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0.12.09 17:42
원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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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집권여당의 조급함'을 새삼 확인시켜준 2개 사건이 이틀 연속으로 발생했다. 하나는 공정거래법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이 정의당과 합의를 이뤘던 '전속고발권 폐지 입장'을 번복하고 지난 8일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9일 새벽 2시 40분 경 ILO(국제노동기구)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과 교원노조법들이 일괄 통과시킨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언행일치'는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집권 여당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언과 행동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이끄는 원내 사령탑인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 같은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 행위를 통해 범진보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최근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비롯해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등 5개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측이 상당히 조급해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움직임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여당이 100% 받들어 충실히 수행한 것과 관련이 크다고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개혁 입법이 반드시 통과되고,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명시적으로 발언했다.

이같은 명령이 떨어진만큼 민주당이 무리를 해서라도 공수처법을 비롯한 5개 법안의 처리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라는 것은 이해된다.

문제는 정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상대방과의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행 과정에서 최소한 반칙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이를 대놓고 어겼다는 점이다.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나가야 신뢰가 쌓인다. 이런 상호 관계 속에서 정치도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민주당이 정의당과의 약속을 깨고 기습적으로 9일 새벽 1시 30분에 환노위 전체회의를 개최해 결국 이날 새벽 2시 40분 경 ILO(국제노동기구)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과 교원노조법들을 일괄 통과시킨 것과 공정거래법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이 정의당과 합의를 이뤘던 '전속고발권 폐지 입장'을 번복하고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전속고발제를 유지하는 내용으로 통과시킨 것은 '정치적 신뢰를 무참히 짓밟은 처사'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의당의 비난이 이어졌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9일 "어제 정무위원회 조정위원회는 조정회의가 아니라 기만회의였다”며 "국회사에 전례없는 민주당의 뒤집기 신공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그동안 민주당은 늘 '국민의힘'을 핑계로 문제되는 법안을 통과시켜왔다"며 "그런데 웬일인가, 이번에는 민주당 의원들만 단독으로 논의했는데도 악법들이 통과됐다"고 질타했다. 

이어 "소위에서 통과 되었더라도 위원회에서는 충분히 논의가 돼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논의 할 수 없는 시간에 회의를 소집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도둑질하는 것처럼 한밤중에 후다닥 통과시켜 버렸다"며 "소위원들은 피곤해서 눈을 감고 있고, 질문을 하는 의원들이 빨리 끝내라는 분위기에 질문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것이 170석 거대 여당 민주당의 모습이다"라고 힐난했다. 

결국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은 이날 오전 민주당 원내대표실을 방문했고,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지난 8일부터 9일 사이에 일어난 이 같은 사태에 대해 사과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정의당 일각에선 여전히 개운치 않아 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9일까지 공수처법 처리'는 사실상 마지막 관문인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가로 막혀 있는 상태다. 

설령 정의당이 '국민의힘'이 주도하고 있는 필리버스터에 동참하게 될지라도 민주당은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의 정당들과 김홍걸·이상직·양정숙 의원 등 친여 성향의 의원들을 설득해 결국 공수처법 등 5개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의지대로 이 모든 법안이 통과된다해도 과연 박수를 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면서 촛불명령 제1호의 완수에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국정농단을 방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던 국민들이 새벽 1시 30분에 민주당 의원들만 모여서 기습적으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행태를 놓고 '촛불의 명령' 집행으로 평가할까. 민주당이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혁명'을 소환하면서 이런 추잡한 행태를 벌인 것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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