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09.17 12:15
원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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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를 뇌리에 떠올렸을 때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상기된다면 해당 후보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국민들을 탓하기 앞서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인격수양에 더욱더 정진(精進)해야 할 것이다.

다름아닌 이재명 경기지사 얘기다. 이 지사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에서 수위 다툼을 하고 있다. 

이런 유력 정치인에 대해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설계자'로 불리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서 "이 분이 더 큰 권력을 쥐게 되면 분서갱유 사태가 생길 듯 하다"고 지적했다. 

'분서갱유'란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사상 통제 정책이다. 당시의 유학자들이 주의 봉건제를 찬양하고 시황제의 정치를 비난하자 시황제는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약, 복서(卜書), 농업 서적 이외의 전국의 서적을 불사르고, 여러 학자를 체포하여 그중에서 460명을 함양에서 생매장한 사건이다.

'분서갱유' 언급에 이어 김 원장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책하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어느 독재자의 말일까, 히틀러나 진시황이 아니라 이재명 지사의 말"이라고 적었다. 그는 "자기정책을 비판하는 듯한 연구보고서를 보고 대노했다니 어디 무서워서 연구하고 보고서 쓰겠느냐"며 "언론기관들도 자기 마음에 안드는 기사를 쓰면 '이거 폐간하라'고 하겠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이런 분이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도지사이고, 유력 대선후보라니"라며 글을 맺었다.

앞서 이 지사는 16일 자신의 SNS에 '근거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제하의 글을 올렸다. 15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발표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발행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한 날 선 비판이었다. 

이 지사는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살리고 국민연대감을 제고하는 최고의 국민체감 경제정책"이라며 "정부가 채택해 추진중인 중요정책에 대해 이재명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비방하는 것이 과연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온당한 태도인지 묻는다"고 썼다. 그는 또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방적 주장을 연구결과라고 발표하며 정부정책을 폄훼하는 정부연구기관이 아까운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현실이 참으로 실망스럽다"며 "정부 정책을 훼손하는 국책연구기관에 대해 엄중문책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가 이처럼 공격에 나서자 이 지사 영향력 하에 있는 경기도의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도 공조에 나섰다. 유영성 단장은 16일 입장문에서 "지역화폐가 경제적 부담만 클 뿐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해당 보고서는 지역화폐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넘어 지역화폐 발급으로 골목상권 활성화를 뒷받침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뒤집는 내용"이라며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어야 할 중대한 사안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국책연구기관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운영에 대하여 혼선을 야기하고 있으니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지사와 경기연구원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 지사는 자신이 성남시장 재직시절부터 추진해와 이제 경기도 시군과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역화폐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조세연에서 내놨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겠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므로 정책적 정당성은 물론이고, 권위까지 부여받은 정책이라고 여기던 상황에서 국책연구기관으로부터 딴지가 걸린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소신 상 '이건 아니다'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까기 모드'를 보이고 있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재명과 공수처의 조합은 상상 가능한 것 중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뭐하러 한국판 두테르테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 상태라서 이 지사로선 적잖게 심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수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밝힌 이 지사를 기행, 막말, 권위주의적인 통치로 상징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진 교수가 이 지사를 '기행, 막말, 권위주의자로 보고 있다'고도 해석되는 언급이어서 주목된다.

이 지사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에 대해 "환영할 일이다. 야당의 무조건적 반대 국면에서 벗어나, 공수처 설치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숙원인 공수처 설치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의 '격노'에 나름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섣부른 대응이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입수 가능한 최신 자료를 갖고 진행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물을 함부로 정부정책 훼손이라고 재단한 것은 패착으로 판단된다. 넓게 보면 학문의 자유를 기초부터 짓밟는듯한 대응은 많은 국민들에게 불안감은 물론 공포감까지 심어주었다. 더구나 '정치적 고려'를 내세운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국책연구기관들은 이 지사가 만약 대권을 잡는다면 어떤 행태를 보일지 상상하면서 몸을 덜덜 떨 수 있다. '짐의 뜻에 거스리는 비판은 감히 꿈도 못 꾸는 세상'이 온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소위 내 편이 아닌 지식인들이 이재명 지사라는 유력 대권주자에 대해 '이 분이 더 큰 권력을 쥐게 되면 분서갱유 사태가 생길 듯 하다'와 '뭐하러 한국판 두테르테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한 것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상은 뒤집어졌다. 물까지 엎지 않으려면 이 지사에게 보다 신중하고 대범한 처신이 요구된다. 이제라도 할 일은 자신의 정책이나 업적을 문제삼은 기관이나 인물에 대해 정치적 반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문제점을 파악, 보완하면서 몸을 낮춰 협력을 구하는 자세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 지사가 '한국판 두테르테가 되려하느냐'는 지적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지사가 이런 모습을 진실성 있게 꾸준히 보여주고 실천해야만 이번 사태로 잃은 점수를 만회하고 '실수에서 배우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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