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7.19 05:00

이종훈 "차기 대권 주자들 입장 반영하면 가능할 것"
박상병 "통합당, 4년 중임제에는 절대로 동의할리 없어"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전현건 기자)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이 개헌을 공식 제안하면서 33년 된 최장수 헌법이 개정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박 의장은 17일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열린 제헌절 기념식에서 "앞으로 있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며 "코로나 위기를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말했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등의 재보궐 선거를 치른뒤 활발한 논의를 거쳐 이듬 해 대선 및 지방선거 전까지 개헌을 완료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박 의장은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고,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권적 기본권을 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 헌법"이라며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언급된 개헌은 권력구조 개편, 즉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정치권, 끊임없이 개헌 카드 꺼냈지만 번번이 좌절

지난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국회는 헌법을 제정한 이후 아홉 번에 걸친 개정 끝에 1987년 현행 헌법이 완성됐다. 올해 서른 세살이 된 최장수 헌법이다. 

그 이후 정치권은 끊임없이 '헌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계속 실패했다. 권력구조를 포함하는 개헌 논의의 민감성 때문에 개헌은 역대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촛불정국'을 거친 20대 국회가 개헌을 논의할 최적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 헌정사상 초유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국정농단의 원인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대통령제에 있다는 문제 의식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후 촛불 정국에서 치러진 대선 과정에서 여야 대선주자는 일제히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회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헌법개정특위를 가동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여야는 결국 권력 분산 방법과 개헌 시기를 놓고 이견만 노출한 채 앞선 개헌 논의들처럼 합의안 마련에 실패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연임제를 주장했고,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대폭 약화한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국회 주도 개헌 논의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지키는 차원에서 2018년 3월 직접 개헌안을 발의했다. 그 해 6월 있을 지방선거와 헌법 개정 국민 투표를 동시에 시행한다는 계획이었다.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여야는 당시 계속된 공방에 드루킹 사태까지 겹치며 6월 개헌을 위해 필요한 국민투표법 개정은 데드라인을 넘겼고, 개헌안 처리는 끝내 좌절됐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발의 시점으로부터 60일이 지난 2018년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졌으나,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 불참으로 의결정족수가 안 돼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00석)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 다음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후 개헌 동력은 크게 떨어졌고, 지난 3월 여야 의원 148명은 국민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원포인트 개헌안'을 제출했다.

역대 국회의 개헌 노력이 실패를 거듭한 가운데 개헌을 위한 개헌을 추진한다는 취지였지만 이마저도 투표 불성립으로 국회 문턱을 채 넘지 못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사진=전현건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 (사진=전현건 기자)

김종인 "내년 개헌 회의적…한다면 내각제"

지난 4·15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여당은 개헌 발의 기준인 과반(150)을 훨씬 넘긴 176 의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도 개헌 추진을 막을 수 있는 저지선(103석)을 확보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통합당은 박 의장이 개헌을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에 대해 "21대 국회가 집중해야 할 것은 소모적인 개헌 논의가 아니라 민생부터 챙기는 일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준영 통합당 대변인은 "요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부쩍 늘어나니 그러신지 모르겠다"며 "헌법이 시대적 요구를 담고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비롯한 숱한 현안이 산적해있다"며 "적어도 여야간,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후에 시작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는 박 의장의 개헌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개헌을 하게 된다면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과거 국회도 매번 시작을 하면 그때 의장들이 다소 개헌 이야기를 하면서 개헌 자문회도 구성하고 시안도 내보고 했는데, 지금까지 개헌을 한 번도 성립해본 적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두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그는 "개헌을 하려면 대선 전에 개헌을 해야해서 대선이 1년쯤 남은 시점이 적기라고 판단하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개헌을 준비해서 내년 4월까지 개헌을 완성할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나는 18대 국회 때 헌법개정 정책자문위 위원장을 해서 개헌의 시안까지 제출한 적이 있다"며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개헌을 하려면 권력구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가 그것이 핵심 방향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개헌 방향과 관련, 김 위원장은 "대통령제는 그동안에 우리가 많이 체험해봤고 그것에 대한 장단점을 다 알기 때문에 개헌을 하면 권력을 분점하는 측면에서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내각제 도입 등 야당이 원하는 조항이 개헌안에 담기지 않는 한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전국민이 참여하는 2022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다. 그 때 개헌 국민 투표를 동시에 실행한다고 해도 사실상 임기 내 개헌이 불가능해졌다. 임기 말을 준비하는 문 정부가 개헌에 적극적일 수 없는 이유다.

실제 청와대도 이날 박 의장이 개헌을 공식 제안한 것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내용 없다"고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헌에 대해선 이미 정부가 마련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5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헌법 개정안을 재발의할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사진=전현건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사진=전현건 기자)

권력 구조 개편없이 통합당 동의 안할 것…통합당 이탈표 가능성도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헌시기와 필요성은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면서도 "개헌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변화인데 민주당이 4년 중임제를 고수한다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그는 "통합당은 민주당이 또다시 4년 중임제를 들고 나온다면 개헌안에 절대로 동의할리 없다"면서 "민주당의 연속적 선거 승리로 다음 선거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대통령을 8년을 더 하려고 개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통합당의 의석수는 개헌저지선인 103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헌은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여권이 진짜 의지가 있다면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야당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헌 시기에 대해 "여권이 제왕적 대통령의 변화를 택하면 내년까지는 개헌의 적기가 될 수 있지만 내년에 개헌이 안 된다면 절대로 실현가능성이 없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개헌은 어렵다"고 전망했다.

다만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개헌 논의가 힘이 빠질 수 있다"면서 "국회 원 구성 진통으로 야당의 반감이 커진 것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과거 정부들은 레임덕을 막고 흔들림 없는 국정운영을 위해 개헌 카드를 꺼내 들곤 했지만 이번 정부는 코로나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나 코로나에서 파생된 먹고 사는 문제가 준엄한 상황"이라며 "이같은 상황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박 의장의 개헌 이야기는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면서 "민주당에 불거진 각종 의혹들부터 해결하는 것이 개헌 이야기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종훈 정치 평론가는 "개헌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국회 영향력 측면에서 정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개헌을 할 호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이 평론가는 "개헌에 담길 내용이 결국 중요하다"면서 "권력구도만 가지고 야당에게 유리할 부분인 이원집정부제나 제왕적 대통령 구도를 깰 당근을 주면 통합당에서도 이탈표가 나올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들 입장을 반영해 개헌이 합의된다면 박 의장이 말한 것처럼 내년 봄에 여당이 추진할 것"이라면서 "이번 7월 정기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논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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