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12.01 07:00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 금지·사실상 직장 점거 묵인도 영향…김필수 교수 "잔뿌리인 협력사 위험하면 업계 전체 휘청"

한국지엠협신회 회원들이 지난 11월 19일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 앞에 모여 부분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협신회)
한국지엠협신회 회원들이 지난 11월 19일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 앞에 모여 부분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제공=한국지엠협신회)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살고 싶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비가 내리던 지난 11월 19일 오전 6시 30분. 한국지엠 협력사 모임 '한국지엠협신회' 회원 100여명은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 앞에 모여 '살려달라'고 외쳤다. 임단협 협상 과정에서 한국지엠 노조가 수차례 부분파업을 단행하자, 협력사들이 '제발 파업을 멈춰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날씨가 궂었지만 하루라도 더 미룰 여유가 없었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받쳐 든 이들은 '협력업체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출근길에 나선 한국지엠 근로자들에게 호소문을 전달했다. 호소문에는 '협력업체와 그 가족이 애타게 지켜보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에게 노조의 파업은 매년 겪어야 할 시련이다. 해마다 1곳 이상의 완성차 노조가 임단협 과정에서 파업을 결정한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조는 파업한 만큼 임금을 덜 받으면 그만이고,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는 이에 따른 피해를 견딜 여력이 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협력사들은 다르다. 파업에 따른 손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유동성이 취약한 일부 업체는 폐업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완성차 업체가 '기침'하면 협력사는 '몸살'을 앓는 구조인 셈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제조직 '공동행동' 소속 조합원들이 19일 울산공장 본관을 점거하고 교섭위원들의 교섭장 입장을 차단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자동차 노조가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을 점거하고 쟁의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웍스 DB)

◆'기울어진' 노조법,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대체근로 불가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노조의 파업은 연례행사에 가깝다. 매년 임단협이 시작되면 으레 파업 카드를 꺼내든다.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완성차 업체의 노사분규가 있었던 해는 기아자동차 18회, 현대자동차 16회, 한국지엠 10회, 쌍용자동차 9회, 르노삼성자동차 4회다.

코로나19가 덮친 올해도 완성차 노조의 관행적 파업은 이어졌다. 한국지엠은 지난 10월 30일부터 수차례 부분파업을 진행한 끝에 최근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 11월 25일 부분파업에 돌입하며 9년 연속 파업을 강행했다. 르노삼성차 노조도 합법적으로 파업 가능한 쟁의권을 확보해 둔 상태로, 최근 강경파로 분류되는 박종규 노조 위원장이 연임하며 파업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쌍용차 노조만이 코로나19 등 대외 리스크를 고려해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이러한 '습관성 파업'의 배경에는 쟁의활동에 지나치게 유리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이를 무기로 삼는 강성 노조가 있다. 

경영계는 국내 노조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주장한다. 노동자의 단결권은 보장하지만, 그 대척점인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대표적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여부가 있다. 우리나라는 노조 파업 시 회사가 다른 근로자를 고용해 생산을 이어가는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은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가 명확히 금지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노조법은 쟁의행위가 금지되는 시설을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된 시설'로 한정하고 있지만,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 실질적으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직장 점거를 묵인한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 11월 12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연 세미나에서 "쟁의 시 대체근로와 도급을 금지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노사 간 무기 대등의 원칙에 따라 대체근로 허용, 직장 점거 금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일 기아자동차 본사 앞에서 최종태 전국금속노동자조합 기아차지부 지부장이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남희 기자)
최종태 전국금속노동자조합 기아차지부 지부장이 지난 11월 20일 기아차 본사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하며 향후 파업 계획을 밝혔다. (사진=김남희 기자)

◆"협력사가 위험하면 업계 전체가 휘청인다"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노조들의 파업 여파는 '을'인 협력사에 돌아간다. 완성차 업체가 생산을 멈추면 협력사도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벌어들이는 액수도 완성차 업체의 생산량과 비례해 달라진다. 하지만 연례화된 갑의 파업 때 을이 할 수 있는 건 '살려달라'는 호소뿐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예년보다 타격이 더 크다. 문승 한국지엠협신회 회장은 "노조의 잇따른 부분파업으로 인해 지난 11월 18일 기준 1만 3400대의 누적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 이러한 손실은 코로나19와 겹쳐 협력업체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며 "지금도 협력사들은 전기세는 물론, 직원들 급여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3차 협력사로 내려가면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더 이상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유동성이 취약한 협력사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는 지난해 말 기준 824개사다. 이 중 대기업 등을 제외한 중견·중소 협력사는 약 790개사로 추정된다. 2차 협력사는 약 3000개, 3차 협력사는 약 5000개로 대략 9000여개의 중견·중소 협력사들이 완성차 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추산하는 9000여개 중견·중소 협력사의 고용인원은 약 18만명에 달한다. 완성차 업체 노조의 파업 때마다 최대 18만명의 협력사 임직원들이 일자리를 위협받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관행 자체가 잘못됐다. 파업이 몸에 뱄다. 실리를 취득하기 위해 파업을 해야 하는데, 일단 하고 본다. 지도부가 노조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파업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1차 협력사보다 2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보다 3차 협력사가 파업에 의한 후유증이 크다"며 "완성차 업계 전체를 나무로 본다면 협력사들은 잔뿌리에 비유할 수 있다. 나무도 잔뿌리가 많이 살아 있어야 건강하다. 잔뿌리가 썩으면 나무도 죽는다. 협력사가 위험하면 업계 전체가 휘청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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