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11 10:29
영화 '오즈의 마법사' 한국판 포스터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이제는 꿈과 낭만, 이상을 좇아가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재가 나와야 삶은 더 윤택해진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태어난 20대 중후반을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라고 한다. 우리는 ‘달관 세대’라고 옮긴다. ‘사토리’는 불교의 ‘해탈’에서 비롯한 말로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특징이다. 시대의 그림자에 빗댄 슬픈 은유적 표현이지만 사실적인 느낌도 버릴 수 없어 은근히 기대된다.

사토리 세대에는 마법사도 있다. 25살까지 여자 친구도 없고 성적 경험도 없는 모태 솔로는 마법사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동자공(童子功)’을 쌓은 이들은 진짜 마법을 쓰게 될까? 사토리 세대는 결국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일까? 이것이 궁금하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현상이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경제 버블이 급격하게 붕괴하면 열심히 일해도 빈곤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자신의 취미에 집중한다. 이들은 자동차나 명품에 흥미가 없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 의욕도 없다.

아울러 해외여행에도 흥미가 없다. 도박도 하지 않는다. 검색에 뛰어나 정보에 밝고, 독서를 좋아해 박학하다. 연애에 담백한 초식 동물이다. 휴일은 집에서 지낸다. 굳이 명문대를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규직보다는 임시직을 선호한다.

특징으로 보자면 불교에서 내세우는 이상적인 거사(居士)나 보살(菩薩)이며, 예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을 몸소 실천하는 의인이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고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을 살아간다. 훈훈하다. 혹시 부처나 노자 혹은 예수도 당시의 사토리세대가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색욕이나 식욕을 멀리하고 정신공부에 집중한다. 사토리 세대도 정신적으로는 수도자와 다를 바 없다. 식욕이나 성욕을 멀리할 뿐 아니라 게임이나 취미에 집중한다. 스님들이 하나의 화두(話頭)에 집중하고 면벽을 하듯 게임을 하는 이들은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수행 정진 한다.

이들이 빠져드는 게임은 육체노동이 아니라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정신적인 몰입이다.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취미에 몰두하는 오타쿠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알파고와 일전을 벌인 이세돌과 다름없는 집중도로 게임이라는 정신수련을 하고 있다.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한다. 사토리 세대 중 자질이 뛰어난 사람도 많은 데다 젊으니 무엇이나 수월하게 성취할 수 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스펙 쌓기에 열중해 외국어는 기본이다. 외국 서적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지식도 풍부하다. 절대 서당 개에 비견할 바가 아니다. 이런 이들이 색을 멀리하고 고도의 정신적인 일에 집중하니 깨닫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불교에서는 깊은 수련에 이르면 신통력을 얻는 자가 생긴다고 한다. 도교(道敎)도 좌망(坐忘)이나 조식(調息)을 통해 진인(眞人)이나 신인(神人)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교(仙敎) 수련 역시 신통력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사토리 세대도 치열한 정신 수련인 게임을 몇 년씩이나 집중해서 한다.

신통력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결론이다. 물론 그런 신통력이 진정한 깨달음은 아니라고 비판 할 수도 있다. 사토리 세대도 깨달음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목표는 취직이었지만 성취는 깨달음이었을 뿐이다.

사토리 세대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이들이 소질을 발휘할 때 역사는 변했다. 영국의 해리포터가 그렇듯 세계는 신통력을 지닌 마법사가 대세다. 미국에서는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캡틴아메라카에다 망치를 휘두르는 신 토르(Thor)까지 가세해 정의를 수호하고 있다. 일본도 사토리 세대 출신인 원펀맨이 등장해 우주를 지킨다. 심지어 북한의 김일성은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며, 손으로 가리키면 노적가리가 생기는 신통력을 부렸고, 그의 아들은 매 홀 홀인원을 쳐 골프계의 신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도 고래로부터 신통력을 지닌 많은 영웅들이 나와 백성을 수호했다. 붉은 악마 치우부터 임진왜란 때는 서산대사나 사명당이 나타나 스스로 깨달아 얻은 신통력을 발휘했다. 전우치나 홍길동도 그랬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걸은 간데없고 목줄에 매인 삼성맨이나 현대맨만 남았다.

이제는 깨달음의 시대니 다를 것이다. 사토리 세대에는 수없이 많은 동량들이 타고난 소질에 따라 치열한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여자 골퍼들이 세계를 장악하듯, 비록 지금은 편의점의 편돌이일지라도 누구는 마법사로, 누구는 대종사(大宗師)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삼성과 현대가 아니라 우주를 정복할 새 시대 새 종교가 시작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