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9.04 16:35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불거진 의료계의 집단휴진 갈등이 4일 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 간에 5개항 합의를 통해 일단락됐지만 여진(餘震)은 현재진행형이다.

향후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을 놓고 민주당과 보건복지부, 의협 등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추진된다면 언제든지 전공의나 전임의가 무더기 휴가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간다해도 의사라는 면허는 좀처럼 취소되지 않도록 규정된 관련 법령도 뒷받침됐다. 설령, 정부에 맞서 불법적 집단행동에 나선다해도 사실상 잃을 것이 없다는 학습효과가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널리 확산됐다고 봐야하는만큼 앞으로 의사라는 직역 이익에 관련된 '파이'를 뺏으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 강도는 더 세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의협이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논의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하고 보건복지부가 의협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 정책을 추진 강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명백한 의료계의 승리로 평가된다. 더구나 의협과 구성하는 의정협의체에서 지역수가 등 지역의료 지원책 개발을 논의하기로 한 대목을 보면 사실상 '정부·여당의 백기투항'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그동안 의료계를 압박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을 강행하는 동안 코로나19사태 재확산과 맞물리면서 의료계의 입지는 흔들리는 실정이었다. 더구나 '의료계 파업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공감한다'는 여론을 압도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가 도출된 셈이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1∼2일 전국 18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의사단체 파업에 대한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비공감' 응답이 55.2%로 나타났고 '공감'은 38.6%로 집계됐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여기에다가, 최근까지도 적잖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코로나19사태 속에서 국민생명을 볼모로 한 파업을 중지하라고 압박하고 있었던 상황에 비춰보면 정부여당과 의료계의 합의는 사실상 '의료계의 역전 KO승'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결과의 기저에는 의료법 상 탄탄히 보장되고 있는 '의사자격 유지 조건'이 상당한 영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의료법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을 악용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의사라는 면허는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 달리 말해 형사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의사에 대한 면허 취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법 65조는 의사 면허 취소가 가능한 경우를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한정치산자를 비롯해 형법 233조 등에서 금지하고 있는 허위 진단서·검안서 발급, 사문서 위조, 낙태, 허위진료비 청구, 업무상 비밀누설 등 의료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태아 성감별 금지, 면허증 대여, 자격정지 기간 중 의료행위나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 경우에도 면허가 취소된다. 이밖에 의료인이 아닌 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 의료기사가 아닌 자에게 의료기사의 업무를 하게 하거나 의료기사에게 그 업무 범위를 벗어나게 한 때,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하거나 속임수 등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비를 거짓 청구한 때 등 뿐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통념상 '결코 저질러서는 안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법원에서 최종 유죄 선고가 나지 않는한 면허는 유지된다는 얘기다. 

국가가 자격증을 부여하는 다른 전문 직종과 비교해볼 때 의사라는 직업은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점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세무사,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은 법률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탄핵·징계처분 및 일정한 3년~5년 정도의 경과규정이 지나지 않은 자'에 대한 면허 취소 조항을 적용 받는다. 이에 더해 '금고 이상의 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2~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등의 사유자에게는 자격취소가 가능하다. 쉽게말해, 다른 전문직종 종사자들은 각종 징계를 받거나 실형만 선고받아도 해당 직종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데 비해, 의사들은 의료법과 형법에서 규정한 중대범죄들을 저지르지 않는 한 감옥에는 갈지언정 면허는 뺏기지 않는다. 즉,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과감히 나설 수 있는 원동력에는 바로 이런 '확고한 신분보장'이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의사들의 서울 선호, 농어촌 기피 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방의료원에서는 거액을 지급해도 의사를 모시기가 어렵다. 그만큼 의사들은 비수도권지역에선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8월 2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공공의대는 코로나 정국에서 급조된 정책이 아니다. 취약지 의료공백과 기피분야 문제 해소에 공공의대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의협에서는 기피분야 건보 수가 인상 등 유인정책으로 공공의료 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작년 말 목포의료원에서는 연봉 3억원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었고, 최근 한 지방 의료원에서 의사 뽑기가 어려워 연봉 5억 3천만원에 계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즉, 5억 이상의 연봉을 지급해야만 겨우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할 의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현실에서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의료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만큼 사실상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정원 확대는 당분간 시도조차 이뤄지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이런 결과를 놓고 당장 비판도 나오고 있다. '176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공공의료 포기 밀실 거래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의료 포기한 당정과 의협의 밀실 거래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시민의 안전권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여 의료인력 확대와 공공의료 개혁이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상황임에도 정부가 미흡한 의사증원 대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시민사회는 매우 우려가 크다"며 "그러나 이런 미미한 개혁조차 정부와 의협은 밀실에서 협의하여 공공의료 정책을 무산시켰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책무를 다해야 할 정부와 의협의 무책임한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또한 "보건의료정책은 시민의 건강과 안전 보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사회정책"이라며 "그런 점에서 정책의 개혁 방향과 내용을 논의하는데 있어 주권자인 시민의 참여는 매우 중요한데도 정부와 국회가 공공의료 개혁 논의에 시민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이권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 휴진마저 불사했던 의협과 밀실 협의를 진행한 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같은 날 상반된 논평을 내놓았다. 배현진 원내대변인은 "세간에 떠도는 얘기대로 문 정권 창출세력의 견적서 처리를 해야했던 것인지 전문가, 국민의 숱한 만류도 무시한 채 그야말로 거칠고 무례하게 정책을 밀어붙이고자 하지 않았느냐"며 "그러나 결국 국민 앞에 고개숙였다. 이제라도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는 약속한 대로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를 주축삼는 여야정 의료진 협의체를 조속히 구성하고 국가 방역을 안정화 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포퓰리즘 정치방역 분열 획책이 국민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되짚어 보며 진정 국민을 위하고 지켜내는 정부여당으로 탈바꿈되길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이처럼 양극단의 평가가 나오게 된 원인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잘못된 행정에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8월 31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의사파업사태를 초래한 무능한 보건복지부 장관을 파면해 주실 것을 청원한다'는 제하의 청원은 청와대와 복지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청원자는 "대화로 이 문제를 풀려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정부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의대생과 의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이 법적으로 엄중 대처할 것을 얘기했다. 잘됐든 아니든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냐, 의료행정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이 문제의 해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 낭비와 파행이 이어질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이어 "이것의 피해 또한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며 "이 정도의 무능함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의료파업사태를 초래한 보건복지부 장관을 파면할 것을 청원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전임의 집단 휴진 초기만해도 엄중 대처를 천명했던 문 대통령의 체면도 결과적으로 실추된 셈이다. 총선 대승 이후 국정 장악력을 유지해온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올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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