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0.12.04 07:00

글로벌 CVC 투자금 5년 만에 530억달러로 커져…경쟁국, 설립방식·펀드 조성에 규제 없어

(자료출처=국회입법조사처)
(자료출처=국회입법조사처)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글로벌 벤처시장에서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에 의한 벤처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CVC투자금 총액은 2013년 106억달러에서 2018년 53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CVC 투자 분야에서 선두에 서있는 미국의 대표 CVC인 구글벤처스가 2009년부터 벤처기업 29개를 IPO(기업공개)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10년 넘게 뒤쳐졌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 마련도 미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벤처기업은 그 속성상 성공확률이 매우 낮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커 자체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운 사업 초기(창업 3년 이내)나 중기(창업 후 3년에서 7년)에는 외부 투자를 받기 어렵다. 이에 성장 초기와 확장단계에서 모험자본의 투자가 절실하다.

벤처캐피탈의 투자구조는 투자대상 기업이 성장하면 취득한 주식의 상장을 통해 거둔 자본이익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벤처캐피탈은 자본을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컨설팅이나 각종 경영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전략적 도움을 통해 피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이처럼 벤처캐피탈을 통해 벤처기업은 투자와 더불어 경영 노하우 등을 대기업에게 지원받을 수 있다. 대기업도 벤처기업을 통해 혁신의 기회를 얻고 신성장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에 재계에서도 창업투자회사격인 벤처캐피탈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해 운영할 수 있도록 CVC 규제 완화를 지속 요구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산분리 원칙을 이유로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규제로 인해 국내 지주사 체제 기업들은 해외에 CVC를 설립했다. LG는 지난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유플러스, LG CNS가 4억2500만달러를 출자했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은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야 정부는 재계의 지속된 요구에 화답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30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겸 경제장관회의에서 “일반지주회사의 CVC 소유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로 넉 달 만인 지난 25일 국회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허용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윤관석 정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대표발의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주요 내용이다. (자료출처=국회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윤관석 정무위원장이 지난달 23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자료출처=국회의안정보시스템 캡처)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어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앞서 정부는 일반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되 금산분리 원칙 완화에 따른 부작용은 엄격히 차단할 수 있도록 사전적·사후적 통제장치를 담아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법안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정무위원장)이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일반지주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는 완전자회사 형태로 CVC를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CVC의 부채비율은 200%로 제한하고 펀드 조성 시 계열사 이외 외부자금 조달을 40% 이하로 제한했다. 또 펀드 조성 시 총수일가나 금융계열사로 부터의 출자를 금지한다. CVC도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나 계열사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게 했다. 정부가 기존에 제시한 방안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이날 소위에서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CVC 설립 법안을 주로 논의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견이 있어 추후에 다시 논의키로 했다”며 “부작용이 있을지 꼼꼼히 살펴보는 과정이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CVC 법안에 대한 주요 반대 논리는 2가지”라며 “CVC 허용이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과 재벌이 제도를 남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금산분리 원칙이 생긴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시장 상황은 너무나도 달라 그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며 “다수의 CVC 법안이 이미 재벌의 제도남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한편, 해외에서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설립방식과 펀드 조성에 규제가 없어 각 기업은 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CVC와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구글벤처스는 45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벤처기업 25개를 주식시장에 공개했고 약 125개사의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이처럼 대표 혁신기업인 구글도 벤처기업을 인수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베르텔스만 아시아 인베스트먼트’는 독일 베르텔스만 그룹이 아시아 지역의 벤처투자를 위해 설립한 CVC이다. 베르텔스만 유럽주식합자회사(지주회사) 산하 벤처투자 부문을 담당하는 베르텔스만 인베스트먼트(자회사)가 이 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CVC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인 셈이다. 2008년 CVC 설립 당시 베르텔스만 그룹에서 펀드에 전액을 투자했다.

중국의 ‘레전드캐피탈(CVC)’은 레전드홀딩스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이다. 이 회사가 2011년도에 결성한 ‘RMB Fund Ⅱ(펀드)’에는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와 함께 전국사회보장기금이사회(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 시안 샨구파워(에너지 회사) 등 외부자금이 출자하고 있다. 2019년 말 기준 레전드캐피탈은 총 23개, 76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레전드홀딩스와 자회사들이 펀드자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6%(20억달러) 수준이다.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지주회사)의 ‘미쓰비시UFJ캐피탈(CVC)’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일 뿐 아니라 최소 12개사가 이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회사가 밝힌 주요 주주 중 미쓰비시그룹 계열사가 11곳(미쓰비시UFJ은행 등)이며 나머지 1곳은 그룹 외부의 출자자(SMBC닛코증권)이다. 현재 미쓰비시UFJ캐피탈이 조성한 12개의 펀드 중 4개 펀드에 외부자금이 투입돼 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CVC와 펀드에 정형화된 구조는 없고 기업이 각자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며 “CVC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와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외국과 같이 CVC 설립과 운용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사례에서 비춰보듯이 더 이상 금산분리는 금과옥조의 가치가 아니다. 코로나로 경제 트렌드가 비대면으로 가파르게 전환하고 있다. 혁신이 이뤄져야 지속 성장이 가능해진다.

이미 코로나 영향으로 신규 채용이 줄면서 올해 2분기 2030 세대의 임금근로 일자리는 16만4000개가 줄었다. 코로나로 사라져 가는 일자리는 새로운 일자리로 메꿔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반지주사의 CVC가 허용될 길이 열렸다.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단 속도전을 펼쳐 추락하는 일자리에 낙하산을 매달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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