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0.11.21 07:00

높은 임금, 리쇼어링 막는 최대 걸림돌…"노동비용 인상 자제·생산성 제고 통한 '제조원가 비교우위' 확보 절실"

(이미지출처=네이버지도, 픽사베이)
(이미지출처=네이버지도, 픽사베이)
야심차게 시작한 2020년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췄다.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선방한 것은 사실이나 서민경제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격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숙박음식·교육 등 대면업무 비중이 높고 내수에 민감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취업자 감소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52시간 근무와 조세·사회보험료 부담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조업의 일자리 위축 현상도 계속됐다. 반면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 경제'는 급부상했다. 금융이나 의료 등에서도 비대면 분야를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생겼다. 다만 정부의 규제 개선 속도가 여전히 미진해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하면서 '일자리 정부'를 천명했다. 올해는 코로나 시국이라는 변명거리라도 있다지만 전체 취업자가 증가했던 2019년에도 30대와 40대 취업자는 줄고 제조업 일자리도 감소하면서 C학점을 받았다. 문 대통령 취임이후 '노동 존중' 분위기 속에서 일자리 위기는 더 심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K-방역'의 혁혁한 성과 뒤에 ‘K-적폐’의 그늘도 짙게 깔리고 있는 형국이다. 뉴스웍스는 2020년을 마감하면서 ‘K-적폐’ 시리즈로 '사라진 일자리', '만들지 못한 일자리'를 진단하고 대안도 살피면서 새해 한국의 재도약을 염원한다.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최근 미중무역 분쟁, 영국의 EU 탈퇴, 코로나19 발생 등으로 GVC(글로벌 가치 사슬)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중국 내 자동차부품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와이어링 하네스’ 부품 공급이 중단돼 국내 자동차 공장도 일부 정지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급 문제는 일자리와 직결된다. 코로나 확산으로 우리나라의 전년동월 대비 취업자 수는 3월부터 10월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이면서 비교적 높은 임금으로 양질의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 취업자 수가 8개월째 줄면서 코로나에 따른 일자리 타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올해 1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22개월 만에 반등했으나 코로나 확산 여파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일자리 창출 부진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2018년 취업자 수는 2682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9만7000명 늘어나는데 그치면서 증가 폭이 10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8만7000명 감소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제조업 취업자 수도 5만6000명 줄었다. 

2019년 취업자 수는 전년도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30만1000명 늘면서 다소 호전됐다. 다만 세부지표를 보면 30대와 40대, 제조업에서의 취업자 감소가 지속됐다. 30대는 5만3000명, 40대는 16만2000명 각각 줄었고 제조업에서도 8만1000명 감소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 여파로 고용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10월 기준 취업자는 2708만8000명으로 전년동월 대비 42만1000명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9만8000명 줄면서 10만명에 육박했다. 

연간 제조업 취업자는 2016년(-5000명)부터 줄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1만2000명)에는 1만명대로 감소폭을 키웠다. 이후 미중 무역분쟁으로 타격을 받은 제조업은 코로나 확산 여파로 취업자 감소폭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국내 일자리가 파탄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해외로 나갔던 공장을 국내로 옮기는, 이른바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 확충에 나서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3년 유턴법을 제정, 시행 중이다. 올해는 11월까지 총 21개 기업이 유턴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는 전년(16개사)보다 5개사 늘어난 것이다. 자동차·화학 등 주력 업종 및 중견기업 등의 유턴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의 ‘우리나라 유턴기업의 실태와 개선 방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유턴법 시행 이후 2020년 8월까지 80개 기업이 유턴기업으로 뽑혔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이 중국으로부터 복귀한 중소기업이라는 한계를 보였다. 중국의 정치적 리스크와 상승한 인건비 등으로 국내 복귀를 타진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6월 실시한 실시한 ‘중소기업 리쇼어링(유턴) 관련 의견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200개사 중 16개사(8.0%)만 리쇼어링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지역적으로는 인건비 등 비용 상승이 큰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리쇼어링 의향을 밝혔다.

이들은 ‘현지 생산비용 상승’(50.0%), ‘현지 생산 제품의 낮은 품질’(37.5%), ‘Made in Korea 이미지 활용’(31.3%) 등을 이유로 유턴 의향을 내비쳤으나 나머지 대다수의 기업들은 ‘국내 높은 생산비용’(63.2%), ‘현지 내수시장 접근성’(25.0%), ‘국내 각종 규제’(9.9%) 등을 리쇼어링을 막는 요인으로 꼽았다. 가장 바라는 리쇼어링 정책으로는 ‘조세감면 확대’(32.5%), ‘보조금 지원 확대’(26.0%), ‘노동 규제 완화’(15.5%), ‘환경 규제 완화’(1.5%) 순으로 조사됐다.

지지부진한 기업들의 유턴 흐름에 정부는 정책을 보강해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으나 소리만 요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각종 규제로 유턴을 마음먹기 힘든 환경인데다가 이미 유턴한 기업들도 고용, 생산, 부가가치 창출 등에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홍익표 의원실)
(자료제공=홍익표 의원실)

기획재정부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국내복귀 기업의 2014~2018년 조세감면 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간 이익을 내 세금(법인세, 소득세)을 감면받은 기업은 총 15개에 불과했다. 1년 단위로는 감면지원을 받은 기업이 2~5개에 불과해 훨씬 적은 기업이 국내 복귀 후 생산을 통해 이익을 낸 것으로 분석됐다. 감면액도 5년간 총 15억으로 연도별로는 2억~6억 수준에 그쳤다.

생산과 함께 국내복귀기업 지원의 핵심 정책목표인 고용은 더욱 성과가 미미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이후 현재까지 6년간 국내복귀 기업 중 14개사에 393.7명이 신규 고용돼 31억8400만원의 고용창출보조금이 지급됐다. 국내복귀 기업들은 유턴기업 선정을 위해 고용계획을 제출하게 돼있는데 실제 고용창출 성과는 기업들이 제출한 고용계획인 2807명의 14%에 불과했다.

홍 의원은 “빈수레만 요란한 정책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리쇼어링 정책의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 내실을 갖추고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는 니어쇼어링(노동집약 산업은 해외에 두고 국내외 기업을 망라한 고부가가치 기업 유치)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정부는 유턴정책 지원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소부장 2.0전략’에서 발표한 유턴대책의 후속 조치로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지난 10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에 따라 R&D 센터 등 연구시설도 유턴을 할 수 있다. 특히 자금 지원 대상 지역을 기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를 통해 산업발전법상 첨단업종으로 명시된 업종에 한정해 수도권에도 150억원 한도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다만 수도권에 대한 유턴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 기본적으로 유턴법은 비수도권 투자를 장려하고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만큼 수도권 완화에 따른 유턴기업의 수도권 집중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입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주52시간제 등 노동 규제 완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난 6월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 노동비용 경쟁력이 주요 진출국 대비 약화돼 리쇼어링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했다.

한경연이 국내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주요 10개국(중국, 미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오스트리아, 일본, 폴란드, 싱가포르, 독일)과의 ‘제조업 단위노동비용 국제비교’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2010~2018년 중 한국의 단위노동비용(미달러화 기준)은 연평균 2.5% 증가한 반면 10대 진출국들의 단위노동비용은 연평균 0.8% 감소했다.

각 국가별로 2010년 단위노동비용을 100으로 할 때 2018년 한국의 단위노동비용은 116으로 상승한데 비해 ‘리쇼어링 경쟁국’들은 94로 하락했다. 단위노동비용주은 상품 1단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비용으로 단위노동비용이 증가했다는 것은 1인당 노동비용이 노동생산성에 비해 빠르게 올라 제조원가 경쟁력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해외시장 확보라는 전략적 목적을 제외할 경우 국내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고임금”이라며 “유턴 확대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동결 등 노동비용 인상을 자제하고 노동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제조원가의 비교우위를 확보해야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양승조 충남도지사(왼쪽에서 다섯번째)와 김홍장 당진시장(세번째), 이세철 KG동부제철 대표(네번째)가 지난 2일 KG동부제철 본사에서 투자유치 협약을 맺고 있다. (사진제공=당진시청)
양승조 충남도지사(왼쪽에서 다섯 번째)와 김홍장 당진시장(세 번째), 이세철 KG동부제철 대표(네 번째)가 지난 2일 KG동부제철 본사에서 투자유치 협약을 맺고 있다. (사진제공=당진시청)

한편, 최근 철강업계가 유턴을 이끌면서 지역경제에 희망적인 부분도 나타나고 있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KG동부제철은 지난 2일 중국 장쑤성 공장을 청산하고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기존 공장이 있는 충남 당진 아산국가산업단지 내 3만5974㎡ 부지에 3년간 1550억원을 투자해 냉간압연과 도금 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이는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 복귀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의 유턴 투자이다. KG동부제철은 2021년부터 50명의 신규채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5월에는 경북 구미에 위치한 아주스틸이 철강업계 1호로 국내 유턴 기업에 선정됐다. 필리핀 공장을 청산하고 경북 김천에 전자·건자재용 강판을 생산할 계획이다. 산업은행도 아주스틸에 스마트공장 신축 자금 300억원을 지원했다. 이외에도 중견철강업체 2~3개사가 국내 유턴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철강기업의 유턴이 국내 지역 경제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희망이 되고 있다.

철강협회는 “산업부가 대상지역 및 지원사항 확대, 지원한도 상향 등을 내용으로 유턴 보조금 고시안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어 업계의 유턴이 더욱 활기를 띨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시안에 따르면 국내로 유턴하는 회사가 지방에 공장을 건설하면 최고 300억원의 유턴 보조금이 지원된다. 입지·설비, 이전비용 지원비율도 21~44%로 상향된다. 고용보조금, 법인세 감면, 관세감면, 스마트 공장 패키지 지원, 구조조정 컨설팅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재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성공적인 대처로 인해 안정적인 생산기지로 인정받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유턴하는데 고려할 만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재정 투입을 통한 공공일자리로 급한 불을 껐다면 이제는 ‘코로나 기회’를 살려 유턴기업 유치를 통한 민간일자리 창출에 불을 지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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