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14 17:52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이다. 그와 조선의 창업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무학대사의 스토리가 얽힌 곳이 지하철 1호선의 회룡이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앞의 망월사처럼 이 역명 또한 절 이름에서 따왔다. 의정부에 있는 회룡사(回龍寺)라는 절이다. 옛 왕조 시절의 각종 명칭에 용(龍)을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龍(용)이라는 한자가 왕조의 최고 권력자인 임금을 지칭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회룡사에도 그런 곡절이 담겨 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절은 원래 고려의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회룡사의 홈페이지 설명에는 이성계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인연이 그려져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뒤 이곳을 찾자 그때 ‘돌아온 용’이라는 뜻의 회룡(回龍)이라는 이름을 절 명칭에 붙였다는 설명이다.

다른 유래 설명에는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 함흥에 머물다가 1403년 태종 3년에 서울로 돌아오자 무학대사가 그를 기념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그 정도로 설명을 마치자. 우리의 관심사는 역명으로 쓰는 한자 그 자체니 말이다.

回龍(회룡)이라는 두 글자는 회기(回基)역과 용산(龍山)역에서 풀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역명과 관련해 이성계가 서울로 돌아올 무렵에 무엇을 탔을까에 관심을 두기로 하자. 임금을 지낸 사람이었으니 그가 탔던 수레나 가마에는 일반 사람이나 관료들의 그것보다 많은 한자 명칭이 따랐기 때문이다.

임금이 탔던 수레나 가마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는 우선 성가(聖駕)와 어가(御駕)를 꼽을 수 있다. 여기서 駕(가)라는 글자는 수레(車)에 말(馬)을 연결한 ‘탈 것’이다. 고대 황제가 타는 수레에는 구리로 만든 방울을 실었는데, 그 이름을 란(鑾)이라고 했다. 따라서 난가(鑾駕)라고 적으면 황제의 수레 또는 가마다. 명란(鳴鑾)이라는 단어는 황제가 그런 방울을 울리며 나가는 행차, 회란(回鑾)은 나갔다가 돌아오는 황제의 수레를 뜻했다.

황제가 탔던 수레를 가리키는 한자로는 輦(련)과 轂(곡), 輅(로) 등이 있다. 모두 수레 또는 가마를 가리키는 글자다. 연곡(輦轂)은 대표적인 경우다. 이를 탈 수 있는 사람, 즉 황제를 가리킨다. 연곡지하(輦轂之下)라고 적으면, ‘輦轂(연곡)이 있는 곳 아래’라는 의미다. 황제가 머물고 있는 곳을 가리켰으니, 실제 뜻은 바로 ‘도성(都城)’이다. 일반적으로 수도(首都)를 가리킬 때 자주 썼던 옛 단어다.

경련(京輦)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뜻하는 京(경)에 황제나 임금을 의미하는 輦(련)이 들어 있으니 그 뜻은 바로 ‘서울’이다. 연하(輦下)라고 해도 같다. 임금 계신 곳의 의미이니 역시 도성을 가리킨다. 이 輦(련)은 말이 끄는 수레일 수도 있고, 사람이 메고 움직이는 가마의 형태일 수도 있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이동할 때 오르는 가마로 잘 알려져 있고, 불교에서도 부처님 상이나 사리 등을 모실 때 사용하는 가마의 명칭으로 쓴다.

轂(곡)은 원래 수레의 바퀴를 뜻했다가 역시 輦(련)처럼 지체 높은 임금이 타는 수레라는 뜻을 얻었다. 우리말 쓰임에서는 추곡(推轂)이라는 말이 보이는데, 수레를 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다는 게 우선이고, 때로는 남을 어떤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추천(推薦)’의 의미로도 쓴다.

輅(로)는 일반적인 수레의 뜻인데, 대로(大輅)라고 적을 경우에 ‘임금의 수레’라는 의미다. 상로(象輅)라는 말도 있다. 역시 뜻은 같다. 임금의 수레다. 단지 코끼리를 뜻하는 象(상)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상아로 만든 조각이 붙어 있을 정도로 화려한 수레다. 역시 임금이 타는 용도다.

轎(교)는 일반적인 가마를 가리킨다. 교자(轎子)라고 할 때가 특히 그렇고, 교군(轎軍)은 가마를 메는 사람이다. 네 명이 매는 가마를 사인교(四人轎), 여덟 명이면 팔인교(八人轎), 높은 벼슬아치를 태워 네 명이 매고 가는 가마를 평교자(平轎子)라고 적었다. 밑에 외바퀴를 달고 종2품 이상의 고관을 태우는 가마는 초헌(軺軒)이라고 했다. 뚜껑이 없이 산길을 다니는 가마는 남여(藍輿)로 불렀다.

이 藍輿(남여)의 輿(여)라는 글자도 수레나 가마를 가리킬 때 자주 등장한다. 승여(乘輿), 봉여(鳳輿), 여련(輿輦), 여가(輿駕) 등이 다 임금을 태우는 수레나 가마다. 상여(喪輿)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태우고 가는 가마다. 이 글자는 때로 ‘땅’을 가리킨다. 그래서 여도(輿圖)나 여지도(輿地圖)로 적으면 요즘의 ‘지도(地圖)’다. 김정호가 작성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대표적인 쓰임이다.

그런 수레와 가마가 다니는 곳은 어딜까. 수많은 길이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정(市井)이다. 그런 여러 곳에서 들리는 얘기들이 바로 여론(輿論)이다. 그런 길가와 시정의 여러 사람이 바라는 바가 바로 여망(輿望)이다. 우리는 그런 여론과 여망을 제대로 읽는 정치인이 많지 않아 늘 불만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부지런히 저잣거리를 다녔으면 좋겠다. 여론과 여망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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