사슴을 타고 다닌다고 해서 鹿(록)은 ‘장수’를 상징하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각종 종교 그림이나 조각 등에 사슴이 등장하는 점도 범상치 않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좌대(座臺) 조각으로 나오기도 하며, 기독교 설화 속에서는 산타의 수레를 끄는 존재로도 나온다.

아울러 아름다움의 상징으로도 남았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 麗(려)의 밑부분은 이 사슴을 가리키는 글자 鹿(록)이다. 그 위에 두 갈래가 뻗어져 나왔는데, 이를 사슴의 가죽으로 보는 설명이 있다. 결국 그런 의미에서 麗(려)가 아름다움을 뜻하는 글자로 변했는데, 이는 사슴 자체가 그와 관련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설이다. 부부를 의미하는 한자 단어 항려(伉儷)의 뒷글자 儷(려)도 역시 사슴 鹿(록)을 지니고 있는데, 고대 중국의 혼사에서 결혼하는 남자가 여자 집안에 사슴 가죽을 보내는 풍습으로부터 나온 글자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사슴 鹿(록)의 가장 뚜렷한 상징은 바로 ‘권력’ 또는 그를 움켜쥔 사람의 ‘자리’다. 성어에는 축록(逐鹿)이라는 게 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중국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뒤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으면서, 천하는 모두 그를 쫓고 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여기서의 ‘사슴’은 진시황이 물러난 그 자리, 즉 황제의 권력을 가리킨다. 아울러 천하의 대권(大權)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슴을 쫓는다’라는 축록(逐鹿)이라는 성어는 결국 ‘대권을 두고 경쟁하다’는 뜻이다. 꼭 대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다툼이 있는 상황에서의 ‘헤게모니’를 뜻하기도 한다. 일종의 권력 쟁탈전이라고 보면 좋다.

왜 하필이면 사슴을 천하의 권력에 비유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딱 떨어지는 유래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류의 생활이 완전히 정착의 모습을 이루기 전에는 사냥감으로서 가장 좋은 동물이 사슴이었을 것이다. 늘 그를 뒤쫓아다니며 동물성 단백질 얻기가 생활 속의 큰일이었을 테다. 따라서 열심히 그 뒤를 쫓는 모습이 천하의 대권을 다투는 행위와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인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축록(逐鹿)이라는 성어이자 단어는 네 글자로 표현할 때, 축록중원(逐鹿中原)으로 적는다.

사슴이 등장하는 성어로 아주 유명한 게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鹿)을 가리키면서(指) 말(馬)이라고 하다(爲)의 엮음이다. 역시 진시황이 사망하고 난 뒤 간신 조고(趙高)가 당대의 실력자에 오르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가 황제에게 사슴을 진상하면서 “말(馬)을 받아주십시오”라고 했는데, 황제가 “이게 사슴이지 어디 말이냐”며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 조고가 제대로 말한 사람들을 기억해서 보복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고 한다. 일부러 옳고 그름을 거꾸로 뒤집는 일을 가리키는 성어다.

귀한 한약재로 쓰는 사슴의 뿔에는 녹용(鹿茸)과 녹각(鹿角)이 있다. 같은 뿔이지만 앞의 녹용은 핏기가 들어 있는, 그래서 영양이 높은 사슴뿔이다. 녹각은 그 녹용에서 핏기가 빠진 것으로서 영양분이 그보다는 못하다고 한다. 녹채(鹿砦)는 전쟁터에서 적군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사슴뿔(鹿) 모양으로 나무 등을 사용해서 성채(城砦)처럼 만든 방어 장치다.

그런 다양한 단어 외에 녹야원(鹿野苑)이라는 명칭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가 처음으로 다섯 비구(比丘)를 상대로 설법을 한 장소다. 부처의 깨달음이 처음 사람의 언어로 나와 전해진 곳이니 성스러운 영역이다. 그곳의 원래 명칭은 다양하게 전해지나, 어쨌든 사슴도 그곳의 지명과 일정한 인연을 맺고 있었던가 보다.

시인 노천명이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라며 예찬한 그 슬프고도 우아한 사슴이다. 녹천(鹿川)뿐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그런 사슴이 이리저리 유유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는 그때, 정치인처럼 그 뒤를 죽기 살기로 뛸 일이 아니다. 사슴 뒤를 쫓아 뛰어다니면 먼지가 인다. 鹿(록)이라는 글자 밑에 흙을 가리키는 土(토)를 넣으면 먼지라는 뜻의 塵(진)이다.

먼지 가득한 세상이 바로 고생스러운 세상, 즉 홍진(紅塵)이다. 바람까지 불어대면 바로 풍진(風塵)이다. 사슴 잘못 건드리면 먼지가 가득 일어 세상이 어두워진다. 그러니 사슴을 사슴으로 볼 뿐, 거기에 권력과 힘이라는 상징은 덧붙이지 말자. 그냥 고요하게 거니는 사슴을 우리는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조용히 바라보며 그 생태를 지켜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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