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04 14:28
메마른 겨울 숲의 기운이 빠지고 땅이 녹으면서 식생의 움이 트기 시작한다. 봄은 이렇게 조용히 마른 식생의 가지 끝에서 돋아온다.

‘움트다’는 봄날의 언어다. ‘움’은 새싹을 가리킨다. ‘트다’는 나와 자라며 올라오는 동작을 지칭한다. 그러니 ‘움트다’에서 우리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겨울의 메말랐던 숲에서 초목의 싹이 일어나는 소리다. 

정말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숨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이른 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한자 단어가 바로 '발생(發生)'이다.

이 단어는 우선 사건과 사고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건(사고)이 발생했다"는 말이 아주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출발점은 ‘움트다’에 가깝다. 일어나(發) 자란다(生) 식의 엮음이 본래의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의 쓰임새에서 이 단어는 직접적으로 겨울 끝에 다가오는 반가운 봄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봄을 가리키는 글자 春(춘)의 별칭이다. 봄을 지칭하는 ‘대표선수’ 격의 글자 春(춘)은 ‘매일 자라나다’의 새김을 지닌 두 글자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四季)는 한자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다. 각 계절은 보통 세 달로 묶는다. 그 세 달의 첫째에는 孟(맹), 가운데에는 仲(중), 마지막에는 季(계)를 붙인다. 따라서 초봄은 맹춘(孟春), 중간의 봄은 중춘(仲春), 끝 달의 봄은 계춘(季春)이다.

孟仲季(맹중계)는 본래 형제자매의 첫째와 중간, 막내를 가리키는 글자다. 이 세 달의 봄을 묶어서 부를 때의 별칭이 三春(삼춘)이다. 한 달이 30일, 그래서 세 달이면 90일이다. 이를 강조할 때 봄의 별명은 九春(구춘)이다.

봄이 오면 해는 동쪽 땅을 중심으로 운행한다고 봤다. 그래서 봄을 東陸(동륙)이라고도 한다. 새싹이 자라나는 계절이라고 해서 發節(발절)로도 적는다. 때로는 꽃이 피어나는 달이라는 뜻에서 花月(화월), 芳春(방춘) 또는 芳節(방절)로도 표현한다.

그러나 봄은 따사로운 햇빛과 햇볕을 떠나 생각하기 힘들다. 봄볕의 따스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봄의 별칭이 陽春(양춘), 陽季(양계), 陽中(양중) 등이다. 겨울의 혹심한 추위에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물이 흐르며 만물은 소생의 기운을 띤다. 그 근원을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과 볕으로 간주하는 표현들이다.

맑고도 따뜻한 봄의 햇빛과 햇볕을 가리키는 한자 단어 중 눈에 띄는 것이 春暉(춘휘)다. 때로는 三春暉(삼춘휘)라고도 적는다. 暉(휘)라는 글자는 ‘빛’ ‘광채’ 등을 가리킨다.

봄의 빛과 볕, 어디에 비유하면 좋을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는 대목이지만, 그래도 살아생전 잊을 수 없는 어머님의 사랑으로 비유하면 어떨까. 그를 문학적으로 거룩하게 표현한 시가 있어서 여기에 옮긴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이다. ‘유자(遊子)’는 길을 떠나는 아들, 길을 떠도는 아들, 또는 흔히 우리가 쓰는 ‘탕자(蕩子)’ ‘탕아(蕩兒)’다. 그 아들이 길을 떠날 때의 정경이다.

 

慈母手中線, 遊子身上衣  (자모수중선, 유자신상의)

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 (임행밀밀봉, 의공지지귀)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수천촌초심, 보득삼춘휘)

자애로운 어머니 손에는 실,

떠나는 아들 몸에 걸친 옷.

길을 나설 때 촘촘히 꿰맵니다,

늦게 돌아올까 걱정하면서…

누가 말했나, 한 줄기 풀잎 마음으로

봄날 햇볕의 큰 은덕을 갚는다고.

 

이 세상의 삶에서 어머님의 존재는 절대적이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먼저 떠올리며 찾아가 손등이라도 어루만져야 할 어머님이다. 돌아가셨더라도 그 어머님 은혜 한 번 떠올리면서 이 봄을 맞자. 따사로운 기운이 마음마저 휘감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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