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10.09 00:35

김창룡 경찰청장 "한글날 불법집회 제지방안, 개천절과 유사…법 어기면 반드시 처벌"

광화문 광장. (사진제공=픽사베이)
광화문 광장.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지난 3일 개천절 집회를 막기 위한 설치한 경찰의 '차벽'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8일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글날 집회를 놓고 "차벽과 폴리스라인 등 조치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는 등 차벽 설치를 시사하면서 불길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정부와 경찰은 대규모 집회로 인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야권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재인산성' 아닌가"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온다.

차벽은 2000년대 이후부터 대규모 시위 등이 일어날 경우 주로 사용됐다. 시위대가 사전에 신고한 이동 경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통제하기 위해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집회·시위의 주최자는 시위 시작 최소 48시간 전에 목적·일시·장소 등을 관할 지방경찰청장에게 보고해야 하며, 신고 내용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예컨대 신고한 장소 외의 곳에서 집회·시위 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다만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경우 이러한 법 규정이 원활하게 준수되기 어렵다. 이에 집시법은 경찰로 하여금 '질서유지선'을 설정하여 질서유지나 교통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통제를 가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질서유지선은 '방책'이나 '차선' 등의 경계 표지를 의미하나 경찰 버스 등을 이용한 '차벽'은 시위대와 경찰의 직접적인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부상자를 막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차벽 통제, 대규모 시위엔 대부분 활용…충돌 감소 vs 방화 등 위험 야기

현재와 같은 형태의 차벽은 지난 2002년 경기 동두천에서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이른바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 추모 촛불시위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시위는 추모라는 본래 목적에서 과격한 반미 시위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았고, 일부 시위대들이 외국인 폭행 등을 자행하자 시위대를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차벽이 도입됐다.

차벽은 이후에도 대규모 집회·시위가 일어날 경우 꾸준히 사용됐다. 우리나라 시위의 중심지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에서 경찰버스를 동원한 차벽이 설치됐으며,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시위에서도 차벽을 이용한 시위대 통제가 이뤄졌다. 또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2016~2017년에 걸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 등 수천~수십만명의 대규모 집회에서는 그 규모만 다를 뿐 거의 항상 차벽이 동원됐다.

광화문 광장 이외에도 2006년 경기 평택시에서 주한미군 부대 이전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대추리 사태)에서도 차벽이 설치됐으며, 2007~2008년 이랜드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와 관련한 비정규직 철폐·복직 투쟁 과정에서도 차벽이 나타났다.

차벽으로 집회·시위를 통제하는 것은 매 집회때마다 많은 논란을 낳았다.

과거에는 시위 양상이 과격해질 경우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곤 했다. 이와 관련, 차벽 설치를 통해 충돌 사례 자체가 줄고 경찰의 통제 과정도 보다 수월해지는 등 차벽의 효용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통제를 위해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차벽이 주로 경찰버스를 동원해 설치되는 만큼 경찰버스 파손·시위대의 경찰장비 탈취·버스 방화 등 더 큰 위험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9년 서울광장 차벽 '위헌' 결정…"시위 예방 공익, 침해된 법익보다 적어"

가장 최근에 차벽이 동원된 올해 개천절 집회를 계기로 차벽의 위헌·위법 여부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감사를 위해 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일 개천절에는 광화문 집회 통제를 위해 전국에서 총 187개 경찰 중대와 537대의 경찰버스가 동원됐다. 1개 경찰 중대는 약 60~70여명으로, 187개 중대는 약 1만2000여명이다. 

차벽을 세운 경찰 측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함을 강조하며 "코로나19 확산을 사전에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는 입장을 표했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받는 광화문 집회를 예시로 들며 광화문 집회 참석자의 양성률이 일반 시민의 90배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차벽 설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판례들을 인용하며 정당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반면 야권과 집회 주최측은 차벽 설치 등을 통한 시위 원천봉쇄는 집회의 자유라는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시위에서 차벽을 설치한 것을 '명박산성', '근혜산성'이라며 조롱했던 이들이 이제는 '재인산성'을 쌓는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나온다.

이들은 지난 2009년 헌법재판소가 불법집회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서울 광장을 차벽으로 봉쇄한 경찰의 행위를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판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방역 지침을 위반하지도 않고 법원이 허용한 '9대 이하 드라이브 쓰루 집회'까지 원천 금지한 것은 과도한 '정치 방역'이라고 공격했다.

헌법을 살펴보면 차벽 설치와 관련된 직접적인 조항은 없다. 헌법에서 시위·집회·차벽 등과 관련된 규정은 ▲제21조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37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정도를 들 수 있다.

핵심 쟁점은 차벽 설치가 기본권을 '최소한'으로 침해해야 하며, 기본권을 침해함으로써 얻는 공익이 침해된 기본권보다 더 커야한다는 것이다. 차벽 설치가 이를 지켰는지 여부에 따라 헌법 합치 여부가 갈리는 셈이다.

야권 등이 언급했듯이 지난 2009년 6월 경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막기 위해 차벽을 설치하고 출입을 원천 봉쇄한 것은 2011년 위헌 결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포괄적인 행동자유권의 침해가 과도했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위 예방의 공익이 침해된 법익에 비해 적다"고 판시했다. 

◆코로나19 감안해야…김 청장 "한글날도 개천절처럼 집회 제지"

한편 지난 개천절 광화문 광장 집회를 시도한 8·15집회참가자국민비상대책위원회(8·15비대위) 등 일부 보수단체는 한글날에도 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이다. 8·15비대위는 거리두기·마스크 착용·발열 체크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집회가 이뤄질 예정이기에 정부와 경찰의 집회 차단 명분인 '코로나19 방역'이라는 공익이 집회의 자유 침해보다 크지 않다고 성토했다.

서울시와 경찰 측은 한글날 집회에 대해서도 원천차단을 원칙으로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경찰은 위헌 결정된 2009년 차벽과 관련해서는 "판례를 보면 차벽 자체는 위헌이 아니고 비례의 원칙을 벗어난 차벽이 위헌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개천절 집회 당시 차벽은 위헌 소지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올해 시위들을 차벽으로 통제하는 것의 헌법 합치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다. 정부와 경찰은 지난 광복절 집회의 여파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음을 연일 상기시키며 집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8일 행안위 국감에서 "내일(9일)도 불법집회 시도가 계속되고 감염병 위험 확산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위대와 경찰·시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벽과 폴리스라인 등 조치를 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불법집회 제지 방안은 개천절과 유사하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당초 경찰은 한글날 집회에 대해서는 지난 개천절 때보다 다소 완화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차벽 관련 논란에 대해 경찰은 "위헌 논란 때문이 아닌 시민 불편 최소화 차원"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한글날엔) 집회 관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차벽 완화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집회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시와 서울지방청에 들어오는 집회신고, SNS를 통한 집회 홍보 등을 미뤄보았을 때 개천절 집회 이상의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면서 경찰도 완화 조치가 아닌 강력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김 청장은 "설치는 하되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겠다"며 "비례의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일관성 있게 대응하겠다.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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