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0.08.11 00:00

김기문 IBS 단장 연구팀

스피커 위에 지시약이 담긴 페트리 접시를 올린 뒤, 소리를 들려주며 변화를 관찰했다. 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때 무작위한 패턴을 보이던 용액은, 소리의 주파수에 따라 패턴을 형성했다. (사진제공=IBS)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일부 농가에서는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농법’을 쓴다. 음파가 세포벽에 물리적 자극을 주어 광합성 등 대사를 증진시키는 원리이다. 

김기문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 단장 연구팀은 소리가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하고, 그 결과의 시각화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물의 움직임에 의한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하여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한 용액 내에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연구진은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연구진은 스피커 위에 페트리 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인해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를 접시에 담은 뒤,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하는 반면, 주기적인 상하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바뀌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하여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산성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이다.

연구진은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별로 나뉘어 나타났다.

물결로 인해 기체의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황일하 연구위원은 “용액의 산성도는 전체적으로 동일하다는 상식을 뒤엎은 흥미로운 결과”라며 “소리로 산화․환원 또는 산․염기 반응을 일으켜 물리적 가림막 없이도 용액 내 화학적 환경을 서로 다르게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김기문 단장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소리를 이용해 쥐의 움직임을 통제했듯, 우리 연구진은 소리를 이용해 분자의 거동을 조절했다”며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 조절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 지난 11일자에 실렸다. 연구 중에 촬영한 이미지는 제5회 IBS 아트 인 사이언스 전시회에 ‘소리 붓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기문(왼쪽부터) 연구단장, 황일하 연구위원, 라훌 데브 무코파드야이 선임연구원 (사진제공=IBS)
김기문(왼쪽부터) 연구단장, 황일하 연구위원, 라훌 데브 무코파드야이 선임연구원 (사진제공=I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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