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소현 기자
  • 입력 2020.09.10 15:40

[뉴스웍스=김소현 기자] "숨만 쉬어도 매달 500만원이 나간다. 얼마나 더 버티라는 말인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오는 20일까지 연장되자 부산의 노래방 업주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 겨울 전염병이 우리나라에 퍼진 이후 한국은 꽤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라 문을 닫지 않고 국민 이동을 금지하지 않고도 선진화된 방역키트로 감염자를 재빨리 치료하면서 폭발적인 확산세를 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K-방역 모범국의 이면에는 영업금지라는 직격탄을 맞고 철철 피 흘리는 국민들의 희생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말 한 마디에 생계가 결정되는 소상공인이 바로 그들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8월 매출이 전월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는 자영업자의 비율은 절반을 넘겼다. 소상공인연합회에 의하면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31일까지 조사에 응한 소상공인 중 60%가 매출이 90% 넘게 줄었다고 답변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긴 것은 물론, 정부의 거리두기 규제로 아예 장사를 멈추면서 수입이 급감한 것이다. 알바천국이 1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5명 중 3명은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이후 폐업을 고려 중이다.

문제는 이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반면 비슷한 업종의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다. 

8월 30일 수도권 지역에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발령된 뒤 음식점과 프렌차이즈 카페 매장은 텅 비었다. 대신 규제에서 벗어난 개인 카페와 프렌차이즈 제과점은 북적였다. 뒤늦게 정부는 프렌차이즈 제과점, 아이스크림점, 빙수점을 규제 대상에 집어넣었다. 그나마 개인 카페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방역당국의 정책 설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동일한 3밀(밀집·밀폐·밀접) 시설임에도 운영을 허가한 업장과 불허용한 업장의 기준은 단순하게 프렌차이즈 매장인지, 아닌지 여부다. 앞서 정부는 8월 28일 "카페가 애견카페 등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어 포괄적인 거리두기 명령을 내릴 경우 피해가 지나치게 클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결국 모든 매장을 규제할 시 닥칠 경제적 피해를 우려해 허점 가득한 조치를 내렸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감염위험도에 정비례해 운영을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치밀함은 애초부터 없었다. 풍선효과에 따른 부작용이 보도될 때마다 서둘러 정책을 변경하는 것만 봐도 지난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 사태에서 과연 시행착오를 줄여왔는지부터 의문이 간다.

고난은 요식 업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 7일에는 대전시청에 PC방 업주 30여명이 모였다. 한 업주는 "자리마다 칸막이를 하고 이용객 모두 헤드셋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옆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며 "이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으면서 영업 중인 식당이나 커피숍보다 PC방이 고위험시설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다른 업주는 "대전 지역 PC방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면 방침을 따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방역수칙을 잘 이행하고 있는 PC방을 대상으로 생존권을 뺏는 건 납득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에서 월세를 내며 독서실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도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는 집합해서 웃고 떠들고 대화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업종별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일괄적으로 집합금지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상공인은 "정부 규제가 모호하다"며 "아예 한시적으로 다 같이 영업을 중단하든지, 방역 수칙을 준수한 업장은 영업을 허용하든지 결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정부의 '이랬다 저랬다' 정책은 납득하기 힘들다.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업장까지 위험시설로 뭉뚱그리면서 일부는 영업을 허용한다. 선제적 예방 차원이라면 가장 먼저 통제돼야 할 곳은 종교 시설일 것이다. 지난 9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1167명 나온 사랑제일교회는 물론, 지난 8일에는 서울시에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 67명 중 11명이 불교 시설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종교 시설은 고위험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종교인의 항변에 눌린 탓일까. 힘 없고 돈 없는 소상공인만 동네북이 된 듯 보인다. 

정부와 시민 간 방역 '줄다리기'는 사실상 갑과 을의 구조다. 대의명분은 국민 안전 도모지만 실제를 보면 힘겨루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코 평등한 관계는 아니다. 정부는 힘이 있고, 강제적 조치를 취할 권력도 갖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 거리를 조용히 잠재울 수 있다. 칼을 빼어들기 전에 보다 신중히 생각하고, 목표물을 향해 휘두를 때 보다 정확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이미 장기전에 들어간지 오래다. 방역 당국은 백신은 빨라야 내년에 개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무도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예상하지 못했듯, 제2, 제3의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물음표를 던지지 않아도 될 탄탄한 장기 대책과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절실히 강구되어야할 이유다.

무엇보다도 업종별로 코로나 감염위험을 정밀하게 계량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12개 고위험시설 지정의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당 업종 종사자의 동의를 얻고 영업중단에 따른 보상 방안도 선제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위험도가 낮은 업종까지 청소년과 청년 감염 위험이 있다는 막연한 이유로 영업 자체를 아예 막는 것도 재발되어서는 곤란하다.  

전염병이 창궐한 지난 겨울 이후 별 진전 없이 어느덧 가을이 왔다. 무더위와 장마도 지나왔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시린 발을 동동 거리고 있다. 캄캄한 현실 속에서 출구를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불을 비춰주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다. 자영업자를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험대상으로 삼는 듯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번째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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