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11.13 19:30

마스크 강조하며 유색인종 중심으로 '반 트럼프 세력' 구축 성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성조기.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백악관의 주인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일부터 진행된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측은 일부 주(州)에서 재검표를 요구하며 불복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 2020 미국 대선의 결과는 4년 전과 판이하다. 선거인단 수만 봐도 4년 전 306명을 확보, 232명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압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오히려 290명의 선거인단을 뺏기며 압승을 내줬다.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판세가 뒤바뀐 주는 위스콘신(선거인단 10명), 미시간(16), 펜실베이니아(20), 조지아(16), 애리조나(11) 등 5곳이다. 승자독식제가 아닌 비례배분제를 활용하는 네브래스카 주도 4년 전 공화당이 모두 승리했던 것과 달리 선거인단 1명을 내줬다. 

트럼프 입장에서 50개 주 가운데 5개주를 넘겨준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주의 수는 적지만 이 5곳에 걸린 선거인단만 73명이다. 미국 대선의 당선 매직넘버인 270명의 4분의 1에 달한다. 

트럼프는 이들 거대 경합주에서의 유세에 총력을 다했지만 4년 전의 역전극을 재현하지 못했다.

미국 선거 개표요원들이 투표 용지를 세고 있다. (사진제공=뉴욕타임스)
미국 선거 개표요원들이 투표 용지를 세고 있다. (사진제공=뉴욕타임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최악의 악재는 단연 코로나19 사태였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자만 1000만명 이상, 사망자 수만 24만명을 웃돌며 세계 1위 수준이다. 심지어 트럼프 본인도 지난 10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되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응도 최악에 가까웠다. 트럼프는 미국 내에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확산된 이후에도 마스크는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며 공식 석상에 잇달아 맨얼굴로 등장했고, 완치 이후 "나는 코로나19 면역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 유세를 벌였다.

대통령의 신분으로 비과학적인 주장 혹은 가짜뉴스를 내세우기도 했다. 트럼프는 공식 석상에서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소독제를 주사로 주입하는 실험을 할 수는 없나", "말라리아 치료제는 '기적의 치료제'"와 같은 발언을 하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트럼프는 소독제 주사 발언에 대해 "기자들을 비꼰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실제로 일부 미국민들이 소독제나 표백제를 혈관에 주입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는 감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에게는 '멍청이', '재앙'이라고 맹비난하며 과학계에도 등을 돌렸다.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원동력이 됐던 것은 이른바 '샤이 트럼프'로 불리는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들이었다. 2016년 당시 '푸어 화이트(Poor white)'로도 지칭되는 백인 저소득층은 이민자 증가 등으로 인한 자국 내 일자리 감소 등을 성토했고, 트럼프는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민자들을 공격하며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줬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표어와 미국 우선주의 역시 다문화 포용 정책에 염증을 느끼던 미국 내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표를 얻어오는 데 주효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국 내에서도 셧다운, 통행금지 등이 잇달아 적용되며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트럼프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트럼프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2020년 대선의 접전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샤이 트럼프' 등 트럼프 지지자들은 많이 남아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반(反) 트럼프'가 샤이 트럼프를 눌렀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벽화와 꽃. (사진=트위터 갈무리)<br>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벽화와 꽃. (사진=트위터 캡처)

'블랙 라이브즈 매터'(BLM,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인종차별 문제도 트럼프의 취약점이었다. 지난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폭동에 가까울 만큼 과격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자신의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반 인종차별 시위대를 '폭도', '폭력배'로 치부해버렸고, 군대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대선 TV 토론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폭력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백인우월 단체에 대해 "뒤로 물러서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더욱 물의를 빚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악화되며 자신의 기존 지지층인 백인 저소득층의 실망을 사는 동시에 반대 세력의 결집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바이든은 이러한 트럼프의 행보와 정확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마스크를 강조하고 과학자들의 의견을 중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부통령 후보로 흑인계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지명하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유색인종을 중심으로 반 트럼프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지난 2016년 흑인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힐러리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던 흑인들까지 바이든 지지자로 대거 돌아서게 된 결과를 낳았다.

트럼프의 연이은 자충수가 바이든을 승자로 만들어줬다는 냉소적 평가까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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