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0.12.08 07:00

비대면서비스 활성화 통해 '나홀로소송족' 수요, 변호사와 연계…데이터코디네이터 등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 규모 및 유니콘 현황. (그래프=스타트업 코리아 보고서)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IT 강국 한국에서 시장 잠재력이 매우 크지만 여러 가지 제약과 조건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리걸테크이다.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법령과 규제의 한계, 제한적인 데이터 공개 등으로 더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리걸테크란 법률을 뜻하는 '리걸(Legal)'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합성어이다. 법률과 4차산업혁명 기술인 ICT(정보통신기술)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이 융합된 혁신적인 법률 서비스를 뜻한다. 온라인 법률상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을 이용한 법률서식 작성, 온라인 법률마켓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

리걸테크의 핵심은 AI다. 문서 작업이 많은 법률 분야에서 AI가 각종 정보를 찾아내고 일반인에겐 어려운 법률 문서 작성을 도와줄 수 있다. 시간이 단축되고 비용도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이미 해외 선진국 시장에선 이런 리걸테크의 기술에 주목하고 관련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지난 2016년부터 1500개가 넘는 리걸테크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회사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수는 25개로 집계됐다. 이 중 IT강국 한국에는 단 하나의 기업도 없다. 

투자 규모 역시 다르다. 시장조사기관 CB Insights에 따르면 미국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6억6000만 달러, 영국은 1억1500만 달러에 달했지만 한국은 같은 기간 총 12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의 투자규모는 한국의 138배에 달한다. 경제와 인구 규모를 감안해도 너무 큰 격차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기준 법률서비스 거래시장 규모 비교 그래픽. (그래픽=로앤컴퍼니 제공)

 

법원, 개인정보 보호 이유로 판결문 공개 반대…변호사법의 동업금지 규정도 걸림돌

현재 국내에서 온라인 법률상담서비스 '로톡'과 '헬프미'과 운영 중이다. 네이버도 전문지식 상담 플랫폼 '지식인 엑스퍼트'를 통해 변호사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 원인으로 데이터의 부족과 법령·규제의 문제로 꼽고 있다.

우선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원유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판례분석·법률문서 자동 작성 등 리걸테크 서비스를 위해선 판결문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대부분의 판결문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판례 데이터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리걸테크 스타트업 기업 인텔리콘연구소의 임영익 대표는 지난 11월 5일 '2020 스타트업 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대법원 판결문도 공개된 건 2~3%에 불과하고, 골드데이터라 불리는 하급심 데이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며 "법원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우려하는데, 개인정보를 가리는 인공지능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 리걸테크 시장은 변호사 검색(로톡), 법령·판례 검색(인텔리콘 연구소)로 제한돼 있다.

대체로 일반인들은 소송을 갈지 말지 등에 대해서 1심과 2심 판례를 많이 참고하게 된다. 그런데 상급심 위주의 제한된 판례만 공개되다보니 활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리걸테크를 선도하는 미국은 연방법원에서 선고된 모든 판결문을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주(州)법원의 경우도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공개한다. 미확정 판결문도 24시간 내에 인터넷을 통해 게재되고 뉴욕과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주는 인터넷으로 임의어 검색도 가능하다. 

대륙법계를 택한 국가들도 재판 공개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공개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대법원 판결은 대부분 공개하는 추세다. 

대륙법계로 분류되는 우리 법원은 세계적인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내부적으로 '코트넷'이라는 인트라넷을 통해 법관이 전체 판결을 공유하지만, 변호사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는 그 중 일부 판결에 한정해 공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판결 내용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 등을 이유로 삭제해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판결문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법원이 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내놓은 법원행정처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판례 공개에 대한 반대한 판사는 무려 78%에 달했다.

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데이터 공개를 반대하고 있다. 판례에는 소송 당사자들에 대한 개인 정보가 많이 들어 있는데 이를 비실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들고 바꾼다고 하더라도 완전하게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물론 이런 법원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반론도 많다. AI를 통해 개인정보를 걸러내는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만큼 이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수년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AI를 통한 비식별처리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변호사법의 동업금지 규정도 걸림돌이 된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과 변호사의 동업을 금지하고 있어 민간기업에서 변호사와 공동으로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동업 결과로 발생한 보수나 이익의 분배도 금지된다.

전국 변호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2016년 리걸테크 사이트 4곳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변호사의 상담 업무를 통해 제삼자가 돈을 버는 사업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수사 결과 검찰은 모두 무혐의(증거불충분)로 처분했다.

이에 대해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발 사건은 플랫폼을 통해 변호사를 소개하고 수수료 받는 행위에 대한 건으로 무혐의가 났다"며 "법률 AI는 별개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온라인 법률 자문 서비스 1위 기업인 '리걸줌(LegalZoom)'도 변호사법 위반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변호사 단체와 로펌은 리걸줌이 IT기술을 활용해 고객에게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소송을 냈으나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면서 "결과적으론 전관이나 기득권에 대항해 젊은 변호사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 대표는 "우리나라 특성상 쉽게 규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격의료의 경우도 10년 이상 논의 됐지만 큰 변화는 없다. 변호사법도 마찬 가지로 본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리걸테크 산업은 매우 초기 상태이기 때문에 관련 수치 데이터나 통계자료 마저 아직 없다"면서 "이 부분은 업계가 발전함에 따라 설문조사나 통계 분석 등을 통해 하나씩 자료를 모아 가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임 대표는 해결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전통적인 전문가 영역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면서 "이런 점에서 로스쿨 등 교육기관에서 리걸테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 하다. 미국의 경우 스텐포드 대학교 로스쿨이 코드엑스(code-X)라는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융합 인재를 양성하였고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었다"고 말했다.

한국법률서비스 시장 잠재력.(그래픽=로앤컴퍼니 제공)

리걸테크, 변호사들에게 숨은 시장 확장시켜…잠재 고객들 사건 수임도 기대

AI를 필두로 한 IT 기술이 변호사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반면 제대로 정착된다면 리걸테크가 변호사들에게 숨어있는 시장을 확장시켜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임 대표는 "한국에서 법률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존 변호사 시장을 교란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법률서비스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해서 더욱 그렇다. 공공기관(대법원, 법제처 등등)에서 기술을 주도 하기 때문에 민간영역이 활성화 되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현재 AI 기술은 복잡한 사건을 파악하고 판결문에 제시된 논리를 완벽히 이해하는데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기 보다는 보조 업무를 처리하면서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것은 가능하다.

임 대표는 "변호사 업무는 워낙 종합적이고 고도의 추론이 필요한 영역이 많기 때문에 현재 변호사를 일대일로 대체하는 AI는 없다"며 "현재 AI는 업무 보조 툴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 되고 자동화 기술이 정착되면 온라인 상에서 간단한 법률서비스가 가능해진다"며 "예전에는 이런 서비스는 가격이 저렴해 변호사들이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지만 비대면 자동화 기술은 이런 숨은 시장을 열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상담 전에 AI로 법률 문서를 자동 작성했다면, 변호사는 초안이 있는 상태에서 검토와 수정만 하면 된다. 문서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에따라 같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전반적인 법률 서비스의 질을 더욱 향상시키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다 더 많은 의뢰인의 문서를 검토할 수 있다. 잠재 고객과의 접점 확대도 기대된다.

그 동안 서로 얼굴을 맞대면서 이뤄졌던 법률 서비스 상당부분이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도 가능해진다면 변호사 입장에서도 의뢰 고객을 특정 지역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이다.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소속된 변호사 수는 3만명 정도이다. 서울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 수는 2만명 이상으로 변호사 3분의 2가 서울에 모여 있는 상황이다.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 된다면 서울에 있는 변호사들도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의 잠재 고객들의 사건을 수임하는게 보다 쉬워질 수 있다.

IT 기반 법률 서비스에서는 '나홀로소송족' 같이 그동안 법률 서비스 밖에 소외됐던 수요도 끌어들일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변호사 선임 없이 재판에 임하는 '나홀로 소송'은 전체 민사소송에서 70%에 이르고, 형사공판 1심에서도 50%가 넘는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홀로 소송은 변호사 없이 소송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불리하다"면서 "리걸테크가 활성화되면 변호사는 더욱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를 할 수 있다. 의뢰인도 법률서비스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어 잠재적 수요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같은 대륙법계로 분류되며 스타트업 성장이 상대적으로 느린 일본 리걸테크 시장은 한국의 리걸테크 시장의 미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은 로스쿨 제도를 한국보다 5년 먼저 도입했고 이로인해 변호사수가 늘어났다. 특히 로톡과 유사한 변호사 소개 플랫폼인 벤고시닷컴은 현재 일본 변호사의 약 45%를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고, 시가 총액은 2조4000억원 정도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벤고시닷컴은 로톡보다 6년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다. 벤고시닷컴이 7년 차에 일본 전체 변호사의 약 9%를 회원으로 확보했다. 올해가 7년 차인 로톡은 12월 7일 기준 한국 전체 변호사의 13.03%인 3842명의 회원을 보유 중이다. 벤고시닷컴의 사례를 통해 로톡의 성장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리걸테크 시장은 202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9.8%로 성장해 2023년에는 353억엔(한화로 3685억)으로 커질 전망이다. 2018년 9월 창립한 일본리걸테크협회의 회원사는 20곳에서 현재 200곳으로 10배 증가했다.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인 로톡의 월 상담 수가 2018년 월 3000건 수준에서 지난해 8000건 이상으로 1년 새 세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해 4월 기준 1만 5000건을 넘었다. 2014년 출시 이후 누적 상담 수는 30만 건 이상이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는 "리걸테크 기술들이 발전함에 따라 의뢰인에게 편의성을 제공하고 변호사에는 효율성을 높여줘서 더 많은 의뢰인과 변호사가 만나서 결과적으로 시장 파이 자체가 커지게 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흐름과 리걸테크를 기반으로 하는 법률 서비스의 지능화·고도화가 안착된다면 현재 연 7.5조원 규모로 알려진 법률 서비스 시장 규모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리걸테크를 비롯한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데이터 산업이 필연적으로 함께 성장하고, 이와 관련한 파생되는 시장에서의 일자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 가공 플랫폼 전문기업인 에이모 남기철 이사는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AI 기술의 발달로 리걸테크 관련 데이터 주석(Data Annotation) 관련 시장이 국내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AI 기술 발전과 연계된 데이터코디네이터, 데이터전후처리가공 직무 등등 새로운 직업군의 일자리도 창출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 주석 관리자(Data Annotator)란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입력·가공 등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남 이사는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정부의 '디지털 뉴딜' 일자리 정책으로 많은 구직자들의 관심을 받는 직무로 데이터라벨링 작업 같은 일자리는 경력단절여성(경단녀), 50세 시니어, 장애인단체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조금 더 고차원적인 데이터가공 지식 분야에는 더 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데이터라벨링 작업자들의 참여 기회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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