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대청 기자
  • 입력 2020.07.26 05:00

말기암 이용자 생일 기념 우주전투에 2000여명 참여

펄어비스 '검은사막'에서 열린 가상 결혼식. 체코 이용자 'insidel'과 'svetluska'은 지난 5월 검은사막 내 그라나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제공=펄어비스)

[뉴스웍스=장대청 기자] 언택트 시대, 게임 속 세상이 또 다른 '작은 사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세로 게임을 찾는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유니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PC·콘솔 게임의 일간 이용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 늘어났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게임 세상을 찾은 이들은 그 안에서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듯이 가상 공간을 오가며 게임 전시를 구경하고 유명 가수의 공연을 봤다. 현실서 미뤄진 결혼식을 게임 안에서 올리고 암으로 투병 중인 이용자를 위해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게임에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데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현실서 할 수 없게 된 일들을 게임에서 해내는 것이다. 게임업체 한 대표는 "게이머들은 이제 게임에서 단순히 전투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안부를 전하고 일상을 이야기한다"며 "게임이 현실 소셜 플랫폼으로 자연스레 진화하게 된 것이다"라고 전했다.

◆결혼식 올리고 축제 열고…'사회 활동' 무대 변신한 게임

펄어비스의 MMORPG '검은사막'에서는 지난 5월 가상 결혼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체코에서 검은사막을 즐기던 커플이다.

'insidel'과 'svetluska'란 캐릭터 아이디를 쓰던 커플은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실제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하게 됐다. 커플은 평소 즐겨하던 게임에서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했다.

펄어비스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5월 23일 검은사막에서 가상 결혼식을 진행했다. 결혼식은 게임 내 아름답기로 소문난 '그라나 궁전'이라는 공간에서 열렸다. 검은사막의 게임 매니저들이 게임 속 작곡 시스템을 활용해 축혼 행진곡을 연주했다. 커플과 친분이 있던 길드원들이 자리에 참석해 긴 축하 도열을 만들었다.

결혼 서약 이후에는 펄어비스가 마련한 주거지에서 애프터 파티도 펼쳐졌다. 길드원들은 다양한 몸짓을 취하며 신랑 신부를 축하했다. 이 결혼식은 SNS로 퍼져나가며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포트나이트 이용자가 온라인 영화 상영회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떠들썩한 축제도 열렸다.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에서는 영화 상영회와 라이브 공연이 한날 펼쳐졌다. 전염병 여파에 영화관도 공연장도 가기 힘든 이용자들을 위로할 잔치였다.

에픽게임즈코리아는 6월 26일 포트나이트의 3D 소셜 공간 '파티로얄'에서 영화 '인셉션' 상영회 '파티로얄 무비 나이트'와 아티스트 '디플로' 최신 앨범 공개 라이브 공연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 10시에는 프로듀서이자 래퍼, DJ, 작곡가인 디플로가 최신 앨범 '디플로 프레즌트: 토마스 웨슬리'를 공개했다. 파티로얄에 마련된 무대에서 힙합 뮤지션 영 서그(Young Thug)와 배우 겸 가수 노아 사이러스(Noah Cyrus)가 나와 공연을 펼쳤다.

자녁에는 파티로얄 내 커다란 스크린에서 인셉션이 상영됐다. 게임 내 아이템인 의자를 깔아두거나 높은 구조물에 올라가는 등 이용자들은 각자 편한 곳에 자리 잡고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를 감상했다.  

 

암 투병 이용자 '채피78 채프먼'을 위로하기 위해 '이브 온라인' 게이머들이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CCP 게임즈)

게이머들에게 늘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슬픈 일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게임을 활용했다.

펄어비스 자회사 CCP 게임즈가 운영하는 SF MMORPG '이브 온라인'에서는 췌장암 투병 중인 이용자를 위한 대규모 우주 전쟁이 열렸다.

이브 온라인을 즐기던 이용자 '채피78 채프먼'은 지난 6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42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던 그는 10년간 함께한 게임 커뮤니티에 이 소식을 전하며 생일 기념 전투에 이용자들을 초대했다.

전 세계 이용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6월 23일 게임 내 가상 세계 '투누단 태양계'에 모였다. 이용자들은 아낌없이 서로의 함선을 폭파하며 대규모 우주 전쟁을 벌였다. 

이날 우주 전쟁에는 게임 개발진을 포함해 약 2000여 명의 이용자가 참여했다. 이는 이브 온라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됐다. CCP 게임즈는 이 전쟁을 위해 서버 안정화를 돕는 네트워크 리소스를 지원하기도 했다.

◆전에 없던 '게임' 전시회…'2020 인디크래프트 가상 게임쇼'

게임은 비즈니스를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도 떠올랐다. 

지난 22일 문을 연 '2020 인디크래프트'는 게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끈 핫한 이벤트다. 코로나19로 줄줄이 일정이 취소된 가운데 열린 게임쇼라는 점도 있지만 '가상게임쇼'라는 특별한 포맷 덕분이다.

'인디크래프트 가상게임쇼'에 입장하면 나오는 화면. (사진=가상게임쇼 갈무리)

이번 인디크래프트가 펼쳐지는 가상 공간은 글로벌 기업 엑솔라의 가상 게임쇼 플랫폼 '유어 월드'를 행사에 맞춰 새로이 구축한 곳이다. 가상게임쇼 세계를 찾은 관람객들은 단순 영상으로 게임을 만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마치 MMORPG 게임을 하듯 전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출품된 게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에 없던 '게임' 전시회다.

아바타의 형태로 세계에 입장하면 마치 놀이공원 같은 전시장이 보인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게임사가 마련한 부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스에 다가가면 전면에 보이는 화면에서 게임 소개 영상을 만날 수 있다. 화면 앞에 설치된 판넬에는 게임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다. 키를 조작하면 정보 화면이 떠 이를 열람할 수 있다. 

곁에는 게임사에서 나온 직원 아바타들이 자리를 지킨 곳도 있었다. 원한다면 이들과 보이스 챗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텍스트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명함 교환 기능도 있다. 부스 오른쪽에 보이는 QR코드를 이용해 홍보영상이나 게임을 다운로드해 즐겨도 된다.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린 B2B 행사에만 누적 800여 명이 방문했다.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한 관계자는 "아바타와 보이스챗을 이용해 마치 실제로 만나서 미팅을 진행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24~26일에는 인디게임에 관심이 많은 일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B2C 행사가 진행된다. 온라인 가상게임쇼 접수페이지에서 B2C 런처를 다운받아 계정을 만들면 누구나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인디크래프트 가상게임쇼'에 마련된 부스 앞에 관계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가상게임쇼 갈무리)

가상게임쇼 내 어트랙션인 '고 카트'에서는 미니게임을 즐길 수 있다. 트럭 모양 행사 후원사 부스에서는 다양한 미니 이벤트가 열린다. 가상 공간을 걷다 보면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컴투스, 엑스박스, 유니티 등 유명 행사 후원사들이 세운 광고판도 마주하게 된다.

행사장은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었으며 60여 종의 게임이 소개된다. 게임 유튜버 '김성회의 G식백과' 김성회가 나오는 게임쇼 라이브도 25일 오후 진행됐다.

인디크래프트는 성남시가 주최하고 성남산업진흥원과 한국모바일게임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행사다.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 아래 올해 2회째를 맞았다. 인디크래프트 관계자는 "이번 2020 인디크래프트 온라인 가상 게임쇼가 새로운 게임산업의 길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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