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10.25 09:35

SK·쿠팡도 호시탐탐…김필수 교수 "대기업, 독식 마음 먹는 순간 공멸할 것"

장안평 중고차 시장 전경 (사진=손진석 기자)
중고차 시장 전경.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약 2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중고차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던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빅 플레이어'들이 속속 참전을 선언하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본래 대기업이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지난 2013년부터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다. SK의 경우 운영하던 중고차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됐고,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존 중고차 업체들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을 신청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부적합' 의견을 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중기부도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조건부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2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만 총 224만대의 중고차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신차는 178만대 팔렸다. 중고차 거래량이 신차보다 약 1.3배 더 많다. 그간 대기업들은 몸집이 커진 중고차 시장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켜왔다. 점차 시장 진출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자 이제는 본격적인 참전 준비에 나섰다.

포문을 연 건 현대자동차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가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김 전무는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70~80%는 거래 관행이나 품질,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완성차 업체가 반드시 해야 할 사업"이라고 했다. 

최근 국내 모빌리티 업계 최초의 유니콘기업이 된 쏘카도 지난 19일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 '캐스팅'을 출시하며 중고차 시장에 발을 들였다. 쏘카 앱에 캐스팅 메뉴가 새롭게 추가되는 형태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캐스팅은 쏘카가 카셰어링으로 직접 관리하고 운영해온 중고차를 판매한다. 우선 ▲투싼(2017년식, 1100만원대부터) ▲스포티지(2017년식, 1100만원대부터) ▲아반떼(2016년식, 590만원대부터) 등 준중형 SUV·세단 3종이 판매 대상이다. 점차 판매 차종과 차량을 늘려갈 계획이다. 

네이버는 직영중고차 기업 '케이카'와 제휴를 맺고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네이버는 자사 차량 관리 통합서비스 '네이버 마이카'에서 케이카의 중고차 시세 정보를 제공한다. 차량 번호만 입력하면 신차 출고가 대비 중고차 시세를 알 수 있다. 또한 고객이 조회한 시세를 바탕으로 차량 매각을 원할 경우, 케이카와 연결해 차량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도 지난 20일 비슷한 내용의 제휴를 네이버와 체결했다.

과거 중고차 시장 최대 사업자로 군림했던 SK와 지난달 중고차 감정업·중고차 정보제공업 등을 목적으로 '쿠릉'을 상표권 등록한 쿠팡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중고차 업체들은 '대기업의 시장 독점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일단 환영하는 모양새다. 그간 중고차 시장에 쌓여왔던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실시했던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4%가 중고차 시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차량 상태를 믿을 수 없다(49.4%)거나, 허위·미끼 매물(25.3%)이 많고 가성비가 안 좋으며(11.1%), 판매자를 불신한다(7.2%)는 이유였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고 판단한다. 신규 사업자인 대기업과 기존 사업자인 중소업체들은 물론이고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봤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매매업자들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켜달라고 아우성을 칠 게 아니라 신뢰할 만한 시장을 만들지 못한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며 "대기업 역시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공멸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실질적 역할 분담을 통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상생모델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균형을 잡아야 할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중고차 시장을 선진화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매매업자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령 중고차 성능점검업체만 제대로 관리·감독했다면 허위·미끼 매물을 줄여 중고차 시장에 신뢰성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며 "정부가 중심을 잡고 중고차 시장을 관리·감독·조율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아울러 법적 구속력이 있는 상생협약안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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