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정훈 기자
  • 입력 2020.11.28 07:00

제도권 안착시켰다면 매년 20조 세금 들어왔을 판…규제 푼다면 17만개 일자리 창출 가능

(사진=픽사베이 캡처)
(사진=픽사베이 캡처)

[뉴스웍스=이정훈 기자]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6년전 일자리 25만개를 창출할 동안 한국 암호화폐 산업 일자리는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뒷걸음질쳤다.

미국 종합 경제지 포춘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2014년에 미국에서만 2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올해(2014년) 3분기 암호화폐 관련 일자리가 82% 늘어났다"며 "그중에서도 비트코인 관련 일자리가 국제 취업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특히 암호화폐 제작이 가능한 인재에 대한 수요가 59%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에 따른 각종 규제로 인해 일자리 창출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12월 28일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거품이라며 '비정상적인 투기 상황'을 잡기 위해 고강도 규제를 내놓은 바 있다. 관련 규제는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 검토 ▲거래 실명제 실시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에 대한 구속수사와 법정 최고형 구형 ▲가상계좌 신규발급 전면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다음해 1월부터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규제 완화하면 2022년까지 일자리 17만개 창출

하지만 암호화폐 규제를 풀 경우 17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팀은 암호화폐 분야에서만 2022년까지 최대 17만5000개의 신규 고용효과가 발생한다고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 산업 성장률이 79.6%에 달할 것이라고 본 마켓 앤 마켓의 전망을 토대로 집계할 경우 정부 규제가 풀린다면 신규 일자리는 17만5837개 만들어진다. 이 교수팀은 "암호화폐 산업 성장률을 낙관하든 비관하든 정부가 규제가 아닌 지원 정책을 펼 경우 신규 일자리 규모는 1.7배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당시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며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든 바 있다. 일자리위원회가 발표한 신산업 분야 일자리 목표가 9만2000개였던 당시를 비교했을 때 암호화폐 산업은 2배 가까운 고용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위스가 입증했다. 스위스는 지난 2016년부터 추크주를 거점으로 '크립토밸리'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추크주에서는 암호화폐 자금모집이 합법이다. 정부가 직접 일할 수 있는 공간까지 빌려준다. 또한 월 20만원만 내면 사업자등록증도 쉽게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인구 3만명에 불과한 추크주는 5년 만에 3만2000여개 기업이 들어서고 일자리 10만9000개가 창출됐다.

◆독보적 1위 올라선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정부의 규제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탈한국' 현상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암호화폐 업계를 인정하는 대신 ▲암호화폐 자금모집(ICO) 전면금지 ▲외국인 투자 금지 ▲암호화폐 거래소 신규 가입자의 은행 계좌 연동 금지 ▲암호화폐 마진거래의 도박장 개설죄 적용 등 강력한 암호화폐 억제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한때 1위를 유지했던 국내 암호화폐 산업은 빠르게 뒤로 밀려났고 자금과 인재들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갔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지난 2018년 9월 싱가포르에 거래소를 신설했다. 입출금 문제 등으로 인해 국내 거래소 운영 환경이 어려운 반면 친화적 환경을 구축한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안정적 거래소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업비트는 그 해 1월만 해도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를 제치고 거래액 규모로 전세계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당시 업비트의 24시간 거래액은 8조5000억원으로 2위였던 바이낸스보다 2조원 이상 많았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로 인해 한때 10위권까지 밀려났다. 지난 24일 업비트는 세계 최대 플랫폼 '코인마켓캡'에서 24시간 거래량이 15억3635만달러(약 1조7000억원)를 기록해 글로벌 거래소 중 5위까지 오른 상태다.

그동안 1위로 치고 올라온 곳은 중국 계열 거래소 바이낸스였다. 연간 수수료 매출액은 10억달러(1조1237억원)였으며 당시 1분기 매출액만 3억달러(3369억원)에 달했다. 그해 200만명 수준이던 고객 수도 1000만명에 육박했다.

◆암호화폐 제도권 안착 시 세금 20조원 확보 가능…스스로 걷어찬 '황금알'

암호화폐 거래소는 정부의 부정적 인식과 달리 '막대한 세원 확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한다. 만약 정부가 2017년부터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에 안착시켰다면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세금도 확보할 수 있었다.

단순 비교를 위해 증권시장과 동일하게 0.25%의 거래세를 걷는 것으로 가정할 경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바이낸스의 일간 거래액 22조320억원에 거래세 0.25%를 곱하면 약 550억원이 된다. 업비트가 세계 1위라는 지위를 유지했었다면 하루 거래세만 550억원의 세금이 확보된다. 이를 1년으로 계산할 경우 약 20조원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24시간 열려있기 때문에 주말과 공휴일 관계없이 매일 거래세를 바친다. 결국 정부가 스스로 황금알을 걷어찬 셈이다.

지난 3월 국회는 뒤늦게서야 암호화폐 사업자(VASP)들의 범위와 의무를 규정한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기획재정부도 지난 7월 '2020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가상자산 소득에 대해 합법적인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제도권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국회는 가상자산 거래에 20%의 양도소득세까지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년간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거래금액이 2161조1063억원"이라며 "미국과 일본 등은 이미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세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양도세율 20%를 부과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의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부정적 기조로 인해 암호화폐 업계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산업 육성이나 진흥책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조세 규정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2017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업계 성장에 맞춰 점진적인 형태의 과세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즉 세금 확보보다 암호화폐 산업 육성이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고임금 지급해도 부정적 인식 강해 인력난 호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채용을 꾸준히 진행했으나 지원율이 낮아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구직자를 모집하기 위해 높은 연봉과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지원율이 현저히 저조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암호화폐 거래소가 취업포탈 사이트에 공개한 연봉은 높은 수준이다. 연봉 정보 서비스 사이트 오픈샐러리에 따르면 국내 메이저 암호화폐 거래소 6개사(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고팍스, 한빗코)의 평균 초임 연봉은 이달 기준 5287만원이다. 이는 일반 대기업 1년차 사무직의 평균 연봉보다 2000만원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9일 500명 이상 대기업 대졸 사무직 1년차 미만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3347만원이라고 발표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설립 초기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높은 연봉과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높은 연봉을 제공해도 구직자를 찾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6개사 중 직원이 245명으로 가장 많은 빗썸은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34명의 구직자를 새로 뽑았다. 그럼에도 인력난을 겪고 있어 매달 상시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빗썸이 이달들어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채용 공고를 낸 건수만 11건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전문 교육 과정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에 따른 각종 규제가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경력자만 지원하고 있어 인력 충원에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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