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11.02 16:06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2일 당헌 개정을 통해 내년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자를 공천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당원 투표로 공천의 합법성을 '당당히' 취득했다는 주장과 다름 아니다.  

이런 민주당의 입장에 대해 모든 야당은 내로남불의 전형이자 조변석개 정당이라고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혐오증을 키울 우려가 크다는 것이 문제다. 건전한 대의민주주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민주당은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아울러 뒷맛도 떨떠름하다. 무엇보다 '바보들의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제도의 태생적 한계'에서 오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국회의원 총수가 100명인 국가를 상정해보자. 이 나라에는 두 개의 정당이 있는데 A당은 국회의원이 51명이 있고 B당은 49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국회의원 총수의 과반수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쳤을 때 B당 보다 불과 2석이 더 많을 뿐인  A당은 단독으로 제정하지 못할 법률이 없게 된다. 

조직화된 소수가 '합법적으로' 다수로 변신하는 마술에 대한 거부감의 영향도 클 것이다. 이른바 '바보들의 다수결'이 초래하는 맹점에 주목해보자.

지난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됐던 제 6차 개헌 당시 이야기다. 이 해 10월 17일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이 3선이 가능하도록 개정된 헌법은 77.1% 참여에 65.1% 찬성을 얻어 확정됐고 이 헌법은 10월 21일에 공포 및 시행됐다.

이 보다도 더 압도적인 헌법 개정안 통과 사례도 있다. 과거 '유신헌법' 얘기다.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된 유신체제하에서 동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헌법이다. 1972년 10월 27일 평화적 통일지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2대 특징으로 한 개헌안이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됐고, 그해 11월 21일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찬성(투표율 91.9%, 찬성 91.5%)으로 확정됐으며 대통령 취임일인 12월 27일에 공포·시행됐다.

외면적으로 보면 절차·투표율·찬성률 등 어느 하나도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민주적 절차로 개정돼서 통과된 헌법들이다. 하지만, 헌법 개정안이 마련돼 통과되던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이 두 헌법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십년 동안 '반민주적 폭거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것이 바로 '바보들의 다수결'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수결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처음 의도대로 다수의 생각이 소수의 생각보다 우월해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선 그 전제조건이 구성원들이 일정한 수준 이상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점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가 선거권에 있어서 연령 제한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령 제한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데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여론 조작이 쉽고 사람들이 쉽게 선동되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는 매우 취약하며 불완전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화된 소수가 어떤 사안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할때 민주주의는 그 속에 내재된 '반민주의 위험' 때문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늘 경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맹점'에 의해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좀더 세련되고 완성체에 근접한 것으로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내년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후보자 공천 여부를 전당원 투표라는 형식을 통해 물었고, 그 결과는 11월 2일 발표됐다. 민주당 당헌상 당 소속 인사의 부정부패로 재·보궐 선거를 실시할 때는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당원 전체에게 의사를 묻게된 원인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논란으로 야기된 문제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이번 투표에 민주당은 권리당원 80만 3959명 중 21만 1804명이 참여했다. 투표율은 26.35%였고, 그중 찬성은 86.64%를 반대는 13.36%를 기록했다. 전당원투표라는 당내 최고의결기구를 통했고, 게다가 찬성이 86%를 넘었으니 아무런 하자없이 지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잘 치러진 투표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을 비롯한 모든 정당들이 최근 내놓은 비판적인 논평들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민주당 전당원투표 이르기 전에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서 터져나왔던 이른바 '문재인 조항'과 '피해 여성에 대한 3차 가해 논란' 및 '838억의 혈세를 투입해 잔여 1년 임기의 서울·부산 시장의 빈자리 메우기를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규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듯 하다.

오죽하면, 민주당과 함께 진보정당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정의당마저 이번 민주당의 전당원투표 시행에 대해 공식적인 쓴소리를 냈을까 싶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회의 모두발언에서 "당원 투표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며 "필요할 땐 혁신의 방편으로 사용했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모습은 분명 민주당 역사의 오명으로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성 비위라는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광역)단체장의 보궐선거에 또다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는 철면피는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책임도 지지 않겠단 태도"라고 쏘아붙였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점을 넘어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전체 인원과 대비해 불과 26.35% (21만여 명)이라는 초라한 투표율을 86%라는 압도적 찬성률로 뒤바꿔 놓았다. 마술을 통한 '면죄부 발급'이라 할 만하다. 민주당이 이번 전당원투표에서의 86%의 찬성률을 내세워 마치 내년 4월 7일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민주당이 후보자를 공천하라는 면죄부라도 받은 듯이 나서는 것은 '반민주적 작태' 아닐까.

더군다나 민주당이 2일 전 당원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낙연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고 했지만, 이번 투표에 참여한 당원이 전체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자 곧바로 효력 논란이 제기됐다.

민주당의 당헌·당규에는 전 당원투표는 '투표권자 총수의 1/3 이상(33%)의 투표와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에선 "이번 투표는 의결절차가 아니라 당원들의 의지를 물은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명분이 약해 보인다. 

이에 더해, 민주당은 "이번 투표는 상징적 의미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투표 참여자가 전체 당원의 1/3에도 못미친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전체 민주당원 대비해 극소수의 인원일 뿐인 21만여 명의 찬성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에 만들었던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96조 2항)을 손바닥 뒤집듯이 약속을 뒤집은 서울·부산시장 공천은 국민을 우롱한 궤변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민주주의 제도의 최대 맹점 중의 하나인 '바보들의 다수결'에 대한 씁쓸함만 더해 준 결과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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