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10.17 01:20

광역단체장들, 특례시 도입 사실상 반대…김승수 전주시장 "자치분권·지역균형발전 위해 시급"
정치권, 특례군 신설 힘 실어줘…지방자치법 일부개정안·특별법안 5건 국회 발의

이상천 제천시장과 홍성열 증평군수, 김재종 옥천군수(왼쪽부터)가 지난 6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청주시의 특례시 지정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YTN 뉴스 캡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법률상으론 아직 존재하지 않는 행정구역인 '특례시' 문제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례시는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와의 중간 형태이다. 특례시로 지정되면 기초자치단체라는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역시급의 행정·재정 자치권을 갖게 된다.

당초 인구 100만명이 넘었지만 광역시가 못 되고 그냥 시(市)로 남아 있는 준 광역 도시들(수원, 고양, 용인, 창원)을 특례시로 승격시켜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됐지만 이후 '인구 기준을 50만명으로 낮추자'는 의견이 힘을 받은 뒤에는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구가 많으니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다'는 특례시 지정 요청과는 대조적으로 '인구가 적으니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하소연을 펴는 지자체도 나온다.

이른바 '특례군(郡)' 제정 요구다. 인구 감소로 말 그대로 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의 군 단위 지자체들이 본격적으로 연대하고 나선 것이다.

특례시 여러 해 걸친 공론화에도 결론 지지부진

특례시는 벌써 여러 해에 걸쳐 공론화가 이뤄져 왔다. 처음에는 광역시와 같은 '인구 100만명 이상' 기준을 적용하자고 했다. 경기도 수원·고양·용인·경남 창원시 등 총 4곳이 특례시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기준을 '인구 50만명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1대 국회 들어 정부가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도 행정 수요와 국가 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특례시 지정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면서 기대감이 커져갔다.

전국의 일반 시 중 인구 50만명 이상 100만명 미만인 곳은 경기 성남·화성·부천·남양주·안산·안양·평택·충북 청주·전북 전주·충남 천안·경남 김해·경북 포항시 등 12곳이다.

만약 '인구 50만명' 기준이 채택되면 특례시가 총 16곳이 생겨난다. 경기도에서만 10곳(수원·고양·용인·성남·부천·화성·안산·남양주·안양·평택)이 특례시가 된다.

당장 규모가 작은 도시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별시>광역시>특례시>일반 시'라는 새로운 서열과 위계가 만들어져 지자체 간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특례시 10곳이 한꺼번에 생겨날 판인 경기도에선 인구 50만명 미만인 오산시, 의정부시, 이천시 등을 중심으로 '특례시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선택된 도시'와 '외면된 도시'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잘 사는 도시'와 '못 사는 도시'라고 규정했다.

충북의 경우 경기도보다 사정이 더욱 복잡하다. 

만약 청주시가 특례시로 승격하면 도내 다른 시·군들은 가뜩이나 열악한 재정이 더욱 압박을 받게 될 처지다. 충북은 도 지방세의 절반 이상을 청주시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증평군, 옥천군, 제천시 등 도내 9개 시군은 힘을 합쳐 특례시 신설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광역단체장들 역시 지방자치법 개정을 촉구함과 동시에 특례시 지정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뉴딜 2차 전략회의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 가운데 특례시 조항을 삭제·분리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송 지사는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지방의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이번에 반드시 통과되기 위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특례시 조항을 삭제하거나 분리해 별도 법안으로 심의하는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는게 시·도지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취득세, 등록세 등 광역세가 특례시 재원으로 전환되면 광역단체의 수입이 줄어 재정여건이 취약한 시·군에 재분배하던 재원 감소가 불가피하다.

정부도 특례시를 별도 법안으로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특례시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만 남기고 특례시 대상과 재정특례 방향을 별도 법안으로 처리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면 특례시 지정에 나선 기초단체들은 자치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특례시 지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행정수요가 늘고 있지만 권한, 재정이 부족해 적절한 주민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재정 불균형 문제는 국세·지방세 구조 개편과 재정조정제도 개편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한우 단양군수. (사진=KBS 뉴스 캡처)

사라지기 싫은 지자체들 "특례군 지정해달라"

여러 해에 걸쳐 공론화 된 특례시와 달리 특례군은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15일 충북 단양관광호텔에서 '특례군 도입방안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가 열렸다.  

특례군이 되면 기구·정원 자율권 부여, 지방조정세 신설, 교부세 인상, SOC 등 인프라 확충 시 우선배정 등의 행정·재정적 특례를 받게 된다.

보고회를 주최한 특례군법제화추진협의회에는 현재 단양군을 비롯해 인천 옹진군, 강원 홍천군, 전북 진안군, 전남 곡성군, 경북 군위군, 경남 의령군 등 24개 군이 참여하고 있다. 협의회장은 류한우 단양군수가 맡았다.

이들은 인구가 3만명 미만이거나 1㎢당 인구 밀도가 40명 미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구가 너무 적어 자칫 이웃 시·군에 통폐합되는 형태로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이다.

특례군법제화추진협의회장인 류한우 단양군수는 "특례군 법제화라는 목표를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모였다"며 "협의회가 지방분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주민과 공감대 형성, 지역 국회의원과의 협력체계 유지 등에 힘쓰자"고 강조했다. 

이 협의회는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지방자치법상 특례군으로 지정해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10월 발족했다.

협의회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한국행정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특별교부세 교부기준에 과소 지자체 지원수요 신설 ▲국고보조금 기준 보조율 10% 이상 상향 ▲균형발전특별회계에 균형기반 사업 추가 ▲과소 지자체 활성화 지원 특별회계 신설 등을 재정 지원 방안으로 내놓았다.

협의회는 앞으로 국회 토론회, 서명운동, 정책 세미나 등을 통해 특례군 지정 공론화에 나설 방침이다. 

아울러 인구 3만명이 넘는 곳 가운데 뜻을 같이하는 농어촌 지자체들의 회원 가입도 추진할 계힉이다.

정치권도 특례군 도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례군 법제화를 통해 낙후지역 지원을 명시하는 지방자치법 일부개정안 2건, 인구밀도·출생률·재정자립도 등을 고려해 소멸위험 지역으로 지정해 지원하는 특별법안 5건이 21대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법 개정이 성사되면 정부는 인구와 인구밀도가 기준 이하인 군 단위 지자체 지원 시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광역 지자체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전국의 유서 깊은 군 단위 지자체가 단지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존재감이 낮아져선 안 된다"며 "특례군이 자립에 성공, 지방분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