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삼성서울병원 설립, 진료대기·보호자·촌지 없는 '3무 경영' 제시
[이건희 별세] 삼성서울병원 설립, 진료대기·보호자·촌지 없는 '3무 경영' 제시
  • 고종관 기자
  • 승인 2020.10.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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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진료시간 줄이더라도 친절하라"…서비스 개념 도입해 '환자 중심 병원' 주창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고 이건희 회장은 국내 산업발전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했지만 병원사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삼성서울병원이 갖는 병원의 위상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설립된 해는 1994년이다. 당시 병원계에선 삼성의 병원사업 참여가 달갑지 않았다. 5년 전인 1989년, 서울아산병원이 등장해 한 차례 평지풍파를 일으킨 뒤여서 더욱 그랬다. 실제 ‘돈이면 다 되는게 아니다’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그만큼 ‘1등 철학’을 내세운 삼성의 병원 설립 소식은 병원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병원성장의 필수인력인 ‘명의’는 이미 서울아산병원이 ‘독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이 내세운 전략은 보란 듯 설립 1년도 안돼 병원계를 뛰어넘어 모든 환자들에 회자될 정도의 브랜드 인지도를 확립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면에는 철저한 준비기간이 한몫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10여년에 걸쳐 개원준비를 한 것이다. 실제 이 회장이 가장 관심을 둔 키워드는 ‘반도체와 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병원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이 회장은 공사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이런저런 주문을 했다. 개원 3년 전부터는 중견 의료진을 미리 선발해 월급을 지급하며 해외 연수를 보내고, 선진병원 설계를 벤치마킹해 병원 설립에 참고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11월 서울 일원동에 1100병상 규모로 개원했다. 개원 초기엔 이건희 회장이 매일 아침 8시 영상조회에 직접 방송카메라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그룹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하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병원에 각인시켰다.

삼성서울병원이 내세운 것이 이른바 ‘탈권위’다. 처음으로 ‘서비스’라는 개념을 도입해 환자 중심의 병원을 주창했다. 당시 표방한 슬로건인 ‘3무(無)병원’이 그것이다. 오랜 기다림을 줄이고, 보호자와 촌지가 없는 병원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명의'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택한 서울아산병원과 궤를 달리한다.

당시에는 소위 주치의에게 촌지를 건네는 것이 관행처럼 성행했었다. 이런 촌지문화가 없다는 소문은 환자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병원장실에는 환자들에게서 들어온 고급술과 선물꾸러미가 늘 쌓여 있었다. 환자들이 받길 거부해 돌려주지 못한 촌지와 선물이었다. 이렇게 모인 선물들은 정기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병원 관계자들은 이런 아이디어가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이 회장이 입버릇처럼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를 보고, 보호자가 수발을 들다 병이 걸리는 현실, 그리고 의사에게 촌지를 건네야 진료를 잘 봐줄 것 같은 문화”를 지적하며 새로운 병원문화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철학은 병원 장례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례식장에서 촌지가 사라지고, 매뉴얼대로 의식이 진행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기업의 병원 참여는 ‘환자’를 ‘고객’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당시 병원은 진료만 잘 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다보니 삼성의 신선한 시도는 병원계의 불만으로 터져나왔다. ‘삼성이 환자를 버려놓는다’든가, ‘환자들이 왕자병, 공주병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의사의 진료시간을 줄이더라도 친절하라는 것‘이 이 회장의 병원 운영에 내건 일관된 신념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KCSI(한국산업의고객만족도)와 KS-SQI(한국서비스품질지수) 평가에서 매년 1위로 기록되는 성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은 처음부터 종이차트를 거부했다. 처방전산화시스템(OCS)과 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등을 도입해 병원 디지털을 견인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환자 편익으로 이어져 대기시간은 물론 처방약의 오투약을 줄이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보편화된 OCS는 손으로 차트를 써야하는 의료진의 노고를 덜어 신속한 진료를 가능케 했다. 무엇보다 차트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환자정보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요즘 각광을 받는 의료빅데이터의 근간을 마련한 셈이다.

PACS 역시 영상을 저장 또는 실시간 전송할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진료 뿐 아니라 의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병원에 윤리경영이라는 개념도 도입됐다. 개원 이듬해 병원계에선 처음으로 준법경영실을 설치하고, 감사팀을 운영했다. 이후 병원조직의 윤리경영은 다른 병원들에게도 전파돼 병원혁신 선포식의 단골메뉴가 됐다.

삼성서울병원은 강북삼성병원과 삼성창원병원과 더불어 삼성의료원의 일원이면서 맏형이다.

삼성의료원은 4차산업의 발전과 맞물려 다시한번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의료빅데이터와 인공지능, ICT와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헬스케어 산업, 여기에 바이오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것이 병원이기 때문이다. 삼성바이로직스의 태동부터 성장까지 삼성서울병원의 역할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은 연간 매출 1조4000억원의 매머드 병원으로 성장했다. 의료진를 포함한 직원 수만도 9000여명, 병상수는 1956병상에 이른다.

서울아산병원과 더불어 기업형 병원의 등장은 분명 우리나라 병원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 경영이나 이윤추구가 의료의 본질에 앞선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매머드한 규모와 도식화된 치료, 경영 성과 등이 자칫 삼성의료원이 추구하는 환자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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