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10.11 13:30

10조 내수시장서 '과당경쟁'…최기일 교수 "금융·세제 지원, 법인세 감면 등 인센티브 제공 필요"

보잉, 레이시온, 에어버스 로고. (자료출처=각 사)
보잉, 레이시온, 에어버스 로고. (자료출처=각 사)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최근 글로벌 방산업체의 흐름은 적극적인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이다.

해외 방산업계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5건의 대형 인수합병을 거쳐 '공룡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미 미 방산업계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업체를 통합하며 방산 대형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대형 방산업체 레이시온과 항공기 부품·자재 생산기업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UTC) 합병을 마쳤다. 합병법인 사명은 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RTC)다.

지난해 기준 레이시온은 글로벌 5위 규모의 대형 방산업체다. 글로벌 10위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와의 합병으로 탄생한 신규 법인은 록히드마틴을 위협하는 세계 2위권 방산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서 지난 20년간 보잉,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루만,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이 지배해 온 미 방산업계의 시장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 합병된 RTC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격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으로 최근 상업용 항공우주·방산업계 성장이 둔화하는 가운데 사업 규모 증대와 기술 공유 등을 통해 이익을 볼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는 주요 업체 중심의 대형화보다는 분야별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작은 내수 시장에서 90여개 방산기업이 존재하다 보니 구조적 '과당경쟁'에 시달리며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인지도 높은 글로벌 톱10 수준의 방산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美 방산 전시회 '2019 AUSA'가 14일(미국시각) 워싱턴D.C.에서 개최됐다. 한화 방산계열사(㈜한화·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는 250㎡의 대형 전시 부스를 마련하고 레드백 장갑차, 무인수색차량, 대공 솔루션 등 미국, 캐나다, 중남미 시장 등을 겨냥한 새로운 솔루션을 선보였다. (사진제공=한화)
미국 방산 전시회 '2019 AUSA'가 14일(미국시각) 워싱턴D.C.에서 개최됐다. 한화 방산계열사(㈜한화·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는 250㎡의 대형 전시 부스를 마련하고 레드백 장갑차, 무인수색차량, 대공 솔루션 등 미국, 캐나다, 중남미 시장 등을 겨냥한 새로운 솔루션을 선보였다. (사진=한화)

10조 안팎 내수 시장서 수십 개 업체 경쟁…중복투자·저가입찰 부작용

11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가가 지정한 국내 방위산업업체는 올해 기준 87개이다. 대기업 20개사, 중견기업 14개사, 중소기업 53개사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방위력 개선사업 예산은 연간 15조원 안팎으로 이 중 30%가 외산 무기 수입 비용이다. 이를 감안한 내수 규모는 10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세계 1위 록히드마틴의 지난해 매출은 560억달러(65조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내수 시장은 턱없이 작은 규모다.

록히드마틴 연간 매출의 15% 규모에 불과한 국내시장에서 90여개 기업이 경쟁을 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과당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내 방위산업 육성 정책이 글로벌 트렌드와 전혀 딴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 방위산업의 전문화·계열화 정책을 폐지하면서 업체 간 과당경쟁을 부채질했다. 전문화·계열화 정책은 군수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신규 업체 진입을 제한하고 기존 업체에는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 준 것이다. 

전문화·계열화 정책 폐지에 따라 기회는 균등해졌지만 중복투자와 저가입찰이 유발되는 한편 무자격업체가 난립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기술과 품질 경쟁력은 저하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옥 (사진=KAI 홈페이지)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옥 (사진=KAI)

합병 통해 규모 키운 한화·KAI…국내 기업중 선전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대형화 및 통합화 사례로는 2015년 7월 삼성과 한화그룹 간 이른바 '방산빅딜'을 들 수 있다.

한화는 삼성과 진행한 빅딜로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두산에서는 두산DST를 가져와 (주)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으로 재편했다.

기존 탄약·정밀유도무기사업에서 자주포·장갑차·항공기·함정용 엔진과 레이더 등까지 진출해 매출기준 글로벌 32위까지 성장했다. 또한 최근 국내외 핵심 방산 사업을 연이어 수주하며 지난달에는 1조6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의 항공엔진 부품업체인 이닥(EDAC)을 인수했다. 단순한 기업 규모의 대형화 측면에서만이 아닌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원의 대형화 추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2025년에는 매출 1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역시 외환위기이후 적자에 시달리던 대우중공업,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현대우주항공 등 3사를 모체로 한다. 정부 주도로 통합한뒤 국내 유일의 항공기 개발·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김대중 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민간 항공업체들을 통합하라며 제안한 빅딜의 성과물이다.

KAI가 만든 'KT-1'과 다목적 헬기 '수리온' 그리고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등은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등 우리나라 항공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다.

KAI는 지속적으로 신뢰도를 높이고 국내외에서 입지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KAI는 지난달 29일 방위사업청과 TA-50 전술입문용훈련기 2차 양산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달 16개국 대사와 외교 관계자에게 참수리 경찰헬기를 탑승하고 성능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호평을 얻기도 했다.

미국 정부, 통합에 들어간 비용까지 계약과정 반영 

이미 해외 방산시장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미국과 유럽 등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지각변동이 이어지면서 방산업체들의 서열과 구조가 재편됐다.

각국은 방위산업에 대한 구조적 변화로서 인력 및 생산력 감축, 인수합병(M&A), 방위산업 기반역량 강화 등을 나서고 있으며 병력 감축과 손실 최소화 등에 대비, 고성능화 및 무인화 무기개발과 같은 첨단 무기체계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

방산 선진국들은 규모의 경제를 키워 투자여력을 확보하고 수요위축 등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미국은 1993년 윌리엄 페리 국방부 차관이 방산업체 고위직 만찬장에서 통합을 장려하면서 대형화 작업이 속도를 냈다. 정부는 통합에 든 비용까지 획득사업 계약과정에 반영해 이를 지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까지 계속 됐다. 2017년 9월 노스롭그루만은 오비탈ATK를 인수해 글로벌 3위 업체로 사세를 확장했다. 2018년 4월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CSRA를 인수했다. 2018년 10월 LS테크놀로지는 헤리스와 합병하면서 미국 방산업계는 빅6로 재편됐다.

영국 또한 항공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함정 등 국방 획득 전 분야 업체들을 BAE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이 회사는 20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거두는 글로벌 톱10 방산회사로 성장했다.

독일은 항공기, 유도무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등 주요 방위산업을 각각 EADS, MBDA, ESG, KMW 등 분야별 1개 체계업체로 합쳤다. 이스라엘은 국방과학연구소를 아예 국영 방산기업 라파엘로 재편·운영하고 있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센터장이 25일 열린 '한국방위산업학회 창립 제29주년 기념 방산정책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다윗 기자)
지난달 25일 열린 '한국방위산업학회 창립 제29주년 기념 방산정책포럼'에서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센터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전다윗 기자)

M&A 결합승인 심사기준 완화, 인센티브 지급 등 정책 지원 필요

국내 방산기업들도 인수·합병 등의 방식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작은 내수시장에 한계를 느낀 방산업체들이 수출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과 낮은 인지도로 시장 다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화와 KAI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방산기업이 합병을 바탕으로 성장한 만큼 앞으로도 주요 방산업체의 덩치를 키워 해외 시장 공략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방산정책 포럼에서 "전 세계적으로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 중이고, 우리도 방산수출과 산업생태계 측면에서 대형화 및 통합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형화 및 통합화 추진 방향으로 "정부가 통제해서 하는 형태는 지양하고 업체 간 자율적인 M&A를 유도 및 장려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다시 국내로 공장을 이전하는 리쇼어링(Reshoring)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이를 위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M&A 결합승인 심사기준 완화, 인센티브 지급 등을 제도화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최 교수는 "금융 및 세제 지원, 법인세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방산업체 대형화 및 통합화에 대한 가정으로 대한항공 방산 제조부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 제조부문의 결합 그리고 현대로템과 기아차, 한화디펜스의 합작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의 합병형태를 예로 들면서 세계 10대 방산기업 순위에 대한민국 방산업체의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선 대형 방산업체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지만 국내 개발 외 해외 무기 도입이라는 충분한 대체재가 있고 감시 기능도 강해 경쟁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반론에 힘이 실린다.

이와 관련 최 교수는 "국내개발 이외에도 해외에서 도입되는 무기 수요에 대한 충분한 대체재가 있는 만큼 자율적인 경쟁체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방위산업이 '코로나 19' 위기와 내수시장의 한계를 탈피해 수출 주도형 산업으로 패러다임(Paradigm)이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제 방산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방산업계 대형화 및 통합화를 통해서 방위산업 중흥의 재도약(Quantum Jump)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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