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04 15:31
서울 도심의 청계천변 쌀가게의 모습이다. 1904년 경 촬영한 사진이다. 지금의 1호선 역 창동(倉洞)은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쌀가게의 건물이 옛 창고 건물을 연상할 수 있도록 한다.

조선 때 이곳에 양곡 창고(倉庫)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예전의 마을 이름에는 창고, 즉 곳집을 가리키는 한자 倉(창)이 붙은 데가 제법 많다. 서울 남대문 인근의 북창동(北倉洞)이라는 곳도 조선시대 세금으로 받은 쌀과 베 등을 관리하던 선혜청(宣惠廳)의 창고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 다룰 한자는 倉(창)이다. 벼를 비롯한 곡식과 생활에 필요한 여러 잡화(雜貨) 등을 쌓아두는 곳집이자 창고를 가리키는 한자다. 비슷한 뜻의 한자는 우선 庫(고), 廩(름), 棧(잔) 등이 있다. 앞의 倉(창)이라는 글자와 이어서 붙여 단어로 만들어지는 게 창고(倉庫), 창름(倉廩) 등이다.

사실 요즘은 庫(고)라는 글자를 많이 쓴다. 곳집이자 그냥 말 그대로 창고다. 차갑게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 냉장고(冷藏庫), 차를 넣어두면 차고(車庫), 돈이나 귀한 물품 등을 넣어두면 금고(金庫), 방을 뜻하는 글자 間(간)을 앞에 붙이면 곳간(庫間)이다.

예전에는 귀하기 짝이 없던 얼음을 넣어두던 곳이 있는데 그를 우리는 빙고(氷庫)라고 불렀다. 1980년대 초반 군사정권에서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하며 사람들 잡아다가 고문하던 곳이 바로 서울의 서빙고(西氷庫)에 있었다. 물건이 창고에 있는 상태를 재고(在庫)라고 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늘 그 상태를 체크한다. 나라에 속하는 물건을 보관하는 곳은 국고(國庫), 보물 등이 쌓여 있는 곳은 보고(寶庫)라고 한다.

요즘은 잘 쓰지 않으나 예전에는 사용 빈도가 높았던 글자가 廩(름)이다. 우선 倉廩(창름)이 있는데, 잡곡을 넣어두는 곳을 倉(창), 쌀을 보관하는 곳을 廩(름)이라고 했다는 설명이 있다. 쌀을 보관하는 곳이었으니 예전 관리들의 월급은 바로 이곳에서 나갔을 법하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廩給(늠급), 廩俸(늠봉) 등이다. 모두 관리 등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가리킨다. 廩庫(늠고)라고 하면 쌀을 보관하는 창고겠다. 조금 어려운 한자 囷(균)을 붙이면 늠균(廩囷)인데, 앞의 廩(름)은 네모 형태의 창고, 뒤의 囷(균)은 원형의 곳간을 일컬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 중에 ‘용문객잔(龍門客棧)’이라는 작품이 있다. 앞의 ‘용문’은 지명, 뒤의 객잔(客棧)은 요즘으로 따지면 일종의 여관이다. 棧(잔)이라는 글자는 일반적으로 ‘사다리’가 우선이다. 잔도(棧道)라고 적으면 절벽 등에 홈을 파서 나무를 박아 만든 사다리 길을 가리킨다. 이와 함께 많이 사용하는 뜻이 ‘숙박업소’다. 그러나 손님들이 머물면서 지니고 다니는 짐을 보관하는 장소 역할도 했다. 따라서 ‘창고’의 뜻도 얻었다.

우리 쓰임새에는 별로 없으나 한자 단어 중 화잔(貨棧)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이 교역을 위해 필요한 물건 등을 보관하는 창고다. 상업이 꽤 발달했던 중국에서의 쓰임이 많은 글자다. 우리의 경우는 보통 ‘사다리’를 의미할 때가 많다. 운잔(雲棧)이라고 적으면,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라는 뜻이다. 고잔(古棧)은 지명에 많이 등장하는데, 옛 사다리 길이라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도해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 바로 관중(管仲)이다. 그는 “창고가 차야 백성들이 예절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고 했다. 맹자가 말한 “재산이 있어야 잘 할 마음도 난다”는 의미의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과 같은 맥락이다. 시대로는 관중이 훨씬 앞이니, 맹자가 그를 원용(援用)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 각자의 주머니는 차 있어야 사회 분위기도 좋다. 그 점은 예와 지금이 다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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