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12.03 10:00
전다윗 취재노트 증명사진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망해봐야 정신 차립니다. 그게 아니면 '회사는 망해도 노조는 영원하다'는 착각을 계속할 겁니다"

완성차 노조 취재를 하다 만난 업계 관계자는 본보기로 회사 한두 개쯤 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의 습관성 파업에 대해 물었던 참이었다. 극단적인 농담이라 지레짐작해 설핏 웃는데, 관계자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그는 "악습이 오래돼 극단적인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며 "팔 하나 자르는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보약이 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노조는 사측의 불합리한 대우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동자가 적법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내부서 견제하는 감시견이다. 부당한 일이 있을 땐 노동자를 대표해 큰 소리 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파업은 노조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무기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회사와 노조는 공생관계다. 회사는 노조가 대변하는 노동자들 없이 굴러가지 않고, 노조는 회사가 없으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노조의 쟁의활동도 궁극적인 목적은 상생발전에 있다. 쟁의활동의 결과로 사측은 근로자에게 고용안정과 공정한 보상을 약속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는 안정적이며 향상된 노동력을 제공한다. 결국 함께 살며 '윈윈'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내 완성차 업계 노사 관계는 크게 뒤틀려 있다. 우선 노조는 쟁의활동을 연례행사처럼 여긴다. 회사가 경영난에 시달리거나, 외국 본사가 한국 시장을 떠난다고 해도 꿋꿋하다. 약 18만명에 달하는 협력사 임직원들이 "살려달라"고 외쳐도 본체만체한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치는 순간에도 파업은 계속된다. 이런 투쟁 과정에서 회사의 숨통이 끊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완성차 업체의 노사분규는 각각 기아자동차 18번, 현대자동차 16번, 한국지엠 10번, 쌍용자동차 9번, 르노삼성자동차 4번 있었다. 올해도 3일 기준 완성차 5개사 중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친 곳은 현대차와 쌍용차뿐이다. 기아차와 한국지엠 노조는 이미 부분파업을 강행했고, 르노삼성차 노조는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미 완성차회사는 노조의 습관성 파업에 익숙해진 상태다. 파업을 하는 건 당연히 여기고, 간혹 무분규로 합의해 주는 날에는 대단한 성은을 입은 것처럼 감격한다. 정부와 언론의 평가와 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가령 올해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 동결을 골자로 무분규 합의를 해 주목받았다.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시기에 내린 용단이란 평가가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치하하며 "노사협력 1등 기업"이라고도 했다. 

물론 의미 있는 결정이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이상하다. 연초부터 덮친 코로나19 쇼크가 여전한 상태다. 대다수 기업이 생존기로에 서 있다. 자칫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계는 폐업 상태에 내몰린 지 오래됐고, 항공업계도 화물 수송으로 기신기신 버티고 있다. 지난해 뽑은 대한항공 신입사원은 여태 입사하지 못한 실정이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린 무분규 합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일 뿐이다. 아울러 합의에 따라 사측이 지급하기로 한 성과급 150%, 코로나19 위기 극복 격려금 120만원, 우리사주 10주,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등을 다 합치면 대략 1인당 830만원쯤 된다. 해고와 실직, 실업 장기화, 부도, 매출 부진으로 상당수 국민들이 신음하는 현실에서 상당한 금액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1953년 이후 단 한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 1950년, 불황 속에 시작된 장기 파업으로 회사가 크게 휘청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파업의 결과로 도요타 임직원의 10%인 1500명이 정리해고되고, 창업자를 포함한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도요타는 운이 좋았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늦었을 수 있다. 한번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나면, 뒤늦게 후회해본들 건질 것조차 없다.

회사와 함께 노조가 사라지면 그 여파는 협력업체 전체에 퍼진다. 국민경제에 큰 주름살이 생기게 된다. 완성차 노조는 정녕 강경투쟁을 일삼다가 소중한 일터를 잃어버리는 길로 계속 걸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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