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08.27 17:07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우리 정부가 겪은 최고의 국가 위기였던 IMF 외환위기 다음해인 1998년에는 전체 공무원이 일률적으로 월급의 10~20%를 삭감해 실업자 구제 재원 1조2000억원을 조성했다. 또 다른 국난 이었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공무원 월급은 2년 연속 동결됐다. 

이전 위기들 만큼 어쩌면 더 위기가 될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되면서 이전 전통처럼 '공무원의 봉급을 삭감해서라도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21일 한 라디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와 정부,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치권은 부끄럽고 죄송하게도 코로나로 인해서 월급이 1도 줄지 않았다"면서 "정치권과 공공기관이 다시 한 번 긴장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20% 임금 삭감을 제안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일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임대료는 밀려가고 매출은 바닥이어서 매일같이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 등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낼 수입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시작은 정치권과 공공부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저를 포함해 공무원들의 20% 임금 삭감을 제안한다" 며 "여기서 약 2조 6000억의 재원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지난 3월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솔선수범에 동참했다. 정 본부장은 올해 임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가에 반납했다. 또한 질병관리본부 등 일반 직원들도 연가보상비를 반납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코로나 대응을 위해 힘쓴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보장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흐름속에서 정부도 나섰다. 기획재정부 국·과장급 이상의 공무원은 재난지원금을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가 지원금을 모두 기부하기로 한 다음 날에 내린 결정이었다. 일각에선 '관제 기부'라고 비판했지만 그들의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중앙부처 중 최고 엘리트만 모였다는 기재부 공무원이 자발적 기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정부와 입법부의 일부 인사들이 모범을 보여야할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국민경제의 타격'은 심각하다. 지난 19일부터 영업이 중단된 서울 노래방 매출은 80% 이상 급감했고 PC방 매출 75% 감소했다. 전통시장의 매출 역시 약 23% 감소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PC방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7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해 임대료와 인건비, 대출 이자 등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영업이 금지되면서 해당 시설에 근무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들과 업주들도 즉각적인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영업점들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국가가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 나름의 자구노력을 해갈 정도로 눈물겨운 상황이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동참하는 흐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은 조 의원의 말에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은 '공무원 임금 20% 삭감을 주장하는 정치모리배의 간계를 규탄한다'는 제목으로 "이 땅의 120만 공무원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개발독재시대에는 줄 것 안 주고 나중에 주겠다고 희생을 강요받다가 근간에는 연금을 박살냈고, 또 안정적 으로 월급 받겠다는 이유만으로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담은 성명을 내놨다.

물론, 갑작스러운 정치권의 월급 삭감 주장에 대한 당혹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코로나 방역 일선에서 고생하는 공무원의 상당수는 박봉에도 묵묵히 공직의 사명을 수행 하고 있다. 나라가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의 신음을 내뱉고 있을 때는 IMF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례처럼 공무원들 부터 다시 나서서 국민들을 위한 힘을 보태야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행보는 공공부문의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로 한 점에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지난 25일 임금 일부를 온누리 상품권을 받기로했다. 한전과 전국전력노동조합은 다음달 직원 급여 105억원 상당을 온누리 상품권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직원들 월급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전은 코로나19와 집중호우로 피해가 큰 전통시장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사 양측이 합의로 이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43조에 따르면 임금을 지급할 때는 임금 전액을 통화로 지급해야 하지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으로 지칭하는건 국민을 받드는 심부름꾼이 되라는 의미다. 보수 반납 제안을 했다고 '정치모리배의 간계'라고 신경질적인 반응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한전처럼 공공부문에서 열린 마음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분담의 방법을 모색해 나가면 '헬조선'이란 얘기부터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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