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10.21 11:52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 있는 현재의 정초석. (사진제공=문화재청)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 있는 현재의 정초석. (사진제공=문화재청)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에 새겨진 '정초(定礎)'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사적 제280호 '서울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의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중 한 명이다.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 당해 사망했다.

문화재청은 관련 사항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서체 관련 전문가 3인으로 현지조사 자문단을 구성해 10월 20일까지 현지조사를 시행한 결과 해당 글자가 이토 히로부미의 것임이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현지조사에서는 지금까지 입수된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붓글씨와 최근 확보된 1918년 조선은행이 간행한 영문잡지 '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에 게재된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 이름이 새겨진 당시의 정초석 사진 등이 참고됐다.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붓글씨. (사진제공=문화재청)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붓글씨. (사진제공=문화재청)

한은 본관 정초석에 새겨진 '定礎' 두 글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묵적(먹으로 쓴 글씨)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을 종합해 볼 때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이사항으로는 정초석에서 정초 일자와 이등박문 이름을 지우고 새로 새긴 '융희(대한제국 연호) 3년 7월 11일'(1909년 7월 11일) 글씨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필치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다만 정확한 기록은 없으며, 해방 이후 일본 잔재를 없애고 민족적 정기를 나타내기 위해 이승만이 특별히 써서 석공이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확인된 정초석 글씨에 대한 고증결과를 서울시(중구청)와 한은에 통보할 예정이다. 한은이 내부 검토를 거쳐 정초석 글씨에 대한 안내판 설치나 '정초' 글 삭제 등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할 경우 문화재청은 전문가 의견 수렴,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관리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가 새겨진 정초석이 있는 한은 본관은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된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나라 경제 침탈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다. 광복 이후인 1950년 한은 본관이 됐고, 1987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현재는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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