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차와 오디오, 그리고 나
[이호영의 덕후철학] 차와 오디오, 그리고 나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04.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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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를 이루는 핵심 장치 스피커의 모습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내면을 반영하는 오디오가 자신의 실체를 더 잘 드러내는 장치다.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길은 고통스럽고 지난하다. 없는 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여행은 즐겁고 행복하다.

어느 날 오디오 동호회 동호인에게 문자가 온다. 자기는 이러저러한 사람으로 음악을 좋아하는데 오디오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동호회 관리 차원에서 상냥하게 답변을 한다. 몇 번의 문자가 왕래할 즈음이면 답이 나온다. 동호인이 꿈에 그리는 그런 오디오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맘 상하지 않게 삶의 많은 부분이 결국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임을 깨우쳐 드린다.

책방에 가면 ‘자기를 찾아라’는 조언을 주는 자기 개발서나 종교서적이 득실거린다. 문제는 자기란 없는데도 책마다 없는 것을 찾으라고 윽박지른다는 점이다. 순진한 독자는 없는 것을 찾아 헤매다 지쳐 환상의 섬 하나 만들어 자기라고 우긴다. 건강에 해로운 환상이자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자기란 없다고 말한 대표 주자는 석가모니 부처였다. 그는 자기란 눈과 코, 입 같은 감각기관이 모여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파했다. 따라서 감각이 변하면 자기도 변한다고 한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기 전과 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렇다. 자기란 끊임없이 변하기에 이왕이면 더 멋진 영화를 보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더 행복한 자기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거울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런데 옛날 구리거울은 성능이 떨어져 얼굴을 자세히 보기 힘들다. 형편이 그러니 얼굴은 포기하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말하듯 행실이나 사람관계로 거울을 삼았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나다. 신하가 나를 보고 “폐하!”를 외치면 내 신분이 왕이니 왕의 행실을 하라는 식이다. 요즘에도 이런 거울이 중요하다.

취미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나’다는 신(神)이나 할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건 ‘누가 뭐래도’다. 자기만의 18번은 착각이다. 단지 내가 나라고 우기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취지에서 친구들이 원하는 18번 노래나, 그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 중요하다. 주변에서 생각하는 내가 진짜다. 그렇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를 ‘진짜’로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이란 자라난 시대나 주택이다. 학교의 구석진 자리이자,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만들어 놓았던 아지트다. 특히, 들었던 음악은 자신을 이루는 큰 기둥이다. 항상 큰 울림으로 귓전을 맴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 오디오를 새로 장만하면 젊었을 적 즐겨 듣던 음악을 먼저 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비교 대상은 기억도 희미한 전파사에서 나오던 라디오나 워크맨 소리다. 소리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분위기만은 남았다. 나도, 음악도 변했기 때문이다.

오디오로는 음악만 듣지 않는다. 자동차가 자기의 외양을 드러낸다면 오디오는 내면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 “의복은 남루하지만 가슴 속에 옥을 품었다”고 하는데, 오디오가 바로 현대의 ‘옥’이다. 오디오는 문화생활과 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드러낸다. 듣는 음악보다 ‘찍어 올리는’ 음악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 아무리 회장님의 고급 슈트라도 겉만 봐서는 평사원의 정장과 구별이 힘들다. 회장님과 다른 나만의 옷이 나를 만들어 주기에 취미에 맞는 전문복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복장만으로는 내면의 공간을 드러낼 수는 없다. 우리의 내면은 정리할 수도 없고, 알기도 힘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렵다.

두렵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이 있고 음악이 흐르면 그곳이 바로 질서의 장소다. TV에 등장하는 ‘명사의 서재’ 등은 그가 읽는 책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질서다. 따라서 나를 표현하기 적합한 음악과 책이야 말로 어지러운 내면을 비추는 빛이다. 사람들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는 그 안의 음악을 듣거나, 그윽한 커피 향을 평하기도 한다. 차는 고물을 타도 오디오는 이미지에 적합하게 갖추어야 ‘좋아요’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게 갖추어졌는가? 그렇다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소리이자 진정한 자신이다. 신조차도 동산을 만들고 보기 좋더라고 했다. 즐겁지 않은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자신 있게 동호회 게시판이나 인스타그램 또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릴 차례다. 신도 그 때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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