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서 공부해 '인서울' 하니 지방인재 아니라고?"…'공공기관 지방대 채용 50% 확대' 반대 봇물
"지방서 공부해 '인서울' 하니 지방인재 아니라고?"…'공공기관 지방대 채용 50% 확대' 반대 봇물
  • 전현건 기자
  • 승인 2020.11.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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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으로 이미 길 열려…공정해야할 채용 시장 왜 기울어지게 만드는지 의문"
송갑석 의원 "현재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 채용제도'도 지켜지지 않아"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중앙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더불어민주당)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 채용시 지방대학 졸업자 50%를 뽑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이 '지역 민심 챙기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본격적인 외연 확장과 함께 다가올 재보궐선거와 더 나가 대권을 위한 행보로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은 즉각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도권 출신 대학생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고 정부가 '기회의 평등'은 무시하고 '결과의 평등'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정규직 전환 사태에 이어 또다시 '불공정 논란'이 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고 장기적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인재 할당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역시 대두되고 있다.

지방에서 수도권대학 왔더니 역차별…공기업 지방대 할당제에 청년들 비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대구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 혁신도시에 입주해 있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5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지방 교육도 살리고 청년 일자리도 살리고, 상호 연계돼 있기 때문에 함께 추진하겠다"며 "혁신도시가 입주해 있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을 늘리고, 공무원의 지방할당제가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그 비율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혁신도시 공공기관은 현재는 혁신도시가 있는 지방의 대학 출신 30% 채용을 목표로 할당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지방의 학교 출신들 더 얹어서 50%까지 지방대학 출신자로 채우는 방안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의 뜻대로 정책이 시행될 경우 수도권 대학생들은 한국전력과 같은 공공기관에 입사할 가능성이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전북을 방문해 같은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 계속해서 '지방인재 채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이 쌓였다.

이런 판에 청와대는 가뜩이나 불난 집에 더욱 불을 붙였다.

지난 4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모든 일을 법령에 근거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있다"며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저희는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느 정권 못지않게 공정한 국정운영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알려진뒤 취업준비생들은 "이전 정권보다 고위공직자의 비리는 없었는지는 몰라도 과연 청년 정책에 있어서 공정을 외칠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일어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와 공공기관 지방대 50% 채용 검토에서 공정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비정규직과 지방대학 출신자의 처우를 개선해준다는 취지는 좋으나 과한 배려가 또 다른 역차별을 불러일으켰다"고 비판했다.

특히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지방에서 보내다가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들에게서 공공기관 지방대 할당 검토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주요 대학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방에서 힘들게 공부해서 상경하고 인서울하니까 지방인재가 아니란다", "취업이 워낙 힘든 상황에서 시골 지방 출신 힘 빠지게 한다", "지역인재가 문재인 정부에서 말하는 '공정'이냐" 등의 비판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공기관 지방대 50% 할당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공공기관 지방대 50% 할당제를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지난 2일에만 세 건의 관련 청원글이 게시됐다. '고향에서 역차별 받는 지방 인재 제도 반대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은 6일 기준 80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를 얻은 상태다.

청원인은 "평생을 지방 고향에서 살다 대학을 서울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많은 대학생이 차별받고 있다"며 "국토균형발전과 사라져가는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취지에는 공감이 되지만, 제도적 현실은 그야말로 '역차별'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차별(학벌)을 없애겠다고 보이는 차별(수도권 대학 지방인재)을 만드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과정은 공정할 것' 이라는 말과도 어긋난다"며 "어려워지는 취업시장에 갈등을 뿌리 뽑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위 청원과 같은 날 '공공기관 채용 수도권 대학 역차별'이라는 제목의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인은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대학, 전공, 학점을 모두 배제한 채 지원자의 역량을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라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방대학 인재에게도 이미 길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 학생들이 필기시험에서 1문제라도 더 맞기 위해 밤늦게 까지 공부한 모든 노력이 지역인재라는 허울뿐인 제도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다"며 "왜 공정해야만 하는 채용 시장을 기울어지게 만드는지, 왜 수도권 대학 학생들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맹비난했다.

(자료=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 채용제도조차 못 지켜…광주·전남 채용률 17.1%

이 대표는 할당제를 50%대까지 확대하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현재 시행 중인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 채용제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도시 이전공공기관의 지역 인재 의무 채용제도'는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는 데서 시작했다.

지난 2018년 법제화되면서 목표비율 18%를 시작으로 매년 3% 이상 확대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30%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우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관련 시행령에는 의무채용비율을 지키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수준에 그쳐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현황'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률은 17.1%에 그쳤다. 2019년 기준 지역인재 의무채용 법정 비율은 21%다. 이전 기관 13곳 중 의무채용비율에 못 미치는 기관은 5곳이나 됐다.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은 지역인재 채용비율 0%를 기록하기도 했다.

저조한 지역인재 채용 현황을 보이는 곳은 특정 지역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주 혁신도시의 경우 공공기관 8개 중 의무채용비율을 채운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정규직 채용인원 1309명 가운데 지역인재채용 인원은 203명으로 평균 15.5%에 그쳤다. 8개 공공기관이 2015년부터 최근 6년간 정규 채용한 인원 중 지역인재 비율은 11.7%였다.

혁신도시들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강원 원주혁신도시가 9.2%로 가장 낮은 지역인재 선발비율을 보인 가운데 울산 혁신도시는 10.2%, 전북 혁신도시는 14.2%, 경남 혁신도시는 15.5%를 각각 기록했다.

'공공기관 지방대 50% 할당제' 반겨…지역 학교의 존립 문제 넘어 지역경제 사활 결정

반면에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에 시달리는 지역 사회와 대학들은 공공기관 지방대 50% 할당제라는 소식을 반길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정책의 도입이 필요한 것은 현재 한국이 심각한 지역불균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인구 5178만여명 중 약 970만 명이 서울특별시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물리적 크기를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인구가 얼마나 한 도시를 중심으로 심각하게 몰려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는 인구가 몰린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지방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 등으로 인해 지방대의 입지 역시 갈수록 좁아지는 상태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수도권 외 지역 소재 대학교 220개교 중 2024년에 신입생 충원율 95%를 넘기는 학교는 단 한곳도 없을 것이며 3곳 중 1곳은 신입생 정원의 70%도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학교의 존립 문제를 넘어 지역경제의 사활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수도권의 대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함이다.

공공기관 채용은 특히 경쟁률이 매우 치열하므로 정부 차원에서 채용에 지방대 출신자를 할당한다면 이를 고려해 지방대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고 지방대학이 문을 닫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국가로서는 지역경제 붕괴를 막아 균형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지방대를 살려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정책은 시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 시행하면서 이미 수도권 대학 출신에 대한 혜택을 상당부분 없앤 실정이다. 인구 유출과 출산율 저하로 인해 지방소멸 위기에 쳐해 있는 지역들을 감안할 때 국가적 차원에서 할당제 확대 같은 정책적 노력들을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부인하긴 힘들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공급되지 않아 공공기관 취업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상황에서 그동안 노력해왔던 취업준비생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확대 도입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정부는 단순히 결과만을 생각해 정책을 만들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비율, 적용 시기 등을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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