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7.25 14:00

"남성혐오·역차별적인 제도만 만들어"…공공기관장 성범죄, 별도 매뉴얼로 처리하면서 지자체장 누락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사진=여성가족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사진=여성가족부)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여성가족부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 뒷북 대책에 이어 기관으로서의 한계도 명확히 드러내 비판을 받고 있다.

여가부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서울시 현장점검을 28일에서 29일 이틀 간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박 전 시장의 전 비서 측이 지난 13일 1차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을 제기한 지 보름 만에 이뤄지는 현장 조사이다.  

여가부는 이번 현장 점검을 통해 조직 내 고충상담처리시스템 운영, 재발방지책 시행 여부 등을 점검하고 2차 피해 상황이 있었는지 등을 살필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점검 결과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징계 요청 등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언론 공표를 통한 구속력이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여가부의 대처에 대해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여가부의 존재 의미와는 맞지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박 시장의 성추행 관련 피소가 알려진 지난 9일 이후 한참 뒤인 지난 14일 뒤늦게 "서울시의 성희롱 방지 조치를 점검한다"고 밝혀 뭇매를 맞은 봐 있다.

'피해자' 호칭을 둘러싸고도 뒤늦게 입장을 발표했고 과거 안희정 충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범죄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자체 매뉴얼에 '지자체장'을 포함하지 않아 유사한 피해가 반복됐단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앞서 여가부는 안 전 지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과 사회 각계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질 당시인 지난 2018년에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과 '공공기관의 장 등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을 발표했다. 여기서 '공공기관의 장'은 '공직 유관단체의 장'을 의미하며 지자체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공기관장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따로 마련된 매뉴얼이 있는데도 그보다 권력이 훨씬 센 지자체장의 성범죄는 단순히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에 따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여가부에는 박 시장과 같은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사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

결국 여가부가 이번에 밝힌 대책의 대부분이 고충상담처리시스템 운영 현황 점검, 재발방지대책 시행 여부, 성폭력예방교육의 내용과 방식, 직원 참여, 2차 피해 상황 여부 등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성지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이번과 같은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가부에) 조사기관이 없다"며 "이를 위해 여가부 기관이나 다른 기관과의 협업을 위한 법 개정이 필요할 듯하다"고 밝혔다.

실제 여가부는 박 시장 사건을 계기로 조사기관 신설을 위한 법 개정을 요청한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여가부내의 기관이 될지 다른 기관과의 협업이 될지 알 수 없다.

'여가부 폐지에 관한 청원' 10만명 돌파…지난해 폐지 청원 300건 

'평등을 일상으로.'

이 문구는 여성가족부의 슬로건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여가부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여성의 권익 증진 등 지위향상 및 청소년과 가족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부처로 규정돼있다. 

실제로 여성 사회 참여 확대 외에도 성별을 따지지 않고 성폭력·가정폭력 등을 예방,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다문화까지 포용하는 가족 정책을 관장하고 있다.

문제는 성평등 정책 관련 주무부처임에도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고, 고위공직자의 잇따른 성범죄에 대해 책임 있는 조처를 내놓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는데도 사건 발생 2주 만에야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국회에 접수된 국민동의청원에서 지난 21일 '여가부 폐지에 관한 청원'이 나흘 만에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가부 폐지 관련 청원글만 300건이 넘기도 했다. 

국회에 국민동의 청원이 10만명을 넘기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정부조직법의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행정안전위에 안건이 올라왔다. 이 청원이 행안위에 부쳐진 것은 행안위에서 정부조직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각부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제26조에 따라 18개 정부부처가 나열돼 있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이 조항을 수정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돼 처리돼야 한다.

폐지 청원 이유를 살펴보면 "성평등 및 가족·청소년 보호 등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하라는 성평등 정책은 하지 않고 남성혐오적이고 역차별적인 제도만 만들었다"며 "여성인권조차도 최근 정의기억연대 및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등에서 수준 이하 대처와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지난 23일 "여가부 폐지 청원은 여가부 정책과 역할에 대한 기대감으로 출발한 것으로 본다"며 "국민들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 통합추진…야당 반발

국회에서는 여성가족위원회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여성가족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통합하는 방안을 담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월 4회 이상 상임위 법안소위를 열어야 하는데 여가위가 전담하는 업무가 많지 않아 이 규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다. 문체위와 통합하는 것이 여성 및 젠더 이슈를 다루기 더 수월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여가위 통폐합은 18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지적된 사안이다. 겸임 상임위기 때문에 주요 상임위 논의와 일정이 겹치게 되면 비정기적으로 잡은 회의들도 취소나 연기가 되기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정재 여가위 미래통합당 간사는 "입으로만 정의, 입으로만 젠더, 입으로만 도덕을 외치며 국민을 속여왔던 '입진보'가 이제는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대놓고 행동으로 퇴보를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 역시 "참으로 무책임하고 한심한 발상"이라며 "같은 논리라면 그동안 쪽지 예산, 밀실 예산에 최근 '무심사 추경'까지 논란이 끊이질 않는 또 다른 겸임 상임위인 예결위도 통폐합 하자고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가위가 폐지되는 것이) 잘못된 뉴스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적었다. 용 의원은 "부담으로만 여겨진다는 식으로 여가위 업무를 대하는데, 문체위와 통합하면 여성 관련 법안이 잘 다뤄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여가위를 지망했으나 비교섭단체라는 이유로 배정받지 못했음을 전하며 "교섭단체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지금의 운영방식을 바꿔 최소한 겸임 상임위만이라도 희망하는 의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면 될 일"이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신설되는 문화체육관광여성위원회의 위원들은 현재 문체위원들이 그대로 맡게 된다. 16명의 문체위원 중에서 여가위를 겸하고 있는 의원은 민주당에선 유정주, 임오경, 통합당에선 임의자 의원 3명 뿐이다. 

대다수가 문화, 체육, 관광 등에 전문성을 가지거나 관심이 있어서 문체위원이 됐기 때문에 여성 문제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보임을 통한 재조정이 없다면 이 같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오히려 전문 상임위가 되면 위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대 국회 여가위원장을 맡았던 전혜숙 민주당 의원은 "여가위가 겸임이라 상임위가 거의 안열렸다. 의원들이 시간을 못내서 일정 맞추기부터가 어려웠다"며 "오히려 합치는게 맞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상징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여가위를 단독 상임위화하는 방안도 거론되나 여가부의 규모나 여가부를 향한 일각의 불신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전 의원은 "그렇게 되면 가장 좋겠지만 단독 상임위를 하려면 여가부의 일과 예산이 많아야하는데 1조원을 겨우 넘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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