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0.11.21 15:05

유통사, 큰 틀 짜고 허위·과장광고 책임 '바지사장'에 떠넘겨…표준계약서 제정·운영 절실

뷰티 인플루언서 이사배(좌측)와 포니의 인스타그램. (사진=이사배, 포니 인스타그램 캡처)
뷰티 인플루언서 이사배(좌측)와 포니의 인스타그램. (사진=이사배, 포니 인스타그램 캡처)

[뉴스웍스=김남희 기자·이숙영 기자] 최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 물건을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코트라는 2017년 약 2조원에 불과했던 글로벌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 규모가 올해 최대 12조로 다섯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0월 열린 '2020 대한민국 인플루언서의 현주소와 과제' 포럼에서 김현경 대한민국 인플루언서협회 상임부회장은 "국내에서 10만명의 인플루언서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신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문제들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대·허위 광고다. 일부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상품 성능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마치 자신이 상품을 매일 사용하는 것처럼 홍보해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불거지면서 인플루언서의 홍보 및 판매 행위 규제에 대한 대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다만 이 문제가 과연 오직 판매 윤리를 어긴 인플루언서 개인의 잘못만으로 불거진 것인지는 짚어볼 부분이 있다. 인플루언서 시장 참여자는 인플루언서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 유혹하는 유통사...'물건만 많이 팔면'

업계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시장의 유통 구조는 일반 오프라인 유통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경우 제조업체-유통사-인플루언서 3단계를 거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먼저 ㄱ유통사가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가 1000원에 만든 립스틱을 3000원에 산다. 그리고 립스틱을 소비자에게 소개할 인플루언서 ㄴ을 찾아 SNS에서 DM(Direct Message)을 보낸다. '이 립스틱을 1개 팔 때마다 4000원 줄게요'. 이렇게 인플루언서와 계약을 맺은 ㄱ유통사는 그들을 통해 립스틱을 소비자에게 10000원에 판매한다. 

립스틱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뒤에 그들에게 '립스틱 판매'를 시킨 유통사라는 실질적인 판매 주체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체 규모가 영세해 직접 유통할 여력이 안되거나 인플루언서가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 채널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 않을 때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일이 많다. MCN은 인터넷 콘텐츠 창작자를 관리하는 회사다.

한 화장품 유통사 대표는 이에 대해 "유통사가 인플루언서에게 디엠을 보내고 인센티브로 큰 돈을 주겠다고 꼬셔서 인플루언서가 물건을 비싼 값에 팔도록 한다"며 "해당 제품에 어떤 인플루언서를 매칭할지,물건 몇 개를 어떻게 판매할지 등 판매 방향의 큰 틀을 짜는 건 사실 유통사"라고 설명했다. 

유통사에게 상품 판매 제안을 받은 인플루언서는 물건을 많이 팔아 높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판매 윤리나 광고에 대한 법적 규제를 어기고 SNS나 유튜브에 상품에 대한 과대 광고나 허위 광고를 하기도 한다. 

정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의 대상이 되는 '공급자'는 오직 인플루언서에 한정된다. 분노한 소비자들의 비난의 화살은 시장의 '얼굴'인 인플루언서에게만 향한다.

반면 수익을 미끼로 인플루언서에 과대 광고, 허위 광고 등을 하게끔 종용한 유통사는 그 뒤에 숨는다. 상품만 팔면 그만이라며 제품을 비싸게 팔아줄 다른 인플루언서를 찾아 그에게 다시금 디엠을 보내는 것이다. 

인플루언서가 '바지사장'이라면 유통사는 '전주(錢主)'인 셈이다.

물론 상품 판매만을 목적으로 잘못된 판매 행위를 하지 않도록 인플루언서 자체를 교육하는 것도 대안이 될수 있다. 

신희준 대한민국 인플루언서협회 사무총장은 "현재는 인플루언서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시스템이 미비하다"며 "인플루언서가 시장에 진입해 올바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법, 광고표기법 등을 주기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인플루언서 교육에 관한 제도가 갖춰지더라도 이들에게 '물건만 많이 팔면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또 다른 공급자가 있는 이상 인플루언서 시장의 문제를 완전히 근절시키긴 어렵다.

전문가 "관리·감독 및 책임소재, 판매 세부 규정 명시한 표준계약서 마련되야"

유통사와 인플루언서 간 상품 판매·홍보 및 고용에 대한 세부 사항을 규정한 표준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에 대해 한 유통사 대표는 "정해진 계약서가 없으니 주로 디엠을 통해 구두로 인플루언서와 계약한다"며 "특히 회사 소속이 아닌 인플루언서라면 계약  기간에만 잠깐 유통사에 프리랜서로 들어가는 등 고용관계도 희미하고, 판매 방법도 정해진 게 없으니 단지 '물건만 많이 팔면 된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런 일은 특히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얻은 판매 수익은 결코 작지 않다.

한 인플루언서 시장 관계자는 "팔로어가 100만명 정도인 대형 인플루언서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팬이 있는 인플루언서라면 무조건 상품을 팔 수 있다"며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를 위한 대책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때 표준계약서가 있으면 유통사에 관리·감독 책임을 지우고, 판매 및 홍보 방향을 명문화해 인플루언서의 판매 행위를 규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플루언서도 계약서 상으로 정해진 선 안에서 합법적인 판매 행위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문제 발생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면서 이를 단순 ‘윤리적’ 문제가 아닌 명확한 법적 책임 문제로 봐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릴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언서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상품 판매 및 홍보에 개한 세부사항을 지정하는 표준 계약서가 제정되는 등 제도가 갖춰져야 유통사와 인플루언서 사이에 발생 가능한 여러 문제를 막을 수 있고, 문제를 방지하는 것이 결국 소비자를 보호로 연결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플루언서 시장의 핵심 존재는 단연 인플루언서이지만 다양한 공급자·중개인들도 존재한다. 

인플루언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인플루언서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아닌 유통 과정 전체를 대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제도와 규칙을 마련해야만 인플루언서 시장도 키우고 소비자 피해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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