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0.12.06 07:00

3년간 일자리 예산 55조 쓰고도 실업률 '최악'…추광호 "기업 고용창출 능력 제고 위해 노동시장 규제완화 법안 적극 검토할 때"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연일 정부가 수십조원의 세금을 부어 일자리를 늘려나갔다고 보도되지만 단기 일자리와 비정규직 일자리만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들에게 남은 것은 좌절감과 자조뿐이다.

오는 2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 권모 씨(25)는 "왜 이렇게 공무원, 공공기관 일자리만 늘리는지 모르겠다"며 "뉴스 보면 수십조원 썼다는데 차라리 그냥 중소기업 같은데 지원을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 공무원, 공공기관 보고 신의 직장, 신의 직장 하니까 그것만 늘리면 능사라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지난 여름 대학 졸업 후 현재 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임모 씨(27)는 'K-적폐'라는 이번 뉴스웍스의 시리즈 주제를 듣고 이같이 털어놨다.

그는 "적폐라는 게 쌓여있는 폐해, 폐단 뭐 이런 거지 않나. 우리(청년층)는 쌓인 적도 없지만 적폐가 돼가는 느낌이다"라며 "윗세대는 우리들이 겪는 문제가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하고, 아랫세대는 우리와 달리 인구수도 적고 더 자유로운 세대라 다르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학에 와서라도 정신 차려서 학점 관리하고, 여러 활동도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좋은 직장'이라는 게 아무나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물론 좋은 대학을 못 간 내 탓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걸 마냥 개인의 엄살로만 치부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5년간 일자리에만 100조 넘게 배정…실업률은 21세기 '최고치'

2017년 5월 현 정부 출범 이후 매년 8월마다 공개된 '경제활동 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은 3년 사이 약 90만명이 증가했다. 2017년부터 비정규직 근로자 수를 보면 654만2000명(임금근로자 중 32.9%)→661만4000명(33%)→748만1000명(36.4%)→742만6000명(36.3%)이다. 

2017~2020년 일자리 예산 및 비정규직 근로자 수 추이. 일자리 예산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고 있다. (그래프=윤현성 기자)
2017~2020년 일자리 예산 및 비정규직 근로자 수 추이. 일자리 예산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고 있다. (그래프=윤현성 기자)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정부는 일자리 대책에 수십조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 고용노동부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투입된 일자리 예산이 4년간 8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사용·편성된 일자리 예산은 15조9452억원(2017)→18조181억원(2018)→21조2374억원(2019)→25조4998억원(2020)으로 4년간 80조7005억원에 달한다. 오는 2021년에도 약 30조6000억원의 일자리 예산이 배정됐다. 5년간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사용되는 돈만 111조3000억원 수준이다.

2020년이 끝나가는 현재 80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현 정부가 받아든 성적표는 21세기 이후 대한민국 최악의 실업률이다. 지난 11월 11일 고용부가 공개한 고용동향 분석에 따르면 10월의 실업률은 3.7%로 지난 2000년 10월(3.7%)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까지 3년간 55조 가까운 예산을 쓰고도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청년 4명 중 1명, '실업 체감'…정부 일자리지원 사업기간 6개월 불과

정부는 수십조원의 예산을 썼지만, 20~30대 청년층은 '양질의 일자리'는 고사하고 고용보험 가입자 수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월 실업률은 3.7%였지만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4.4%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시하는 청년일자리 정책은 그저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올해 상반기 정부가 발표한 '고용안정 특별대책'으로 마련한 55만개의 일자리 중 청년층을 중점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공공부문의 데이터·콘텐츠 구축 7만9000명, 민간부문의 청년 디지털 일자리·청년 일경험 지원 11만명 등 약 19만여개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청년 일경험 지원사업 홍보물. (사진=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청년 일경험 지원사업 홍보물. (사진=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정부가 제시한 청년 일자리는 대부분이 단기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의 경우 정부가 IT활용가능 직무에 청년을 채용한 중소·중견기업에 최대 6개월까지 월 최대 180만원의 인건비와 간접노무비 10만원을 지원하게 된다. 기업의 정규직 전환 의무는 없고 정규직 전환 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기존 일자리 사업 지원만 받을 수 있다. 기업이 정부의 직접적인 인건비 지원이 끝나는 6개월 이후에도 굳이 청년층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이유가 없는 셈이다.

청년 일경험 지원은 애초에 청년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목적을 둔 단기 지원 사업이다. 이 역시 청년을 채용한 중소·중견기업에 6개월간 인건비 월 최대 80만원과 인건비 10% 상당의 관리비를 지원하는 데 그친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과 마찬가지로 6개월 이후에는 기업이 채용 청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6개월짜리 단기 일자리 창출을 통해 당장의 취업 통계 수치를 긍정 지표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6개월간의 단기 지원 이후에는 결국 청년들 스스로 취업을 해야 하는 것인데, '경제 불황으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대책 마련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니 수십조원을 쏟아부어도 여전히 청년 취업률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단기 일자리 사업 집행률 '절반 미만'…2021년 청년 일자리 사업도 '도긴개긴'

심지어 이 '겉핥기'식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까지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0월 공개한 '청년 일자리 예산 현황(8월 말 기준)'에 따르면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은 총예산 5611억3600만원 중 2727억1100만원, 청년 일경험 지원 사업은 2352억200만원 중 1133억7300만원만 사용됐다. 각각 48.6%, 48.2%로 배정된 예산의 절반도 채 쓰이지 못했다.

내년도 직접 일자리사업(구직자 임금 대부분을 정부가 직접 지원)에서도 청년 지원은 소외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직접 일자리 사업에는 전체 일자리 예산 30조6000억원 가운데 약 3조1116억원이 배정됐다.

역시 추 의원이 분석한 '2021년 공공일자리 현황'에 따르면 102만7955명 규모의 직접 일자리사업에서 '노인 대상' 사업 규모는 1조7127억1200여만원에 81만8203명(노인맞춤돌봄서비스 3만3203명·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78만5000명)을 지원한다. 올해보다 노인 일자리가 약 7만개 늘어나는 셈이다.

반면 '청년 대상' 직접 일자리사업은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에 2123억7000만원을 들여 2만3511명, 빅데이터활용 청년 인턴십 운영에 163억원·1020명, 청년사회서비스사업단 운영에 14억6000만원·170명으로 총 2301억3000만원 규모에 2만4701명의 청년만 직접 지원 대상에 들어간다. 물론 청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기타 사업에도 청년층이 지원할 수 있지만 '청년 대상'으로 규정된 것이 전체 사업 인원의 2.4% 수준에 그치는 것은 그 비중이 너무 작다.

2021년 직접일자리사업 목록(정부안). 붉은 사각형이 노인 대상 지원 사업, 푸른 사각형이 청년 대상 지원 사업이다.(단위:백만원, 명) (표제공=추경호 의원실)
2021년 직접일자리사업 목록(정부안). 붉은 사각형이 노인 대상 지원 사업, 푸른 사각형이 청년 대상 지원 사업이다.(단위:백만원, 명) (표제공=추경호 의원실)

직접 일자리 사업 외에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진행되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5만개(4676억원), 청년 공공데이터 일자리 8660개(1116억원) 등을 모두 합하면 내년도 청년 지원 일자리 사업은 올해와 비슷한 8만2000개 수준이다. 8093억3000만원을 들이지만 모두 단기형 지원이다. 중앙정부 주도형 일자리는 대부분이 6개월 이하이고,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은 지자체에 따라 1~2년 이상 지속되는 곳도 있지만 역시 장기적·안정적 일자리는 되지 못한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 30조6000억원 중 '청년 관련'으로 분류된 예산 총액은 4조9177억1700만원이다. 전체의 약 6분의 1이 청년 관련 예산이지만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사업은 1조원이 채 배정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총예산 중 약 28.5%에 달하는 1조4016억9400만원이 이미 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위해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 예산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양질의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 해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도한 정부 간섭, 기업의 고용 시도 위축시켜

다만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모든 책임을 정부 정책으로 돌릴 수는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태정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실업률이 평균실업률보다 높은 것은 숙련도와 전문성이 낮은 청년층의 특성상 세계 모든 나라가 갖는 공통 현상"이라며 "한국의 경우 일자리와 대졸자의 눈높이가 안 맞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한국의 경우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큰 편인데 이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라며 "대기업·공기업은 전체 일자리의 10% 수준이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을 회피하고 이 10%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다. 이 역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가 줄어들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것이지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책임은 기본적으로 기업에 있고, 정부는 기업이 이를 적절히 수행하지 못할 때 임시적으로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 정부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 정책안들을 살펴보면 '일자리 정부'를 천명한 만큼 현 정부와 여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다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 허용, 한 달 퇴직급여 등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는 법안들 대부분이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되거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발의 법안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5월 30일~10월 8일까지 발의된 264개 고용·노동 법안 가운데 기업에 부담이 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은 192개(72.7%)에 달했다. 

이에 대해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 실장은 "노동시장 경쟁력을 해치고 고용창출의 원천인 기업을 옥죄는 규제강화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황"이라며 "기업의 부담을 더하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 기업들의 고용창출 능력 제고를 위해 노동시장 규제완화 법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청년 고용 시장뿐만 아니라 일자리 시장 전체가 얼어붙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완적 역할'이 아닌 '주도적 역할'을 취하고 있지만 과도한 간섭이 오히려 기업의 전반적인 고용 시도를 움츠러들게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년의 날이었던 지난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들은 상상하고 도전하고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주길 바란다. 정부는 청년들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청년들이 꿈을 향해 달리기에는 아직까지 현실의 벽이 너무나도 높고 차갑다는 평가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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