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01 15:43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땅으로 꽂힐 때 선(線)으로 보인다. 그를 빗발이라 표현했고, 이는 한자 낱말 우각(雨脚)으로부터 나왔다.

나이 50이 넘어 초로(初老)의 길에 들어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년)는 만년이 초라했다. 겨우 집 하나를 얻은 게 그의 ‘초당(草堂)’이다. 띠를 가리키는 茅(모)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다. 지금 쓰촨(四川)의 청두(成都)에 있는 ‘두보 초당’은 후대 사람들이 그를 기념코자 만든 것이다.

그 초당의 지붕이 거센 비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진 적이 있다. 동네 아이 녀석들은 바람에 날려 흩어진 두보 집 지붕 띠를 들고 도망쳤던 모양이다. 초로의 나이에 겨우 장만한 집, 그리고 비바람에 날려 없어진 지붕, 비가 새는 집에서 자식들을 잠 재워야 했던 아비 두보의 심정…. 전란에 쫓겼던 천재 시인 두보의 감성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띳집’이라는 시에 잘 드러난다.

빗방울이 수직으로 땅에 꽂힐 때는 하나의 기다란 선(線)으로 보인다. 그 모습을 雨脚(우각)이라 적었고, 두보의 시를 한글로 풀었던 <두시언해(杜詩諺解)>는 그를 ‘빗발’이라는 순 우리말로 번역했다. 한자의 표현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만든 하나의 예다.

비를 가리키는 한자 雨(우)는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는 모양을 그렸다. 새김은 당연히 ‘비’다. 24절기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그 다음이 우수(雨水)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이 강수(降水)인데, 보통 눈과 비로 나눠진다. 우수는 냉랭한 대기가 따뜻해져 강수의 형태가 눈에서 비로 바뀌는 시점이다. 비는 구름에서 만들어지는 까닭에 雲子(운자)라고도 적는다. ‘빗발’은 다른 말로 雨足(우족)이라고도 한다.

우수를 시작으로 대기 중의 습기는 비로 변해 대지를 적신다. 그래도 아직 차가움이 가시지 않아 얼어붙은 상태로 떨어지는 그 빗방울은 동우(凍雨)다. 얼지는 않았어도 차갑기 짝이 없는 빗물은 찬비, 즉 냉우(冷雨)다. 대지를 촉촉하게 물들이는 가랑비는 세우(細雨)다.

수 만 마리의 말이 대지를 거침없이 달릴 때의 모습이 떠올려진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 취우(驟雨)다. 마구 쏟아지는 소나기다. 그러나 이 비는 오래 내리지 않는다. 잠시 퍼붓고 난 뒤 바로 자취가 묘연해진다. 그래서 나온 말이 ‘소나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驟雨不終日)’다. 일시적인 현상이 오래 갈 수 없다는 의미다. 갑작스럽게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급우(急雨)라고 하는 비도 소나기의 일종이다.

소나기 형태지만 더욱 오래 퍼부어 피해를 내는 비가 사나운 비, 폭우(暴雨)다. 폭우는 종류가 많다. 내리는 비의 양이 많으면 그저 호우(豪雨)일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형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게 분우(盆雨)다. 큰 물동이를 거꾸로 기울일 때 쏟아지는 물처럼 비가 내린다는 뜻의 ‘경분대우(傾盆大雨)’의 준말이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뇌우(雷雨)다.

매실 익을 때 내리는 6월 전의 비는 매우(梅雨), 땅을 충분히 적실 정도로 내리는 비는 투우(透雨)다. 땅을 뚫고 내려가는 비, 투지우(透地雨)의 준말이다. 사흘 이상 이어지는 비는 임우(霖雨)다. 임우는 장맛비를 뜻하기도 한다. 그칠 줄 모르는 비,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로 天漏(천루)라고도 적었다. 손님의 발길을 막는다고 해서 留客雨(유객우)라고도 한다.

좋은 비는 때맞춰 적절하게 내린다. 이른바 ‘급시우(及時雨)’다. <수호전(水滸傳)> 양산박(梁山泊) 108 두령의 첫째인 송강(宋江)의 별칭이기도 하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급시우는 단비, 즉 감림(甘霖)이다. 봄은 왔으나 대지는 메마르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수 있도록 이 무렵에 단비가 내렸으면 싶다. "좋은 비는 제가 내려야 할 때를 잘 안다(好雨知時節)"고 했는데, 늘 그런 비가 오면 좋겠다.

 

<한자 풀이>

驟 (달릴 취): 달리다. 빠르다. 몰아가다. 갑작스럽다. 자주. 여러 번. 갑자기. 돌연히.

透 (사무칠 투, 놀랄 숙): 사무치다, 다하다. 꿰뚫다, 투과하다. 통하다. 투명하다. 환하다. 맑다. 달아나다. 뛰다, 뛰어오르다. 새다. 놀라다(숙).

霖 (장마 림, 장마 임): 장마. 사흘 이상 내리는 비. 비가 그치지 아니하는 모양.

 

<중국어&성어>

未雨绸缪(綢繆) wèi yǔ chóu móu: 비 내리기 전 집의 창문 등을 수리한다(綢繆)는 뜻. 화가 닥치기 전 그를 미연에 방지하고 대비한다는 뜻. 아주 많이 쓰는 성어.

巴山夜雨 bā shān yè yǔ: 파산이라는 객지에서 맞는 밤비. 처량한 나그네의 심정으로 맞이하는 비. 고독한 심정을 형용할 때 쓰는 성어다.

巫山云(雲)雨 wū shān yún yǔ: 위의 巴山과 이 성어 속의 巫山은 붙어 있는 곳이다. 지금의 싼샤(三峽) 중간에 있는 곳의 지명. 전설에 등장하는 여신과 초나라 왕이 이곳에서 남녀의 정을 나눴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남녀합환(男女合歡)을 가리키는 ‘19금’ 성어다. ^^ 운우지정(雲雨之情), 운우지락(雲雨之樂)의 ‘19금’ 용어도 예서 나왔다.

呼风(風)唤雨 hū fēng huàn y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불러들이다. 남이 갖추지 못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 또는 그런 행위. 많이 쓴다.

风调(風調)雨顺(順) fēng tiáo yǔ shùn: 바람이 잦아들고 비도 조금씩 오는, 아주 좋은 환경. 커다란 문제없이 일을 잘 처리해가는 그런 상황. 자주 쓴다.

狂风暴雨 kuáng fēng bào yǔ: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 거센 비. 좋지 않은 환경을 가리킨다. 역시 자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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