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06 13:20

4·13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일제히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가운데, 재원 마련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사내유보금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700조까지 증가한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청년 고용에 쓰이게 하거나 혹은 과세를 해 복지 재원으로 돌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계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이미 과세표준 5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해 법인세 인상을 예고한 더민주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까지 실시하게 되면 ‘이중과세’ 논란은 물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물론 각 지역구에서 뛰고 있는 후보들도 사내유보금을 동반성장이나 복지정책의 재원으로 쓰겠다며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 은수미 “재벌 창고에 쌓인 돈으로 노인 연금 드리겠다”
경기도 성남중원구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은수미 더민주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노인 유권자들을 찾은 자리에서 더민주의 ‘기초연금 30만원 지급’ 공약을 설명했다. 실제 더민주는 정책 공약집을 통해 소득 하위 70%의 노인들에게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 월 3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는 정책을 약속했다. 

은 의원은 “이번에 저희 당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는 정책을 약속했다”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르신들께서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고 물으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 의원은 “돈이 있다”며 “우리나라가 돈이 한 곳으로 쌓여있다. 재벌 대기업 창고에 돈이 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사내유보금을 언급한 것이다. 

은 의원 외에도 사내유보금을 언급하는 정치인들이 다수 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기업 사내유보금이 지나치게 많다며 규제를 가할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전남 순천에 출마한 노관규 더민주 후보 역시 사내유보금 과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같이 야권에서 사내유보금 규제를 예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정책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 사내유보금에 대한 이해 부족한 정치권
흔히 정치권에서는 은 의원의 발언대로 사내유보금을 “기업이 현금처럼 쌓아둔 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사내유보금의 구성은 복잡하다. 사내유보금이란 당기 이익금 중에서 세금, 배당금, 상여금 등 각종 지출을 한 뒤 남은 금액을 말한다. 우리 상법은 ‘자본충실의 원칙’에 입각해 기업의 사내유보금 보유를 강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금액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느냐. 물론 기업이 현금 형태로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에 해당되는 80% 규모의 사내유보금은 공장·기계설비·토지매입 등에 투자돼 있다. 즉, 사내유보금은 ‘투자’의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윤경 부연구위원은 “회계적으로 유보금과 투자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유보금의 감소가 투자의 증가로 직결되기도 어렵다”며 “유보금이 증가한 동시에 투자증가율도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앙대학교 황인태 교수 역시 세미나에서 “이익을 내는 정상정긴 기업의 유보금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다만 증가 속도의 문제일 뿐, 오히려 유보금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 미국·일본·대만에서 ‘조세 회피방지’ 목적으로 사용...이중과세 논란도
사내유보금에 대해서 과세를 하거나 불이익을 가하는 것에 대해 ‘이중과세’에 해당된다는 비판도 있다. 사내유보금 자체가 이미 법인세 등 납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나서 남은 돈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보면 소득세를 내고 난 다음에 저축한 금액에 또 다시 과세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를 하는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미국·일본·대만 뿐인데, 이들 나라에서도 사내유보금은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라며 “투자 확대나 고용 증가를 위해 사내유보금을 쓰자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김앤장의 최승재 변호사 역시 지난 2014년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보면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동일한 과세 대상에 대해서 이중으로 과세를 하는 것”이라며 “우리 헌법이 이런 세제를 허용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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