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06 15:06
바다에 이르면 늘 넘실대는 물결을 만날 수 있다. 어딘가에 묶이지 않고 정처없이 흐르는 물결을 두고 만들어진 낱말들이 방랑(放浪), 방탕(放蕩), 유랑(流浪) 등이다.

예전에 커다란 방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붙었던 지명이 방아굴(골)이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지명을 얻었다는 설명이 있다. 다른 유래 설명도 있다. 조선의 임금이 이곳 인근의 도봉사원 터를 살피다가 학이 노니는 모습을 목격하고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이다. 또 다른 내용은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는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방학(放鶴)의 앞 글자를 보도록 하자. 뒤의 鶴(학)이라는 글자는 ‘학의 울음소리’라는 의미의 학명(鶴鳴)이라는 역에서 풀자. 이 放(방)이라는 글자의 쓰임은 아주 많다. 해방(解放)이나 개방(開放), 방송(放送) 등 우리 생활과 친숙한 단어에서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글자의 설명이 우선 흥미를 끈다. 글자의 앞부분인 方(방)은 예전의 성채를 가리켰다. 그 옆의 글자는 원래의 모양이 ‘攴’인데,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조합으로 생긴 원래의 의미가 ‘누군가를 성으로부터 쫓아낸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방출(放出)이자 축출(逐出)이다.

중국의 초기 자전(字典)이라고 해도 좋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아예 이 글자를 쫓아낸다는 뜻의 ‘逐(축)’이라는 글자로 풀고 있다. 거기에서 뜻이 더 확대돼 이제는 무엇인가로부터 풀려나거나 무엇을 풀어 버린다는 ‘해방’과 ‘개방’의 뜻, 더 나아가 행동거지가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글자로도 발전했다.

원래의 뜻에 충실한 글자로는 방벌(放伐)이라는 단어가 있다. 폭압적인 정치를 선보이면 폭군(暴君)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런 행동을 두고 보다가 결국 공격해(伐) 폭군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일이 방벌(放伐)이다. 때로는 명분을 세워 상대를 공격해 없애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축을 놓아서 기르면 방목(放牧), 풀어서 먹이면 방사(放飼)다. 우리 쓰임새에서의 방심(放心)은 ‘마음을 놓다’ 또는 ‘마음을 풀어두다’의 의미다. 조심스럽지 않아 경계 등을 게을리 하다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는 경우에 자주 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안심하다’의 뜻으로 쓰임이 조금 다르다. 버려두다, 포기하다의 뜻이 방기(放棄), 돌보거나 간섭하지 않고 제멋대로 내버려 두다는 의미가 방임(放任)이다.

방성(放聲)은 목울대의 조임을 풀어버리는 일이다. 목청을 한껏 열어 소리치는 일인데, 일제가 한반도 강점의 야욕을 드러내며 대한제국을 잠식하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써서 분노를 표출했다. 앞의 ‘是日也(시일야)’는 ‘이날이여!’라는 뜻의 감탄이다. 방성대곡(放聲大哭)은 소리(聲)를 놓아(放) 크게(大) 우는(哭) 일이다. 이 방성(放聲)과 비슷한 뜻의 단어가 실성(失聲) 또는 대성(大聲)이다. 실성(失聲)은 감정에 겨워 목울대의 조임을 놓치는 일이다. 대성(大聲)은 방성(放聲)과 같은 뜻이다.

방담(放膽)이라는 말도 있다. 담(膽)을 풀어놓는(放) 행위다. 겁을 상실한 사람, 또는 배짱 좋게 달려드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같은 음의 또 다른 방담(放談)은 거리낌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행위다. 특정한 주제 또는 틀 없이 자유롭게 나누는 대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무엇인가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로 등장하는 단어도 많다. 허랑방탕(虛浪放蕩)이 우선 눈에 띈다.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쓰인 흔적이 있다. 앞의 허랑(虛浪)은 일어섰다 주저앉는 허망한 물결이다. 또는 고정적인 틀에 머물지 않는 물의 속성(屬性) 자체를 가리킨다고 보인다. 방탕(放蕩)이라는 말 역시 이리저리 풀려(放) 물처럼 마구 흘러 다니는(蕩) 상태를 가리킨다. 두 단어를 합치면 뜻이 분명해진다. 아무데나 돌아다녀 행실이 추저분하다는 의미다.

마구 다니면서 버릇이나 예의 없이 구는 일을 방자(放恣), 제멋대로 하는 행위를 방사(放肆), 비슷한 뜻의 방종(放縱), 마구 다니면서 빈둥거리면 방일(放逸), 그러면서 주의력 결핍을 보이면 방만(放漫)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분방(奔放), 물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일이면 방랑(放浪)으로 적는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방(單放)’이라는 말도 재미있다. 펀치 한 방에 상대를 때려눕히면 “단방에 보냈다”며 자랑한다. 원래는 활 등을 쏘는 경우를 일컬었다. ‘한 차례 사격’이라는 뜻이다. “한 방에 보냈다”로 쓰기도 한다. 관련 성어가 有的放矢(유적방시)다. 중국어에 많이 등장한다. 과녁(的)을 두고(有) 화살(矢)을 날린다(放)는 뜻이다.

그 반대가 無的放矢(무적방시)다. 과녁(的) 없이(無) 화살(矢)을 쏘아대는(放) 행위다. 앞의 성어는 분명한 목표를 두고 벌이는 일, 뒤는 뚜렷한 지향점이 없이 마구 남을 공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자유분방(自由奔放)하고 거침이 없어 호방(豪放)해도 좋다. 그러나 지향은 분명해야 늘 바람직하다. 그런 마음 줄을 잘 못 놓아 방심하면 방탕, 방자, 방만, 방랑으로 흐른다. 길지 않은 인생길이다. 그 인생의 물길에서 제대로 흘러가려면 우리는 방향을 잡아 중심을 잘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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