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5.11.03 11:43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인 지난 10월 1~7일에는 중국인 관광객(유커) 약 21만명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6만3500명)에 비해 3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올 상반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메르스 사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으로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들은 서울 시내 면세점을 돌아다니며 쇼핑에 열을 올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방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 2007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612만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방한 외국인 관광객 1420만명 가운데 43.1%가 중국인인 셈이다.

몰려드는 유커 덕분에 국내 면세점 사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소비 부진으로 인해 소매업 전반이 위축돼 있지만 면세점은 독보적인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국내 유통 시장에서 백화점, 대형마트 등은 최근 몇 년간 마이너스 신장세를 보이거나 간신히 한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한데 비해 면세점 사업은 매년 두자릿수 성장률을 거듭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시장은 지난 2006년 2조5,000억원 수준에서 5년만인 2011년 5조3,000억원으로 2배를 넘어섰으며 올해는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커는 1인당 평균 지출액도 커 ‘큰손 고객’으로 꼽힌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1인당 평균 지출 비용은 1,605달러(191만6,967원)였는데 지역별로는 중동 사람들이 3,056달러로 가장 많이 썼고 다음으로 중국인이 2,094달러를 쓴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2020년 경에 한국을 찾는 2,000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1,500만명이 중국인이며 이들은 한국에서 30조원 가량을 쇼핑으로 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세계적으로도 여행을 즐기는 인구가 10억명(2013년 기준)을 넘어서고 특히 해외 관광에 나서는 대다수 중국인들이 쇼핑을 최우선순위로 꼽고 있어 글로벌 브랜드들은 면세점을 포함한 여행 소매 시장을 ‘제6의 대륙’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주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로서는 장기간 지속돼온 내수 볼황의 타개책이자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로 면세점 사업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한류와 관광부흥을 등에 업은 면세점 사업은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전통 유통업 강자들은 물론 다른 재벌 기업들까지 줄줄이 면세점 사업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올상반기 서울 면세점 신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입찰 경쟁에는 롯데, 신라 등 기존 사업자는 물론이고 신세계, 한화, 현대백화점, 이랜드 등 줄잡아 중소·대기업 20여곳이 참여하며 각축전을 펼쳤다.

입찰에 참여한 한화그룹은 올초 김승연 회장이 신년사에서 “유통 등 서비스 사업 분야에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해야 한다”며 유통사업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한화갤러리아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황금색 건물인 여의도 63빌딩을 면세점 부지로 선정하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 결과 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올상반기 입찰전의 또다른 승자인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의 경우, 호텔신라로서는 업계 1위를 노려볼 수 있게 됐고 현대산업개발은 운영중인 용산 아이파크몰을 활용하면서 유통사업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상반기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쟁탈전에 이어 올연말 특허(특별 허가)가 만료되는 서울시내 3곳의 면세점 특허권 입찰 경쟁도 그룹 총수들이 전면에 등장하며 과열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소공점 본점과 롯데월드점 2개점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불투명해진 롯데면세점은 신동빈 그룹 회장이 직접 나와 앞으로 5년간 상생 프로그램에 1,500억원을 내놓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신 회장은 또 2020년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 2020’을 밝히며 내년 상반기 태국 방콕과 일본 긴자에 새 면세점을 선보이고 글로벌 업체를 인수합병(M&A)하겠다는 내용의 글로벌 전략을 강조했다. 3

5년간 사업을 유지해온 롯데면세점으로서는 오랜 기간 적자를 감내하며 세계 면세점 3위이자 아시아 1위로 키워냈는데도 정작 사업권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만큼 ‘수성’이 절박하다.

상황이 절박하기는 현재 운영중인 워커힐 면세점의 특허권이 만료되는 SK네트웍스도 롯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SK는 워커힐 호텔 외에 동대문 케레스타 빌딩을 새 입지로 내세우고 서울 면세점 두 곳을 모두 유치할 경우 지역 및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2,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두산과 신세계도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두산은 서울 을지로 두산타워를 시내면세점 입지로 결정하고 면세점 매출의 10%를 사회환원하겠다는 박용만 회장의 의지를 강조했다. 백화점 본점을 면세점 후보지로 제안한 신세계는 대표 한류 콘텐츠 기업인 CJ E&M과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상생 프로젝트에 나서는 한편 남대문시장과 연계해 '외국인 관광 1번지'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면세점 시장이 급성장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독과점 구조 개선을 빌미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 측은 몇몇 업체 중심의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려면 대기업 참여를 제한해야 하며 면세점이 내는 수수료율도 현행보다 대폭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업계는 정부의 규제 움직임이 면세점 선진국이나 중국, 일본 든 인근 국가와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는 시대착오적인 조치라고 반박한다. 

면세점 업계는 “국내 면세점 가운데 영업이익을 5% 이상 내는 회사는 한 곳밖에 없을 정도로 면세점 사업은 이익 내기 쉽지 않다”며 “대형화를 통해 자본을 늘려야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외의 경우 스위스의 듀프리는 최근 10여년간 인수합병을 거듭해 세계 1위에 오를 정도로 대형화가 전세계적인 추세라는 것. 또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면세품그룹(CDFG)은 지난해 하이난섬에 세계 최대 규모(7만2000㎡)의 면세점을 열어 업계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일본은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2020년까지 전국에 면세점을 1만 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놓은데다 기존의 소형점 위주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처럼 도쿄 시내 중심가인 긴자나 오다이바 등지에 대형 점포 오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매출의 80%이상이 외국인 이용객들로부터 나오는 수출산업인 만큼 내수 시장에서 독과점 논란으로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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