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0.09.20 12:30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정부가 중공업사·건설사 등에게 여직원을 적게 뽑는다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이들 업종은 업무 여건상 여성 고용을 늘리기 쉽지 않다. 정부가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페널티를 부과한 셈이다. 공공부문은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 기업에게까지 인력 운용 방식과 권한 제한에 나서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라고 할 만하다.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대기업들마저 코로나19가 지속할 경우 인력 구조조정 없이 경영 유지가 어렵다며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계속 주는 것부터 버거운 현실에 정부가 신규 채용을 통해 여직원 비율을 높이라고 압박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유리천장' 타파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채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지나친 것일까.

고용노동부는 지난 1일 300인 미만 지방공사‧공단 및 300인 이상 공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직원과 관리자 중 여성 비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고 판단돼 '적극적 고용개선(Affirmative Action, 이하 AA)' 미이행 사업장으로 선정된 52곳의 명단을 공표했다.

AA는 사업장이 여성 직원의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을 충족하도록 이끌어 남녀 고용 평등을 촉진하는 제도다. 3년 연속으로 여성 근로자 또는 관리자 비율이 산업·규모별 평균의 70%에 미달하는 사업장이 명단 공표 대상이다.

문제는 특정 업종의 기업들은 애초에 여성 고용을 늘리는 게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금속가공‧기계장비 등을 다루는 중공업이 17개사(3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지원서비스업 16개사(30.8%), 사업시설관리 관련업 6개사(11.5%), 건설업 3개사(5.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공업·건설업 등은 오히려 여성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업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열악한 현장에 인력을 파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성 위주로 채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 현장은 건장한 남성도 일하기 힘들 정도로 험하다"면서 "전문성을 갖춘 여성이라도 안전,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어 해외 근무와 현장 근무 등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성은 현장 소장, 관리자 같은 직책을 맡고 여성은 주로 전화 응대나 사무일을 담당한다"면서 "따라서 여성근로자 고용 기준율은 맞출 수 있을진 몰라도 여성관리자 고용 기준율을 달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 제도가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지난 2006년 AA를 도입한 이후 2014년부터 명단 공표를 하고 있지만, AA 미이행 사업장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AA 미이행 사업장은 50곳으로 올해 2곳이나 더 늘었다. 특히 1000인 미만 사업장 수의 비율은 지난해 78%에서 올해 84.6%로 오히려 6.6%p 상승했다.

AA 미이행 사업장에 대한 조치계획도 초라하기만 하다. 조달청 지정심사 신인도 감점 및 지정 기간 연장 배제, 가족친화인증 제외 등 불이익을 받게 되며, 고용노동부 누리집 공지사항에 6개월 동안 게시된다. 과태료 부과 등 별다른 법의 강제성이 없어 안 지켜도 그만이다.

대신 명단 공표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실추시킬테니 알아서 잘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향후 고용노동부가 컨설팅 및 교육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고는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정책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여성가족부에서 해야 할 일이지 굳이 고용노동부가 나설 문제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성별영향평가,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온라인경력개발센터, 여성인재DB 등을 운영하며 남녀 고용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실효성이 적은데다 기업 망신주기만 7년째 되풀이하는 불필요한 제도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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