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10.26 00:15

"종교적 신념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만큼 진실해야"…대체복무제 오늘부터 첫 시행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종교적 신앙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가 오는 26일부터 교도소 등 기관에서 처음으로 시행된다.

양심적거부란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과 집총(총을 잡는행위)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대체복무가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면서 '정당한 병역 거부'와 '불법 행위'를 나누는 기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헌재 판결로 입법 논의 본격화…'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지난해 12월 국회 통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체복무 입법 논의는 병역 종류로 대체복무를 정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2018년 6월 헌재 판결에 따라 본격화됐다.

헌재는 당시 병역거부 처벌 근거 조항인 병역법 88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법원이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 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현행 병역법 제88조 1항(입영의 기피 등)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당시 헌재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병역 종류에 대체복무제를 포함하지 않은 같은 법 5조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당한 사유'가 아닌 입영 거부를 처벌하는 조항 자체는 문제없지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입영 거부자를 위해 대체복무제는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같은 해 11월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무죄 취지의 선고를 하면서 정당한 사유가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병역법이 개정돼 병역 종류에 대체복무제가 추가됐고 대체역 심사위원회 구성, 대체역 편입 절차 등을 정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도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대체복무 근거 된 무죄 판결…정당한 병역 거부 기준 주목

이달부터 시행되는 대체복무를 시작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전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대체역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는 것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 됐다가 무죄 확정을 받는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가 판단한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 기준이 주목을 받고 있다.

통상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사법부 판단의 쟁점은 종교인의 입대 거부가 병역법 88조가 명시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이 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소집일부터 일정 기간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병역 거부자의 종교적 신념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만큼 진실한 것인지는 재판부가 필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종교집단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침례의식을 거쳤느냐가 유무죄를 가르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 예로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병역 거부자의 상고심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침례의식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침례를 받지 않은 이유와 향후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인지 의심이 된다는 지적도 했다.

최근 대법원은 9년 만에 종교 활동 재개하며 입영 거부를 한 신도에게도 '양심적인 병역거부'로 볼 수 없다며 유죄를 판결했다.

현역입영 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씨는 검찰에서 입영 직전만 해도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해 복무할 생각이었으나, 입영 바로 전날인 2018년 8월 12일에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입영을 거부한 후 종교 활동을 재개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병역거부 당시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깊거나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통하여 형성되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실제 삶으로 표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 등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 모습. (사진=전쟁없는 세상)
지난 5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 등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 모습. (사진=전쟁없는 세상)

◆종교 교리와 맞지 않은 범죄 전력· 총기 게임도 고려…"기준 모호해" 

종교 교리와 맞지 않은 범죄 전력이 있거나 폭력적인 게임에 집착한 정황이 있다면 유죄의 사유로 고려 될 수 있다. 

대법원이 최근 여성 상대 몰카·온라인 게시판 모욕·절도 등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한 한 신도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한 게 대표적 사례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안 씨는 2015년 모욕죄로 벌금 100만원, 절도죄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범행 시기는 입영거부 시점인 2013년 7월 전후에 걸친 2012년, 2013년, 2015년" 이라며 "안 씨의 범죄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또한 "원심 판단에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판결을 확정했다.

총기 게임 등 게임에 집착한 정황도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다만 게임의 폭력성 정도 등에 따라 유죄 판단이 갈릴 수 있다.

대법원은 병역을 거부한 신도가 '배틀그라운드'(베그)와 '오버워치' 등 총기 게임을 즐긴다는 이유를 들어 유죄를 판결하기도 했다. 당시 신도는 재판을 받는 기간동안에도 배틀그라운드와 오버워치를 즐겼으며, 게임을 할 당시에는 양심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 신도는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온라인 전쟁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롤·LOL)를 즐긴 점이 확인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캐릭터들의 형상, 전투의 표현 방법 등에 비춰 살상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당시 판결 취지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대법원 판례 이후에도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이 불가피하다"며 "양심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법원과 검찰 모두 사건마다 고민이 깊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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